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장맛비와 렛잇비(let, it be)1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58호(2020.8.9)
이득수
승인
2020.08.08 15:12 | 최종 수정 2020.08.0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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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하순의 어느 날 인저리타임 카톡에 이란경님이 비틀즈의 렛잇비(let, it be)를 소개하는 바람에 명촌리 시골영감의 귀가 번쩍 뜨이면서 귀 호사에 빠졌다. 물결처럼 잔잔히 흘러가는 작은 체념과 기다림과 기대가 가져오는 가벼운 평온, 노래가 끝날 무렵 나는 오후의 고양이처럼 금방 눈이 게슴츠레 낮잠에 빠져들었다.
비록 70이 되도록 살았으나 무엇 하나 확실한 목표나 방침도 없이 그냥 <문학을 한다는> 막연한 변명으로 이 세상 모든 잡다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여기저기 몰입하는 지식의 사냥꾼이나 각종 예술분야를 조그만 느낌표(!) 날리며 감탄하면서 어찌 보면 고물상처럼 참으로 어수선한 평생을 살아온 필자는 어쩌다가 비틀즈라는 이름을 접한 것은 그야말로 뜻밖의 소출이었다.
1960년대 인류를 잡단 패닉에 몰아넣듯 선풍을 일으킨 <비틀즈>는 잉글랜드출신의 귀족적으로 하얀 피부와 신비한 목소리를 가진 젊은이들로 금방 미국을 비롯한 세계인을 우수의 바다에 빠트려 매료시킨 짧은 전성기를 보내고 해체했다는 것, 그들의 대표작이 <오블라다 오블라디>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내가 평생을 살면서 가장 평범하면서 소중한 행운을 잡은 것이 몇 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평범하지만 단정하고 포근한 성격, 경우가 바르고 친절하며 솜씨가 있고 착한 남매를 낳아준 아내와의 인연이 그 첫째고 다음이 문학에 빠진 점. 그 다음이 다 늙어 음악에 재미를 붙인 점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에 빠지고 시나 소설에 억매인 것은 행운이라기 보다는 유전자지도에 새겨진 문학적 자질, 그러니까 피치 못할 운명 같은 것이고니 순순한 횡재는 오르지 늙어 음악에 빠진 점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50대 후반 당뇨가 심해 주말에 등산을 하고 주중에 산책을 하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클래식 행진곡들을 휴대폰으로 듣기 시작한 것은 엄청난 행운의 바다로 입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걸으면 우선 흥겹고 다음 걸음이 빨라지고 자세가 바로잡힐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보다는 마음이 푸근해지고 생각이 느릿느릿 천천히 마치 거대한 강이 흐르듯 유연(悠然)하게 흐르며 저 강물위에 반짝 튀어 오르거나 오후의 햇살에 비친 물방울처럼 알지 못할 희열이나 기쁨이 조금씩 가슴을 채우며 몸과 마음이 다 가뿐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계행진곡모음을 비롯한 존 포스터의 미국민요와 비틀즈, 엘비스 프레스비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노래 한 두개를 더 배우게 된 것이 우선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정도였고 그 때쯤에는 그 멤버인 폴 메카트니, 링고스타, 존 레넌, 해리슨 등 이름을 구별하게 되었고 밝고 순하게 생긴 해리슨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2년 쯤 일요일 밤에 KBS1에서 운영하는 <개콘>이란 프로그램에서 렛잇비란 코너를 접하게 되었다. 이동윤이란 부장을 중심으로 박은영, 노우진, 송필근 네 출연자가 평범한 직장인들의 애로사항과 설렘을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렛잇비의 가락에 가사를 붙여 그들의 피곤한 일상과 소박한 꿈을 호소하는 것 같은 분위리라 나는 렛잇비의 뜻이 아마도 <그걸 그렇게 해주었으면>, <그렇게 된다면> 정도로 알았는데 이번 기회에 좀 더 알아보니 렛잇비는 비틀즈의 은퇴직전 마지막 곡으로 ‘그렇게 되게 두렴, 즉 시간이 가면 어떻게든, 또 누군가가 다 조용히 해결해줄 것이니 너무 흥분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라’는 어머님의 말씀 <그 냥 둬>인 것이었다.
렛잇비(그냥 둬)
내가 근심에 처했을 때
어머니가 다가와
지혜롭게 말씀했었지
그냥 둬
암흑의 시간에도
어머니는 내 앞에 똑바로 서서
지혜의 말씀을 그대로 해주셨디
그냥 둬
.....
그냥 두라고
그 말속에 진리가 담겨있어
지혜를 속삭여 봐요.
렛잇비(그냥 둬).
비틀즈의 노래도 비장할 정도의 열망이 서리고 렛잇비 4출연자의 눈빛에도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따르고 아무리 조바심을 내어도 인력으로 잘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6월말에 시작되어 8월초에 끝나는 장마다. 세상에 두 달이나 사람의 발길을 묶어놓고 조그만 움직이면 물벼락을 퍼붓는 장마 같은 지독한 횡액이 어디 있으랴? 거기다 올해는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코로나19로 함부로 누굴 만날 수도 없고 마스크마저도 벗을 수 없는 상황, 우리가 지금 두 손을 놓고 기다리는 수수방관(袖手傍觀), 바로 렛잇비에 빠져 있다. 어떻게든 가만 내버려두고 장마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일, 갑갑하기야 피차일반이지만 이 우기(雨期)의 가장 지루한 고비를 넘어갈 노래를 골라보다 비제의 칼멘서곡 <투우사 입장의 노래>를 올리니 한번 들어보기 바랍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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