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그리운 그 열합(裂蛤)죽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64호(2020.8.15)

이득수 승인 2020.08.14 13:46 | 최종 수정 2020.08.14 14:04 의견 0
NOAA/FLICKR
바다 돌담치 [NOAA/FLICKR]

내가 연금에서 주는 생활비와 아이들이 보태주는 병원비를 카드하나로 쓰는 아내는 한 달에 수백만 원씩 약값이 나가자 더럭 겁이 나는지 돈 문제만 나오면 흥분하기 일쑤라 순간적으로 환자인 내 앞에도 병원비가 많이 든다고 탄식을 하는 것이 돈 문제에 대한 노이로제에 걸린 모양이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제가 아내의 통장에서 병원비로 쓸 돈을 받아 별도 계좌를 만들고 내가 가진 약간의 현금을 보태 비싼 약이나 주사를 맞든 말든, 돈이 없어 그냥 죽든 내 목숨이니까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들딸들이 착해서 미리 큰돈을 보내주기 때문에 꼭 그렇게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거금을 만지는 자체가 스트레스인 모양입니다. 차제에 생활비도 몇 십만 원 더 올려줘 제발 돈 때문에 위축되거나 짜지 말라고 하니 이제 두 사람 다 훨씬 지내기가 쉬워졌습니다.

요즘 아내가 제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제발 돈을 좀 쓰고 가라.”는 이야기입니다. 꼭 필요한 일이면 반드시 쓰지만 당장 급하거나 필요하지 않으면 절대로 쓰지 않는 성격, 일생을 두고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잡동사니 충동구매를 단 한 번 도 안한 저를 아내는 무슨 선사시대인처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장날 누님들을 만나 밥을 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내와 둘이서 칼국수를 먹으러 가기도 합니다. 암만 큰돈이 병원비로 들어도 소소한 외식비가 모자랄 정도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마트에 따라가 그동안 꼭 한 번 먹고 싶었던 마른 오징어나 한치를 사는데 요새는 물건 자체가 품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징어를 설핏 구워 포장한 것과 제 좋아하는 진공족발을 아내의 카터에 담으며 눈치가 보여 1만 원을 빼주었습니다.

남편이 아프기도 하지만 아들딸을 끔찍이 아끼는 성격이라 무어든 다 해주고 싶고 경기가 안 좋아 처절할 만큼 막바지로 내몰린 막내처제와 처남 때문에도 알게 모르게 푼돈이 들어가는 모양으로 내가 슬쩍슬쩍 도와주기도 하고 모르는 척 넘어가기도 하지만 제 자신이 워낙 가난한 고학생 출신, 단 한 번도 내가 풍족하다고 느끼며 산 적이 없는 사람이라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의 내가 돈을 물 쓰듯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다 들기도 했습니다.

마트에 갔다와서 오징어포와 강냉이로 새참을 먹었는데 금방 뱃속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오징어포가 잘못된 모양입니다. 제가 간암에 걸린 이후 아주 적은 양이라도 무얼 잘못 먹으면 바로 온몸이 땅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공황상태에서 진땀을 흘리며 짧게는 서너 번 길게는 하루 밤 내내 화장실에 드나들어야 설사가 멎곤 합니다. 그날은 밤새도록 한 스무 번 화장실에 다니고 몸무게가 4Kg이나 줄자 당장 병원에 가자고 아내가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뱃속의 꿀렁거림이 많이 안정이 된 것 같아

“여보 누룽지탕이나 좀 끓여 줘.”

하고 간장과 누룽지탕을 먹다 어릴 적 우리 어머니가 해주던 보양식품 열합(裂蛤)죽이 생각났습니다. 열합은 홍합이라고 부르는 지상의 모든 바닷가 바위에 가장 많은 개체가 다닥다닥 붙어사는 담치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 돌담치를 말하는 언양지방 사투리입니다. 제가 세계여행을 하면서 느끼기로 세계의 어느 바다에도 홍합이 살고 스페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아프리카 여러 소국들과 아메리카의 사람들이 각자 나름 요리법을 개발해 이 홍합이 대구나 참치 못지않은 세계인의 기호식품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간 스페인이 포장마차에서 우리나라 해운대의 포장마차와 꼭 같은 커다란 양동이에 홍합을 삶아 술꾼들의 속 풀이와 명품요리의 주재료로 다들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기심과 재치가 많은 우리 민족은 붉은 속살과 검은 털이 붙은 하트형의 속살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처갓집 물건>이라는 꽤 걸쭉한 이름으로 불렀고 제사상에 열합(홍합붙이 중에서 가장 큰 것)을 넣지 않으면 시집간 딸들이 못 산다고 반드시 올린 꽤나 중요한 식품이었지요.

아내가 끓여준 열합죽

그래서 한여름의 농사일에 아버지가 지치거나 제가 몸살이 나면 어머니는 언양장에서 그 귀한 열합을 한 줄 사다 찹쌀을 넣고 죽을 끓이고 달걀을 하나 풀어서 먹였는데 가장인 우리 아버지와 농사를 짓는 저를 빼고 다른 누님이나 막내는 아무리 아파도 그걸 해주지 않았습니다. 붉은 홍합의 속살과 노란 달걀이 풀어진 걸쭉한 찹쌀죽, 그 열합죽만 생각나면 절로 침이 흐르는 판에 마침 배가 아파 누룽지탕을 먹다 그 생각이 나서

“여보, 혹시 열합죽 안 될까?”

하니 한 참을 생각하던 아내가 

“정구지지짐이나 파전에 넣던 거라 질이 좀 떨어지는데...”

하면서 죽을 끓였습니다.

단번에 한 공기를 먹자 몸이 노곤해지면서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이어 아내는 주부대학을 가고 저는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긴긴 날을 열합죽을 한 공기씩 다섯 번이나 먹고 설사가 나았습니다. 옛날 우리 어릴 적 어머니나 할머니의 손이 약손이라 하더니 일흔이 넘은 제게도 이제 아내가 끓여준 열합죽을 먹으며 먼 옛날 어머니의 약손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단지 죽 한 그릇이라도 어머니와 유년에 대한 기억은 참으로 가슴 저린 그 무엇인 것 같았습니다.

<시인·소설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