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⑨-자니 리 〈내일은 해가 뜬다(사노라면)〉

에세이 제 1141호(2020.11.2)

이득수 승인 2020.11.02 03:43 | 최종 수정 2020.11.02 03:56 의견 0

<사노라면>은 제 고향 언양이나 영남에서는 잘 쓰지 않은 어법(語法)일 것입니다. 한 10년 전 MBN에서 <사노라면>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을 보며 아주 오래전 김소월의 시 <못 잊어>에 나오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라.

라는 기억이 떠오르며 그 <사노라면>이 혹시 <살다보면>이 아닌지 컴퓨터로 검색해본 적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영남지방의 어법은 <살다보면>이 보다 자연스러운 느낌이었지요.

그날 <사노라면>의 줄거리는 50대의 산골홀아비와 바로 앞집에 사는 동생과 제수씨의 어쩐지 불편한 세 사람이 적당히 모른 척하면서도 슬쩍슬쩍 챙겨주며 아슬아슬 잘도 살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단번에 그 단순하고 원초적인 모습에 빠진 저는 단골 팬이 되었는데 대부분 농촌이나 산골, 어촌의 나이든 노부부와 이웃 또는 자식들이 가난하고 외로운 가운데서 서로 배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야기로 쓸쓸할 수밖에 없는 노년의 부부에게서 한 줌의 온기 같은 사랑을 찾아가며 동행하는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메시지임에도 어쩐지 자꾸만 방송시간을 기다리는 중독성이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문득 <사노라면>을 다시 곱씹을 기회가 생겼는데 그건 <가요무대>에서 자니 리의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노래를 들으며 그 노래의 부제목이 <사노라면>이라고 자막에 뜬 것을 보면서입니다.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노래는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행복하고, 비가 새는 판잣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오손도손 속삭이는 정든 사람 곁이 라면 행복하다는 좀 감미롭기는 하지만 아주 단순한 행복론을 펴는데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쭈욱 펴라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라는 그 근거가 참으로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파랗게 젊다는 것이 한 밑천이고 내일은 해가 뜬다는 말은 그야말로 양(洋)의 동서(東西)를 가릴 것 없이 만고불변의 진리일 것입니다. 늙고 젊음을 떠나 오늘이야말로 자기 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며 내일도 해가 떠올라 또 하루의 절정을 맞는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가슴 벅찬 일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얼핏 들으면 <그 뭐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하고 흘려버릴 이 나직한 멜로디가 점점 고조되어 분수처럼 쏟아지는 마지막의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마무리는 정말 대단한 폭발력과 중독성을 동시에 갖춘 코러스인 것입니다. 

거기다 불빛에 반짝이는 넓고 둥근 이마와 깊은 눈빛을 가진 원로가수 자니리가 꽁지머리를 틀어 올린 멋진 모습으로 열창하는 이 시대의 대표적 노(老) 가객(歌客)의 비주얼과  목소리가 더한층 분위기를 돋우는 것입니다.

세인(世人)의 관심을 끄는 노래는 가사의 내용이 심금을 울리거나 노래의 멜로디가 살갑고 중독성을 가진 경우의 둘로 나눌 수 있는데 <내일은 해가 뜬다.>, 즉 <사노라면>은 이 두 가지에 열정적 가객 자니리의 눈빛을 보탠 삼위일체의 명곡이라 할 것입니다. 

이득수

사노라면 
작사 김문은, 작곡 길옥윤, 노래 자니리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때도 올 테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행복하지 않던가.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쭈욱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비가 새는 판잣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정든 사람 곁이 라면 행복하지 않던가. 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한숨일랑 걷어치고 가슴을 쭈욱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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