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사철가3 국고투식 허는 놈과 부모불효 허는 놈과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45호(2020.7.27)

이득수 승인 2020.07.25 16:06 | 최종 수정 2020.07.27 13:09 의견 0

영화 '서편제' 중. [유튜브 / hsjuanito]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이네한말 들어보소. 
인생이 모두가
팔십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산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는 
불여생전일배주 만도 못하느니라. 

세월아, 세월아 가지말어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다.
세월아 가지마라 
가는 세월 어쩔꺼나? 
늘어진 계수나무 끄트리다가 대랑 메달아 놓고 
국고투식허는 놈과 부모불효 허는 놈과 
형제화목 못 허는 놈 차례로 잡어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어 
한잔 더 먹소, 그만 먹게 허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끝까지 창을 듣다 보면 꽤나 의심심장하게 시작해 상당히 비장하고 비통하게 세월을 한탄하던 가사가 마지막에는 부모발호 허는 놈과 형제화목 못 허는 놈에 국고투식 하는 놈을 차례로 잡아다가 저 높은 계수나무끄트머리에 달랑 메달아 놓아 저 세상을 보낸 뒤 남은 우리끼리 사이좋게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자는 쬐쬐한 이야깁니다.

우선 그 좋은 술자리에 동석을 시키기는커녕 달랑 잡았다가 계수나무 끄트머리에 매달아 제 세상을 보낼 사람을 겨우 <부모불효 허는 놈과 형제화목 못 허는 놈에 국고투식 하는 놈>으로 한정한 것입니다. 이는 작자가 효제(孝悌)의 가족관에 목을 매는 한국적 가장이라서 그렇다보더라도 그 시절 일반적으로 흔했을 도둑이나 산적 떼 기생이나 논다니, 불한당, 사기꾼, 야바위꾼에 무당이나 점쟁이도 있고 어질지 못한 지방관과 가렴주구에 목을 맨 6방 관속과 토색질에 혈안이 된 향반, 심지어 무능한 임금이나 신하까지 그 죄를 물어 처단하지 않고 겨우 <국고투식(國庫偸食)>하는 병들고 가난한 자만 그 모든 죄를 물어 처단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사회는 이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신분적 상하로 나누어지고 그 먹고사는 방법에 까지 제한이 있어 처음부터 건강하지 못한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논밭이나 가축, 하다 못 해 양반의 족보라도 없는 가난뱅이는 간혹 산적이 되어 잡혀 죽고 때로 거대한 들풀로 피어 홍경래란, 진주민란, 동학란을 일으켜 떼죽음을 당한 자들이 부지기수라도 당시의 양반이나 지배층은 누구하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철가도 어디까지나 양반 지배층의 소일거리 노래였을 뿐입니다.

대대로 농사를 짓던 우리 조상들은 <가난은 나랏님도 못 말린다.>며 자신이 이미 부자가 되기 걸렀음에도 해마다 빚만 늘어나는 농사를 단 한 번도 그르지 않고 그 가난 속에서 줄줄이 태어나는 생명들도 어찌어찌 먹여 살렸습니다. 이는 서양이라고 다르지 않아 반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하층민들의 의상과 표정에서 그 끈질기고 음습한 악마, 가난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골노인네들의 천렵 후 회식모습(6. 20)
시골노인네들의 천렵 후 회식 모습.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국가의 배급을 받아 사는(국고투식)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일선 동사무소의 사회담당으로 수많은 생활보호자를 대해온 저는 몸이 아파 일을 못 해 가난을 벗어날 수 없어도 어떻게든 아이들을 공부시키려는 처절한 몸부림도 보아왔고 생활보호비만 타면 금방 탕진을 하고 술에 취해 동사무소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사내, 아이의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꾸만 아이를 낳은 자유로운 영혼이 하필이면 제가 근무하는 관할의 어린이놀이터에 터를 잡는 바람에 상상을 못할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뒤쪽 취한과 철없는 여자는 과연 국고투식의 죄로 이 사회에서 없어져도 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단, 법적인권이 아닌 사회적 통념에서).

그러다 간부공무원이 되면서 묘하게 국고를 투식해 시회지도자 행세를 하는 수많은 사회운동가를 만날 수 있었고 나름대로의 자연보호, 환경보호, 청소년보호, 애국등 각종 잣대로 관공서의 사업이나 공사를 방해해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가는 공직자에 기생(奇生)하여 사회지도층이 되고 정치지도자가 되는 사람도 더러 보았습니다.

환경운동가가 환경영향평가에 엄하고 후한 잣대가 묘하게 달라지는 경우정도는 약과입니다. 군중의 힘을 빌려 당국을 응징한다는 그들의 횡포는 도를 넘어 이제 정신대할머니의 희생을 기린다며 각종 갈취를 서슴지 않은 사람이 사회운동가로 지목되어 국회의원이 되는 사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철가는 그냥 계절을 한탄하는 노래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고질적 악질적 국고투식자를 잡아내자는 메시기가 담긴 꽤나 의미심장한 노래인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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