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④ 최백호 〈영일만 친구〉
에세이 제1138호(2020.10.28)
이득수
승인
2020.10.27 13:57 | 최종 수정 2020.10.2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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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흔 하나인 가수 최백호는 아마도 이 땅의 가객 중에 가장 고독한 눈빛의 사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반백머리에 고인 쓸쓸하고 외로운 눈빛은 복잡한 재래시장의 상인이나 후미진 산골의 농부가 뿜어내는 단순한 외로움이나 슬픔에 싸인 마구잡이식의 거친 후회와 울분이 거의 순화된 약간은 부드럽고 편안한 무엇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그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생애를 살면서도 일관되게 고요한 사유와 절제로 잘 정제(精製)시킨 노랫말과 부드러운 가창력에서 나온 것일 겁니다.
우선 김명원 작사 최백호 작곡, 노래의 가사 1절을 살펴보면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내 친구
푸른 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라는 비교적 단순하고 짧은 가사로 통상적으로 바다가 가지는 광활한 아름다움, 파도의 절규, 물거품의 허무함 따위를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닷가에서 자란 소년만이 느낄 수 있는 정감이 있습니다. 그건 친구 같은 바다로 돌아오자 말자 저도 몰래 갈매기날개에 시를 적어 띄우고 돛단배의 닻을 올려 거친 바다를 달려가고 싶은 마음의 발로입니다.
이 노래가 모든 이의 가슴에 아득한 추억의 실마리로 다가오는 것은 고달프고 외로운 생애의 바다를 잘 건너온 절제된 가수의 감정과 정제된 감흥이 느껴지기 때문일 터, 우선 최백호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게 최백호와 한마을에 자란 지인이 있어 듣기로 기장군 일광면 학리마을(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이 영화화된 촬영지), 비록 조그만 어항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해방 후 부산영도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명문가의 자손인데 그가 어릴 적 부친이 석연찮은 사고로 죽어 매우 외롭게 자랐답니다.
그가 스무 살 청년이 되던 70년대에 국회의원의 아들이 가수가 되는 것은 상당한 파격인데다 당대제일의 미인이자 명배우 김자옥과 결혼과 이혼으로 점철된 결코 순탄하지 못한 젊음을 그렇게 잘 정제시켜 편안하고 원숙한 반백의 풍모를 가졌다는 것은 타고 난 자질에 긴 세월을 거쳐 닦은 인품과 그 무엇보다도 외로움의 농축이 있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영일만 친구〉의 노랫말에서 백미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
갈매기 나래위에 / 시를 적어 띄우는 /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 수평선까지 달려 나가는 / 돛을 높이 올리자 / 거친 바다를 달려라
라는 구절을 꼽고 싶습니다. <갈매기 나래와 시, 젊은 날의 뛰는 가슴, 수평선까지 달려 나가, 돛을 높이고 거친 바다를 달리는> 고요한 항구와 조용한 중년의 눈에 어린 영일만의 아름다움과 동해바다의 푸름이 단순하면서도 금방 가슴에 젖어드는 파도나 달빛 같은 리듬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중년이 지나 <낭만에 대하여> 같은 감미로운 노래를 발표하고 이제 많이 좋아진 건강으로 더욱더 원숙한 삶을 사는 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영일만 친구>, 그 참 좋은 노래입니다.
사진1 최백호사진
사진2 해뜰 녘의 바닷가(거제도 지세포항이지만 영일만을 상상해도 좋을 것임
붙임3. <영일만 친구>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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