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이트회 선교사 카스틸리오네(1688-1766), 중국명 낭세녕(郞世寧)은 강희제의 가톨릭 포교 활동 금지와 대대적인 선교사들 출국 조치에도 북경에 남을 수 있었다. 그의 탁월한 그림 솜씨 때문이었다. 이후 이 이탈리아 선교사는 북경에서 중국화와 서양화를 절충하는 많은 명작을 남기게 된다. 옹정2년에 옹정제 생일을 축수하기 위해 제작된 <숭헌영지도(嵩獻英芝圖)>를 보라. 정교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마치 유화로 그린 듯하지만 분명 비단에 중국 전통의 물감과 붓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이 그림은 전통 중국화일 수 없게 하는 실수(?), 아니 분명 의도적인 위반을 숨기고 있다. 바위와 나무에 명암이 스며들고 있는 것을 보라. 그래도 그 정도는 용납할 수 있다. 진짜 치명적인 것은 상단 소나무 둥치에 한 줄기로 드리워진 가지의 그림자이다. 이건 선을 넘은 것이 아니라 판을 뒤집은 것이다.
동아시아의 옛 그림에서는 그림자를 그리지 않았다. 근데 이 단언은 잠시 미뤄두어야 한다. 3회에서 예고했지만, 흥미로운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12세기 남송의 교중상(喬仲裳)의 「후적벽부도(後赤壁賦圖)」(권)를 펼쳐 보아야 한다. 그 첫 장면에 세 선비와 시동의 그림자가 분명하게 그려져 있지 않은가. 이것은 내가 아는 한 그림자가 제대로 그려진 인류 최초의 그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림자를 그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 그림은 북송의 문호 소동파의 「후적벽부」를 도해한 긴 두루마리 그림의 첫 부분이다. 소동파의 〈후적벽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해 10월 보름에, 설당(雪堂)으로부터 걸어서
장차 임호정으로 돌아가려 할 적에 두 손님이 나를 따라왔다.
황니고개를 지나니 서리와 이슬이 이미 내리고 나뭇잎이 다 떨어졌으므로
사람의 그림자가 비쳐 땅에 있기에 우러러 명월을 보았다.
돌아보고 즐거워하여 길을 걸으며 노래 부르면서 서로 화답하였다.
이 시의 첫 장면을 교중상은 충실히 그림으로 구현했다. 달빛을 받으며 시를 주고받는 소동파와 두 손님, 그리고 어부에게 말을 거는 시동의 뒤로 그림자가 완연하다. 그리하여 최초에, 그리고 동아시아 회화사에서 근대 이전에는 결코 다시 등장하지 않을 그림자가 등장했던 것이다, 낭세녕의 위반을 예외로 한다면 말이다. 그림의 이 부분에는 따로 <월하시우도(月下詩友圖)>라는 서정적인 제목이 붙기도 한다.
동아시아 옛 그림에 그림자가 없는 이유가 있다. 동아시아와 서유럽의 미학 원리들을 살펴보자. 서양 회화의 제일원리는 모방(미메시스, mimesis)이다. 모방은 ‘불변하는 존재’라는 저 2000년 이상 서양의 사유를 꼼짝달싹 못하게 한 기이한 발상을 전제로 한다. 불변하는 존재인 이데아의 모방이 세계이고 세계의 모방이 그림이다. 다시 말하면, 이데아의 그림자가 세계이고 세계의 그림자가 그림이다. 그런데 반전인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사치오 이후 서양 회화의 형상들은 그 자체가 그림자를 가진 유사 이데아(불변의 존재)이기를 꿈꾼다. 그것은 회화만의 일이 아니다. 달밤의 런던브릿지 위에 환상의 세계를 펼치는 「피터팬」조차도 웬디에게 와서 잃어버린 그림자를 다시 발에 꿰매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던가. 서양의 상상력은 집요하게 ‘불변하는 존재’의 언저리를 떠돈다. 그래서 한 번씩 아웃사이더들이 이 언저리를 슬쩍 벗어나는 이미지를 시전하면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반면 동아시아 미학의 제일원리는 대상이 가진 기의 흐름을 생동감 있게 드러내고자 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이 원리는 모든 것이 유동적인 기가 모이고 흩어지며 만드는 기의 춤임을 전제로 한다. 기의 카니발에 불변이라는 요상한 존재는 초대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동아시아의 옛 그림은 형상을 닮게 그리는 것[形似]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하물며 그림자이겠는가? 낭세녕의 그림자는 단순한 위반이 아니라 기본 미학의 차이를 드러낸다. 그것은 서구의 상상력과 미학 원리 위에 구성된 회화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전통에는 그림자의 상상력, 그림자의 판타지가 아예 없다고 생각한다면 속단이다. 여기 폴리비우스의 그림자 이야기에 필적할 만한 옛 이야기가 있다. 북송 시대에 중인(仲仁)이라는 중이 있었다. 이 화상이 주로 교유하는 사람들이 소동파를 위시한 당대 최고의 시인묵객들이었다. 어느 날 이 명사들과 풍류를 즐기고 여흥이 남은 채로 홀로 절 방에 누웠다가 달빛에 비친 매화의 그림자가 창에 어리는 것을 보게 된다. 화상은 그 고담스러우면서도 황홀한 형상에 취하여 벌떡 일어나 붓을 들고 그대로 따라 그렸다. 이것이 먹으로 매화를 그리는 묵매(墨梅)의 시작이었다. 물론 그 시절의 창은 당연히 유리가 아니고 창호지다. 고요한 달밤, 달빛에 적셔진 창호지에 매화 그림자가 스미는 운치란 어떠했으랴? 낙화의 그림자를 받는 시인 조지훈의 미닫이 창호지처럼.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그날 밤 중인을 홀린 그 마법적인 그림자 그림이 어떠했을지 궁금하다면 심사정의 <월매>를 보면 된다. 역적 집안에서 태어나 그림자처럼 살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그림밖에 그릴 수 없었던, 그러나 레알 그림 하나는 기똥차게 잘 그렸던 조선의 화가 심사정의 저 황홀한 묵매를 보라. 대나무의 미가 직선에 있다면 난초는 곡선이며 매화는 굴곡이다. 심사정은 농묵과 담묵의 몇 획만으로도 매화나무 오래된 둥치의 굴곡에 달빛이 스며드는 모습을, 아니 달빛이 어루만지는 그 촉감을 그려낸다. 어린 새 가지는 청신한 기운으로 솟아오르며 달빛을 꽃으로 피운다. 그리하여 그윽한 매화 향기가 퍼뜨리며 마음의 뜨락 가득 시정(詩情)이 흐르게 한다. 묵매는 그림자 그림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화를 처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다는 북송의 은군자 임포가 천고에 회자되는 매화의 은유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그윽한 향기를 말하는 ‘암향(暗香)’과 성긴 그림자를 뜻하는 ‘소영(疏影)’이었다. 심사정의 「월매」야말로 바로 그 그윽한 향기와 성긴 그림자의 그림이다.
미뤄 두었던 질문에 답을 했으니 이제 그림자를 찾는 여정은 끝이 났다. 등 뒤에 긴 그림자를 끌고 프루프록의 인적 드문 거리를 지나서, 마네의 황량한 골목을 지나서, 우리도 어느 고요한 그늘에서 쉬었다 가자. (그림자 테마 끝)
◇미학자 이성희는
▷1989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부산대(철학과 졸업)에서 노자 연구로 석사, 장자 연구로 박사 학위
▷시집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 등
▷미학·미술 서적 『무의 미학』 『빈 중심의 아름다움-장자의 심미적 실재관』 『미술관에서 릴케를 만나다』 등
▷현재 인문고전마을 「시루」에서 시민 대상 장자와 미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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