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술의 도시 부산, 안주의 중심 충무동

포토 에세이 제1057호(2020. 8. 8)

이득수 승인 2020.08.05 13:47 | 최종 수정 2020.08.07 15:32 의견 0

 어차피 전 국민이 술을 즐기는 시대, 회사원, 골목상인, 가정주부조차도 구석구석 홀짝이는 <혼술의 시대>에 가장 술을 먹기 좋은 곳은 어딜까?

물론 600년 넘게 수도가 되어온 거대도시 서울이 술의 수도로서 마시는 술의 양이나 술꾼의 숫자, 그리고 술 마시는 이유랄까 사연도 가장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술 마시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와 기분에 좌우되는 인간의 특별활동과 같아 술이라는 독한 음료를 통해 외부의 자극을 완화시키고 외롭고 서러운 맘을 달래어 지친 몸을 회복시켜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한 환상을 느끼기 위해서는 물 좋고 정자 좋고 날씨도 좋으면 그러니까, 술 마실 분위기가 좋으면 더욱 좋고 편하게 술잔을 주고받을 친구와 한껏 호기를 부릴 만큼 여유가 있으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그 위에 왠지 술이 댕기는 비가 촉촉이 내리는 오후나 음산한 바람 끝에 노란 햇빛이 비치는 저녁 답도 좋고 맛있는 안주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부산은 가장 술 마시기 좋은 도시,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처럼 술이 당기는 도시이다.
 
그 근거로 나는 부산의 향토적 특성과 음식을 들고 싶다. 아시다 시피 부산은 일제가 처음 밀고 들어온 개항지로서 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의 아픔을 오롯이 겪었다. 그런 아픔의 도시란 한편으로는 수많은 사내들이 술을 마시고 울부짖고 수많은 여인들이 술 취한 사내들을 기다리거나 떠나보면서 소주처럼 독한 슬픔을 날리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피난살이의 고생, 전쟁후의 귀경과 이별의 슬픔이 영도다리와 부산정거장과 용두산공원에 어리고 멀리 해운대 동백섬에 서러운 바람소리로 서걱대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무궁무진한 술안주의 화수분이란 점이다. 19세기 말까지 한갓 작은 어촌인 부산을 그저 <부산 아나고(붕장어)>나 동래파전 정도의 안줏감이 있었는데 6.25의 절대궁핍 속에서 남부여대 피난민들이 나름대로 저들의 향토음식을 전쟁의 분위기에 맞게 개발된 잡채와 돼지국밥, 냉면등을 개발하고 밀면, 아구찜같은 가난한 피난민의 깔딱요기와 서서 마시는 선술집의 <아지매, 오징어 한 사라>의 오징어회는 물론 고등어를 구운 고갈비와 정구지찌짐이 뒤를 잇고  원양어선이 잡아온 심해어 참치와 방어류의 기름진 횟감, 피난 온 서울나리들의 입을 겨냥한 참복회와 생명태탕, 생대구탕 같은 세계제일의 숙취해소 탕 문화가 발전되기도 했다. 

고갈비
고갈비 [픽사베이]

그래서 국제시장의 먹자골목은 이 도시를 넘어 나라를 넘어 세계의 여행가들이 모두 선망하는 먹거리의 낙원이 되었다. 달랑 만 원짜리 하나를 갖고 두세 가지 음식을 맛보고 술을 한잔 마시며 술과 공복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도시, 이렇게 상큼한 음주의 도시가 어디 또 있으랴?

그렇게 보면 부산의 음주중심 즉 술 먹기 좋은 지역은  부산의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해안선 그리고 송도의 횟집에 이르는 남항벨트라고 할 수 있고 그 중심지는 거친 선원들이 늘 선망하는 술과 여자라는 목마름이 일거에 다 해결되는 완월동까지 소재한 충무동이 되고 부산음주문화의 기념관을 세운다면 아마도 충무동로터리 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우여곡절이 많고 술로서 시름을 달랜 날이 가장 많은 외톨이공무원이 20년 이상을 그 부산의 음주중심 충무동의 서구청에 근무한 것은 어쩌면 지지리도 복이 없는 한 사내에게 신이 부여한 조그맣고 은밀한 혜택일 수도 있다. 생선회와 돼지국밥, 장어구이와 국제시장의 잡채와 고갈비로 저녁마다 술 배를 채우고 많이 괴로운 날에는 충무동 해안시장에서 출발해 포장마차의 선지국과 곰장어, 포장마차의 고래 고기와 생선구이로 혼자 소주 한두 병을 너끈히 마실 수 있는 도시, 장애로 말이 어둔한 딸을 가진 노파가 건물사이 틈새에 조그맣게 차린 단골집에서는 만 원짜리 하나를 주면 소주 한 병과 회나 족발 같은 서너 종류의 안주를 제공하고 술이 부족하면 낱잔을 더 주고 안주가 부족하면 정구지전을 부쳐주던 20년 단골할머니도 다 있었다.

자갈치 꼼장어집들 [유튜브 / 비하인드Chang]

그러나 내가 말한 부산 술 문화의 중심, 가장 술 댕기는 거리 충무동 일대는 피난살이의 서러운 추억과 함께 부산축제영화제, 자갈치축제로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해 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그 술의 땅에서 나는 날마다 술에 젖어 살았다. 가장 술에 많이 젖던 시절의 시 한편을 올린다.

 

혼자 마시기(獨酌) / 이득수

혼자 마신다, 숨어 마신다.

이젠 제법 술값도 쓸 만하고
누구에게 얽매일 처지도 아닌
그 넉넉한 저녁시간 왠지 짐 되어
그냥 갈까 망설이다 매번 마신다.

상관을 모시기도 내키지 않고
부하직원 부르기엔 눈치 보이고
잊은 친구 전화하기 새삼스러워
안주도 변변찮고 카드 안 되는
한 평짜리 틈새집서 술을 마신다.
하수구에 달아낸 비닐천막 밖
밤안개로 흐릿한 달을 보면서
오늘도 中毒처럼 술을 마신다.

인생길 어차피 孤獨이라면
술꾼의 길 피치 못할 獨酌이겠지
내 아무리 괴로워도 저 흐린 하늘
구름 속의 달보다야 더 외로우랴
오늘밤도 나 혼자서 술을 마신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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