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동양의 여신 마고할미와 항아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36호(2020.7.18)

이득수 승인 2020.07.17 22:10 | 최종 수정 2020.07.18 16:21 의견 0
마고할미 이미지 [유투브/이소미]

그럼 동양에는 여신이 없었을까요? 정답은 이렇습니다. 있기는 있지만 그 역할이 아주 미미해 여신이란 개념이나 테마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는 매우 애매한 답변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서양의 주신 제우스에 해당하는 옥황상제라는 이야기는 들어도 옥황황후라는 이름을 들어본 일이 없고 저승을 관장하는 하데스 신에 해당하는 염라대왕의 염라왕비역시 들어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목축을 하며 여기저기 떠돌며 낯선 사내와 아낙이 자주 만나고 예사로 간통하는 서양의 성(性)문화나 인식과 달리 농업이 주산업인 동양은 한 고장에 정착하며 여자가 집밖에 잘 나오지 않는 폐쇄된 생활 속에 낯선 남녀가 만나 정을 통하는 식의 사랑문제가 별로 발생하지 않으니 미모를 첫째 조건으로 하는 여신이 탄생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거기다 동양의 남신은 너무 근엄해 그 배우자 여신이 있었더라도 감히 전면에 등장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농경민인 동양에는 여신이 바람의 신인 <영등할미> 또 아이를 점지하는 <삼신할미> 등으로 농사와 출산 등 주로 생산적인 요소로 등장하니 아이를 낳는 여자가 곧 땅이요 그 자손들이 많이 번지면 지(地)모신(母神)이 되는 원리와 같습니다. 아주 특별한 예로 부산 영도에는 영도에서 살림을 이룬 자가 영도다리를 건너 이사 가면 망하도록 해코지를 한다는 하는 좀 심술궂은 <영도할매신>이 있기도 하지만. 

한중일 극동지방을 통틀어 유일하게 서양의 여신에 가깝게 젊음과 아름다움을 갖춘 여신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달에 사는 항아(姮娥)로서 보통 월궁항아로 부르기도 하는 여신입니다. 

옥황상제를 정점으로 한 동양에서도 서양에서 저승의 신, 바다의 신, 농사의 신, 대장장이의 신이 있듯이 활의 신, 가마나 수레, 배를 잘 만드는 신들로 <업무분장>을 했는데 그 중의 대표적으로 활을 잘 쏘는 신 예(羿)가 있는데 그가 바로 단 하나의 아름다운 여신 항아의 남편이었습니다. 

신화에 의하면 천지창조 당시 하늘에는 해가 열 개나 있어 너무 뜨거워 활의 신인 예가 화살로 아홉 개의 해를 쏘아 떨어뜨리고서야 비로소 사람이 살 수 있었답니다. 당시 옥황상제의 후원에 사람의 형상으로 생긴 천도(天桃)복숭아가 열려 누구든 그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절대로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장난기가 좀 있는 활의 신 예가 살며시 옥황상제의 후원에 잠입해 천도복숭아 세 개를 따서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 아내 항아에게 맡기고 다시 어디론가 활을 메고 돌아다녔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여신은 동서양 할 것 없이 본래 바람기가 있는지 아니면 사내의 유혹에 약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항아에게도 동방삭이라는 <숨겨둔 남자>가 있었는데 사내 맛에 홀딱 빠진 항아가 그 천도복숭아를 동방삭에게 먹여버렸답니다.

옥황상제 이미지 [Bùi Thụy Đào Nguyên / CC BY-SA /3.0]

그러고 세월이 한참 흘러 어느 산 깊은 계곡 반석 위에 한 노파가 쇠절구공이를 바닥에 문질러 갈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사내 하나가 
“할머니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요?”
“아아, 우리 집에 쇠바늘이 없어 가죽옷을 꿰맬 수가 없어서 말이야.”
“저런? 내가 이미 1만 8천년을 살아도 쇠절구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네 하하하.”
하는 순간

“옛다, 요놈아, 네가 바로 삼천갑자 동방삭이로 구나.”
노파가 강철같이 억센 손으로 동방삭이를 움켜쥐었습니다. 그 노파가 바로 옥황상제의 명으로 동방삭이를 잡으러 매복한 <마고(麻姑)할미>였기 때문입니다.

그밖에도 동양에는 아황(鵝黃)과 여영(女英)이라는 순임금의 두 아내로서 사이 좋은 자매의 이야기가 있지만 전설적이긴 하지만 요나라의 실체가 있는 것이 정설인 만큼 신의 반열에 올려놓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여신은 부엌에도 있고 우물에도 있고 심지어 측간과 마구간에도 있으며 점집이 즐비한 점집거리에 가면 별별 선녀, 천녀, 할미신이 다 있어 우리나라는 과히 여신의 땅이라고 할 것입니다.

기혼남성 여러분, 댁의 여신은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아직도 비교적 평온한 가장에 순종적인 아내를 거느린 마지막 남신으로서 저마다 훌륭한 여신 하나씩을 모시고 사는 겁니다. 그리고 기혼여성 여러분, 동양의 여신, 특히 조선의 여신답게  건강하고 성실하고 은근과 끈기를 갗춘 훌륭한 여신이 되어 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가득 채운 집안의 해. <안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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