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우후죽림, 긴 장마의 선물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66호(2020.8.17)
이득수
승인
2020.08.16 14:03 | 최종 수정 2020.08.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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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시작되어 8월 중순인 아직까지 꼬박 두 달 넘게 끝이 안 보이는 올해의 장마는 기상관축이후 두 번째로 긴 장마라고 합니다. 옛 부터 병든 노인데들이 여름, 특히 이 장마를 견디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이하는 일이 꽤나 힘들었던 모양으로 우리 어릴 적 장맛비가 끝없이 추적되는 날 마을의 노인이 죽어 지등(紙燈)을 달아다 주고 비를 맞으며 산역을 하는 날, 몸이 불편한 아버지 대신 여남은 살의 제가 상포계원이 되어 비록 상여는 못메지만 신장이라고 불리던 마을 유일의 곱추아저씨와 2인1조로 상여보다 훨씬 작은 앵여(망인의 생전에 쓰던 고무신과 담뱃대와 혼백단지가 들어있었음)를 메고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진장만디를 올라 공동묘지에 무덤을 쓰고 상가에서 주는 미신(짚신)한 켤레와 타월 1장, 풍년초 1봉지를 얻어서 오던 일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당시 구시골이라는 조금 떨어진 한 마을에 사는 우리 게을뱅이 둘째 자영은 장인 대신 논밭을 갈거나 상포계 일을 돕는 일이 절대로 없으면서 조그만 처남이 풍년초와 짚신을 얻어다 놓으면 어찌 그리 총알처럼 빨리도 가져가시든지...
아무튼 병든 노인들이 여름을 나는 것은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것처럼 힘든 일이라고 교회에 다니던 우리 누님이 늘 말했고 요행히 장마를 넘겨도 기어이 추석 전에 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말기암환자가 되면서 5월의 송홧가루 알레르기가 시작되어 장마가 닥치고 또 한참, 잘 익은 고추를 따는 8월 초를 기다리는 다섯 해의 초여름 장마 기간 중 네 번을 나는 단 몇 달을 못넘긴다는 위기를 맞아 수술을 하고 방사선 치료를 하고 함암제를 맞으며 네 번의 고비를 넘겼는데 올해는 여느 해보다 장마도 길었지만 이제 더는 수술도 주사도 항암제도 없는 최후의 선택 <카도메틱스>가 너무나 힘에 부쳐 제대로 식사를 못해 밥상머리에만 앉으면 식은땀이 나고 발가락 사이와 발바닥이 다 부풀어 터져 걸음도 제대로 못 걸어 이렇게 밥도 못 먹고 산책도 못하면 어느 날 슬그머니 죽을 것이 아닌가, <어쨋거나 안 죽으니 살아있는> 나 자신의 의학적으로 설명이 잘 안 되는 이 기묘한 연명(延命)도 이번의 장마 속에 끝이 나는것이 아닌가 더럭 겁이 나서 아직 남은 단 한 가지 일, 포토에세이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생존가치를 살리기 위해 매일 더 극성스레 글을 쓰서 만약 내가 아파서 입원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포토 에세이를 계속 연재할 수 있는 여분 한 50일 분을 확보하느라 열중하면서 약의 그램수를 조금 낮추자 다행히 식욕도 좀 돌아오고 발바닥도 좀 아물어 요즘은 그리 멀리는 걷지 못해도 하루 30, 40분 그 장맛비 틈을 뚫고 조금씩 걸으니 기적처럼 다시 삶의 의욕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마 기간 동안 시골의 머슴을 비롯한 농부들은 보통 밀린 잠을 자는 시간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멜랑콜리한 도시인은 그 긴 장마기간 동안 우수에 젖은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단팥죽이나 완당, 어니면 오히려 써늘한 메밀국수를 즐기는 일도 한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 자투리 시간을 잘 아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기 좋아하는 저는 마른장마가 져 하루 종일 온몸이 꿉꿉한 오후에 한 30분쯤 포장이 잘 된 들길을 걸으며 허벅지의 근력(나무꾼의 아들로 진화한 저는 남보다 허벅지가 엄청 크고 단단한 편인데 그게 제 체력의 기초가 되고 병을 이기는 원동력이라는 말이 있어 이 장마에 설사까지 겹쳐 체중이 한 5kg 빠지고 종아리의 살이 빠져 촐랑촐랑 흔들리는 걸 보며 최후의 보루 허벅지를 살리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잠깐 그치면 맨몸으로 들길을 꾸준히 걸어 다행히 체중을 다시 회복했는데 문제는 하루도 빠짐없이 밀착경호를 하는 마초가 매번 단벌옷이 흠뻑 젖어 집에 오자말자 타월로 닦아주는 일이 익숙해져 요즘은 털이 젖지 않아도 털을 말려달라고 엉덩이를 내 앞으로 들이밀기도 한답니다.
아무튼 요즘 컨디션이 많이 돌아온 것으로 보아 올해 장마도 그럭저럭 넘기고 곧 바람 끝이 써늘한 9월이 오고 벼가 익고 밤이 익으면 코스모스가 아롱진 들길을 걸으며 마초와 나는 또 한해 새로운 겨울을 맞이하여 그럭저럭 또 한살을 먹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우리는 보통 우후죽순(雨後竹筍)이리고 비온 후의 대밭에 우수수 돋아나는 죽순이 동시다발로 자라나 하늘을 가득히 채우는 그 왕성한 생명력을 찬양하는데 요즘 제가 가만히 보니 그 우후죽순을 우후죽림으로 고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진 장마를 거친 요즘의 대밭이 멀찌기서 보면 예쁜 처녀가 창포물에 머리를 감은 것처럼 너무나 싱싱한 초록빛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길을 걷다 조용히 마을 뒤의 대밭을 보다가 또 눈을 돌려 자줏빛 산나리꽃 하나를 호위하며 파랗게 펼쳐지는 들깨 밭, 싱싱한 줄기 위에 하얀 꽃대가 올라오는 연두 빛의 옥수수 밭 역시 너무나 싱싱해 절로 휘파람이 나옵니다. 그러고 보면 긴긴 장마가 우리에게 그냥 축축하고 갑갑한 우울(憂鬱)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감미롭고 멜랑콜리한 커피향과 음악과 빗방울소리, 그리고 저 깔끔한 초록빛의 우후죽림을 다 주는 것입니다.
모처럼 초록빛 사진 몇 장을 올리니 초록빛 눈 호사를 한번 누리기 바랍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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