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1910)은 앙리 루소(1844-1910)의 마지막 작품이다. 늙은 화가의 마지막 꿈이었으리라. 아내도 떠나고, 마지막 혈육이었던 딸마저 먼저 저 세계로 떠났다. 이 세계의 끝에서 잠시 꾼 늙은 화가의 마지막 꿈이었으리라. 꿈은 어디에 떠도는가? 저 세계인가, 이 세계인가? 마지막 꿈속으로 들어서면 수런거리며 깨어나는 달밤의 세계, 현실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조용한 마법의 플루트 선율을 들어야 한다. 여기가 외로운 꿈, 앙리 루소의 숲이다.
루소는 이 그림에 대해서 ‘야드비가’라는 한 여인이 소파에 누워 꾼 꿈의 풍경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이질적인 소파와 밀림이 병치되어 있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야드비가를 둘러싸고 피어오르는 연꽃들은 이곳이 습지임을 알려준다. 습지에 핀 연꽃은 여음(女陰)의 상징이다.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야드비가와 피리를 불고 있는 검은 여인이다. 야드비가의 알몸은 그녀가 문명의 세계를 벗어나 원초적 세계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악기를 불고 있는 정체불명의 검은 여인. 야드비가의 시선과 손은 그녀를 향하고 그녀와 이어지려 한다. 달과 숲과 연꽃, 선율로 숲의 생명을 깨어나게 하는 검은 여인의 이미지는 이곳이 칼 융이 말했던 죽음-재생이 일어나는 ‘어머니’, 혹은 ‘영원히-여성적인 것’의 언저리임을 속삭여주고 있다. 꿈의 가장 깊은 곳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 반전이 숨어 있다. 야드비가에 대한 구구한 추측이 있지만 실상 누구도 그녀를 모른다. 야드비가를 호명했던 루소도 그녀가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다는 말 외에 아무런 설명이 없다. 야드비가는 현실의 존재이기보다는 루소의 꿈속 등장인물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생의 촛불이 가물거리던 어느 날,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갔던 많은 여인들, 어머니와 아내와 딸과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이 꿈속에서 하나의 환영으로 구성되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꿈의 환영이 꾸는 꿈을 들여다본 것이라면 이곳은 꿈의 풍경이 아니라 꿈속의 꿈의 풍경인 셈이다. 꿈속의 꿈이 있다면 그러한 겹의 꿈에서 깨어난 현실이 다시 꿈이 아니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루소의 고독한 일생이 말이다. 황당한가? 그러나 그것은 저 지독한 합리주의자 데카르트조차도 혼란스럽게 한 의심이다. 궁금하면 무지 재미없지만 그 분의 『성찰』을 읽어보시길. 미로는 이제 시작이다.
남송 시대 탁월한 풍속화가였던 이숭(1166?∼1243?)이 그린 기이한 그림이 있다. 해골의 판타지 놀이란 뜻인 「고루환희도(骷髏幻戱圖)」, 이 그림을 만나는 것은 신기롭지만 우울한 경험이다. 연희가 발달했던 남송 시대 가설무대의 인형극 공연 모습이다. 실에 묶여진 꼭두각시가 해골이다. 놀라운 반전은 그 해골을 조정하고 있는 연희자 역시 해골이라는 것이다. 17세기 유럽의 바니타스(vanitas; 덧없음) 회화는 세속적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기 위해 해골을 그렸다. 그러나 「고루환희도」에 비하면 상징의 깊이가 유치하다. 해골은 덧없음의 기호다. 삶일지도 모를 꿈, 꿈일지도 모를 삶은 연극과 같다. 줄에 매인 해골의 인형극은 인생이란 덧없는 꿈임을 말하고 있다. 그 헛된 꿈에서 깨어난다면 무엇이 있는가? 바니타스 회화는 여기에서 침묵한다.
보르헤스의 「원형의 폐허들」의 꿈꾸는 자를 다시 기억하자. 꿈을 통해 살과 피를 가진 자신의 자식을 만들고자 꿈꾸는 자, 그의 기이한 끝이 없는 최후를 말이다. 꿈꾸는 자는 수없는 실패 끝에 불의 신의 도움으로 드디어 꿈의 환영으로 아들을 만들게 된다. 그는 그 아들을 북쪽 신전으로 보낸다. 어느 날 꿈꾸는 자는 북쪽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불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도인이야기를 듣게 된다. 꿈꾸는 자는 그 도인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꿈꾸는 자의 신전에 불이 났다. 그는 오랜 노고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불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보르헤스는 소설의 마지막을 이렇게 쓰고 있다. “불길은 그를 할퀴고, 그를 집어삼켰지만 그는 불의 열기를 느끼지도 못했고, 타지도 않았다. 안도감과 함께, 치욕감과 함께, 두려움과 함께 그는 자신 또한 자신의 아들처럼 다른 사람에 의해 꿈꾸어진 하나의 환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름 돋는 반전, 꿈에서 깨어난 우리의 세상도 이러한 환영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보르헤스보다도, 셰익스피어보다도 훨씬 전에 꿈-미로의 기본 패턴을 설계한 위대한 상상력의 장인이 있다. 이후 등장했던 기기묘묘한 수만 가지 꿈의 판타지들은 모두 그가 설계한 두 가지 패턴의 각주에 불과하다. 그 장인은 바로 경이로운 사상가인 장자이다. 『장자』 「제물론」에서 설계한 첫 번째 패턴은 꿈속의 꿈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여기에 무서운 함정이 숨어 있다. 꿈속의 꿈, 꿈속의 꿈속의 꿈의 환상성과 진위를 논하다 보면 그것을 논하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도 꿈이 아니라고 확정할 수 없게 된다. 아니 지금 여기도 꿈이다. 꿈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의 내 현실성을 폭파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테러다. 「원형의 폐허들」의 충격이 바로 그러하다. 「고루환희도」의 상징이 또한 그러하다. 「고루환희도」에서 손을 내밀며 기어오는 아이를 보라. 덧없는 꿈의 환상에 집착하는 유아적 정신을 보여준다. 줄에 매인 꼭두각시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때가 가장 행복할 때일지도 모른다. 꿈의 환상에서 벗어나 눈을 뜨면 꼭두각시를 조종하고 있는 현실의 무서운 실상을 만나게 된다. 그 실상은 아, 또 하나의 꼭두각시 놀음판이다. 해골 인형극을 조종하는 자 역시 또 다른 해골 인형극의 꼭두각시인 것이다. 이 실상을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한 여인이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 클림트의 소녀를 이어받아서 이제 여인은 이 소름 돋는 반전의 허무를 어찌 감당하려 하는가?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하는 문제는 오늘날 가상과 실재라는 새로운 버전의 문제로 제기된다. 조셉 러스낵 감독의 영화 「13층」이 그러하다. 1999년, 폴러와 홀은 현실 같이 생생한 1937년 로스엔젤레스 가상세계 시뮬레이션을 개발한다. 어느 날 가상세계 속에 들어갔다 나온 폴러가 살해되고 홀은 살인 혐의를 받게 된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가상세계 속에 들어간 홀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가상세계를 만든 폴러와 홀의 세계 역시 시뮬레이션, 가상세계라는 것이다. 그들이 만든 1937년 로스엔젤레스의 인간들처럼 1999년의 그들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다. 홀은 통행이 금지된 세상의 끝에까지 차를 몰고 가 이 세상이 전자 신호로 만들어진 컴퓨터의 프로그램임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실제로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를 주장한다.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은 『멀티 유니버스』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의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우리의 시뮬레이션 우주는 근사값으로 계산하는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오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누적되어 어느 순간부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법칙들이 갑자기 부정확한 예측과 결과를 내기 시작한다. 이를 수정하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실패로 끝나면서 모두가 거의 포기했을 즈음, 괴팍한 한 과학자가 나타나 이런 주장을 한다. 물리학자들이 지난 수천 년 동안 개발해 온 연속체법칙을 강력한 컴퓨터에 입력한 후 우주의 진화과정을 시뮬레이션하다 보면 지금과 똑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 그는 우리가 많은 시뮬레이션 우주 중의 하나에 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원형의 폐허」나 영화 「13층」, 비슈누의 꿈,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는 꿈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꽤나 충격적인 미로이지만 이들은 적어도 최종 창조주, 최종 실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도 끝이 있는 미로인 것이다. 꿈의 양파껍질을 벗겨내고 벗겨내고 벗겨내면 결국 최종적인 현실에 도달하게 되는 것일까? 만약에 그 최종 현실세계를 확정할 수 없거나, 그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고루환희도」에서 줄에 매어진 해골 인형을 연희하는 해골에게는 매어진 줄이 없지 않은가? 출구가 없는 미로를 본 적이 있는가?
◇미학자 이성희는
▷1989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부산대(철학과 졸업)에서 노자 연구로 석사, 장자 연구로 박사 학위
▷시집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 등
▷미학·미술 서적 『무의 미학』 『빈 중심의 아름다움-장자의 심미적 실재관』 『미술관에서 릴케를 만나다』 등
▷현재 인문고전마을 「시루」에서 시민 대상 장자와 미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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