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끝없는 비극 장남병의 유전7

에세이 제1116호(2020.10.6)

이득수 승인 2020.10.05 22:38 | 최종 수정 2020.10.05 22:54 의견 0

형님 출상을 한 뒤 조카가 있는 수원으로 전화를 해보니 수원으로 돌아가자 말자 사표를 내었다고 말하는데 모처럼 활기찬 목소리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현찰에 장례식에 들어온 부조에, 연금대상자가 너무 일찍 죽었다며 의료보험공단에서 장의비와 위로금이 나와 한 3천, 4천만 원의 현금으로 주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카 일도 궁금했지만 나는 영주에 살던 형님이 조용히 독서를 하고 독후감을 써 놓은 그 스무 몇 권의 독서일기가 잘 있는지, 얼핏 읽어본 내용이 너무나 진솔하고 알차 형님 사후에 책으로 내주겠다고 약속한 바가 있어 한 보름 뒤 시간을 대어 영주로 가니
(...?)
형님의 책장이 있던 안방이 깨끗이 치워지고 새로 산 커다란 침대를 놓고 요란한 레이스가 달린 커튼으로 온 집안을 치장하고 있었다.
“형님의 책은?”
하고 형수에게 물으니 
“아 바로 고물장사 주었지.”
“아이구, 그게 어떤 책이라고? 우리 형님 한 평생이 담긴 책인데...”
“무슨 소리? 내한테는 그 책이 평생의 원수였다. 남편이라고 책만 보고 단 한 번도 지 마누라에게 관심이 없는 인간이 말이야.”
“암만 그래도...”
독서일기도 그렇지만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희귀본도 많아 형님생전에 몇 권을 부탁하니 서재는 조카 우현이와 잘 의논해서 처분하라고 했는데 장례식 이튿날 바로 고물장수에게 무게로 달아서 팔고
“내가 그래도 영감 죽기 전에 안 버린 것만 해도 얼마나 신경 썼다고...”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곳의 작은 집에 전화가 왔는데 조카가 주식으로 현금을 다 탕진하고 일억 가까이 빚이 져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물론 지금 사는 연립주택에서 쫓겨날 형편이나 작은 아버지들도 아버지인 만큼 한 5천만 원씩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셋째 누님이 불 같이 화를 내며 김해의 언니에게 연락하니 김해누님은 주여, 주여를 부르면 며칠 밤을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고 했다. 자기가 사람하나 잘못 들여 집안이 대대로 망했다고.

일단 통지했으니 다음 아버지 제사 때 돈 5천만 원씩 두 작은아버지가 갖다 줄 것으로 당연히 믿고 기다리는 형수가 기가 차서 우리는 수원에 제사를 모시러 갈 때 말 잘 하는 둘재 누님과 아버님과 같이 머슴을 살며 고생한 연탄 집 사촌형님까지 모시고 갔다.

갈배기논 서마지기가 있었던 문전옥답자리. 지금은 망향비가 들어선 소공원이 되었다.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하면서 형수가
“그래. 두 작은 아버지는 돈 5천만 원씩 가져왔는지요?”
하는 순간 누님 넷이 동시에 펄쩍 뛰었다. 그러자 살아서 그만큼 팔아갔으면 되었지 죽어서 자식이 저지른 빛은 왜 형제들에게 넘기느냐고 사촌형님이 점잖게 이야기 하며 자신과 삼촌이 머슴을 살아 갈배기와 진장 골짜기 논, 진장 밭 하나하나를 사던 이야기, 그게 다 팔려서 너무나 아쉽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조카가 
“아니, 우리 집은 엄마아빠가 열심히 모아 자수성가를 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친구들의 보통 시골할아버지들은 논밭과 산까지 엄청 많은 재산들을 남긴다던데 우리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도 무능했는지 몰라...”

혀를 끌끌 차는 순간 형수가 덮치듯이 조카와 며느리를 골방으로 데려가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는 김해누님이 인생살이 왜 그렇게 밖에 못 사느냐, 숟가락 몽둥이 하나 안 내주고 명절 때마다 제사 비 안 보낸다고 굿을 부리더니 그 많은 재산 다 날리고 이게 무슨 소리냐고 따지자 완전히 전의를 잃고 오직 뒷방의 아들과 며느리가 알까 봐서 전전긍긍 하다 잠자리에 들었다.

그 빚은 십여년이 지나 형수가 살던 영주의 철도부지에 있던 집이 중앙선 확장으로 제법 큰돈으로 수용되어 갚았다. 실업자가 된 조카가 물류센터에서 노동을 하며 간신히 살아갔는데 술만 먹으면 연상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해 조카며느리의 얼굴엔 늘 눈물이 비치곤 했다. 

사진1. 잔고가 없는 빈 통장들. 우리 장손의 형편이 그렇게 모두 깡통계좌였던 것 같다.  사진2.
잔고가 없는 빈 통장들. 우리 장손의 형편이 그렇게 모두 깡통계좌였던 것 같다.

그 조카의 가장 큰 병통은 집안의 장손인 자신에게 물려진 유산이 너무나 적다는 것이었고 돈 잘 버는 두 작은아버지가 자신에게 너무 인색하다는 것이었다. 마치 장손이 큰 벼슬이나 되는 것처럼.

그러나 그 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결과를 하나 낳았는데 술만 취하면 자기아들 상현이를 때리다 못해 거꾸로 들고 물에 빠트리는 등 행패를 부려 대인공포증에 걸린 아이가 말을 잘 못하며 바깥출입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한 10년 보낸 뒤 조카는 어느 절로 들어가 버렸다. 본래 어머니나 아내의 근심걱정을 생각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절을 택한 것은 우선 노동을 안 해도 되고 아들 상현이를 피할 수 있어서 였다. 그렇게 날마다 두드려 맞아 말도 잘 못 하는 아이가 점점 자라자 마침내 자신을 때리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벽에 밀어붙이며 인상을 쓰자 이젠 자신이 금방 맞아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인 것이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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