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화톳불이 일렁이는 구석기인의 동굴에서도 오늘밤 초고층 아파트 침대에서도 상영되는, 가장 낡으면서도 가장 새로운 영화이다. 꿈의 독특한 점은 ‘나’만의 극장이라는 것이다. 근데 잠깐,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좀 있다. 하나의 꿈을 두 사람 이상이 공유했다는 이야기들이 오래 전부터 전해 오고 있으니 말이다.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위해 지은 김만중의 『구운몽』은 성진의 꿈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면 속단이다. 하나의 꿈에 성진과 팔선녀가 함께 접속한 꿈 이야기다. 더 고약한 것은 조선 중기 명신 이산해(李山海)의 탄생담이다. 이산해의 아버지가 중국에 사신을 가다가 산해관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그날 밤 꿈에 부인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데 한양에 있는 부인 또한 그 시간 같은 꿈을 꾸고 잉태하여 이산해를 낳았다.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라며 소리치는 자여,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발을 삐걱하는 사이 그대 ‘구망’의 하염없는 밤 속을 떠돌게 될지? ‘나’만의 극장이 와해될 때 시작될 충격적 사태에 대해서는 일단 침묵하자.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영화, 꿈의 영사기는 누가 돌리는 걸까? 누가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의 잠 속으로 스며들어와 자욱한 먼지의 입자들을 춤추게 하면서 영사기 등을 켜는 것일까?
퓨젤리(1741-1825)는 아마 ‘구망’을 떠돌다 왔을지도 모른다. 그는 정치적 이유로 취리히를 떠나 런던으로 왔다. 낯선 런던의 어두운 골목길을 걷다가, 혹은 등불이 가물거리는 자취방에서 그를 버린 취리히의 한 여인을 생각하다가 깜박 조는 사이, 해리포터를 마법의 세계로 데려간 킹스 크로스 역 9와 3/4 승강장과 같은 기이한 구멍으로 빠져 ‘구망’의 세계를 여행하고 왔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는 런던에서 성직자의 신분을 버리고 화가가 된다. 그리고 꿈의 몽환적 환영인 「몽마(The Nightmare)」를 그린다. 「몽마」가 1782년 런던 왕립아카데미에서 전시되었을 때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전율했고 경이에 차서 퓨젤리란 이름을 서로 전하기 시작했다. 유명해진 것이다.
꿈의 악마, 몽마는 여자의 꿈속으로 들어와 여자의 가슴팍에 앉았다. 몽마는 이 여자의 꿈은 이제 자기 것이라는 듯이 득의에 찬 채 관객을 돌아다본다. 섬뜩하지 않은가. 북유럽 신화에서 몽마는 악몽과 질병을 주고 꿈속에서 여자들을 겁탈한다. 여자는 가슴을 몽마에게 내맡긴 채 다리를 꼬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고통과 성적 흥분이 묘하게 뒤섞인다. 붉은 커튼 사이로 괴기스런 말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이는 노골적인 성행위의 은유다. 더구나 그 갈라진 붉은 커튼은 여자의 침대 시트로 이어져 그녀의 몸과 접촉하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이 에로틱한 공포가 당시 관객들을 전율하게 했으리라.
몽마가 여자의 꿈을 만들고 꿈의 영사기를 돌린 장본인일까? 사람들은 몽마가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숲을 어슬렁거리다가 밤이 되면 마을로 내려와 사람의 잠속으로 들어온다고 믿었다. 「몽마」가 그려진 지 백 년이 조금 더 지난 뒤, 비상한 두뇌와 치밀한 실증, 그리고 강력한 편견으로 무장한 천재가 전혀 다른 견해를 밝혔다. 그는 바로 프로이트다. 프로이트는 명저 『꿈의 해석』에서 이렇게 말한다. “꿈은 완전한 심적 현상이며, 어떠한 것의 소망충족이다.” 몽마는 어두운 숲이 아니라 그녀 마음의 심층, 무의식에 산다. 몽마는 그녀의 마음이 억압된 성적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이미지이다. 그녀의 무의식이 영사기를 돌리는 것이다. 자, 그런데 옛 사람들의 믿음과 프로이트의 믿음,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지 누군들 확실히 알겠는가?
칼 융은 프로이트의 성욕 중심의 이론에 거부감을 느끼고 마음의 심층을 다른 각도로 들여다보았다. 칼 융에 따르면 꿈은 한 개인의 마음을 넘어 훨씬 더 광활한 미지의 영역과 닿아 있다. 4월의 봄날, 안평대군이 꾼 복사꽃 만발한 도원(桃園)의 꿈을 그림으로 옮긴 안견의 「몽유도원도」의 길에서 칼 융이 꿈을 들여다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옛 그림의 서사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간다. 그러나 꿈의 길은 현실과는 반대다. 「몽유도원도」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꿈의 서사가 전개된다. 왼쪽 끝 풍경이 현실의 공간이라면 시냇물을 만나면서 산봉우리들이 갑자기 기괴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몽환적인 꿈의 공간이다. 안견은 산봉우리를 구름처럼 그리는 운두준(雲頭皴)을 썼다. 산은 구름이 되고 구름이 산이 된다. 중간의 깊은 계곡을 지나면 비밀스러운 도원의 공간이다. 도원은 기봉들로 에워싸여 있는데 들어가는 입구가 어디 있는가? 독자 여러분, 그림의 중앙 하단에 숨겨진 동굴의 입구를 발견하셨는가요? 감추어진 좁은 동굴을 지나서 도달하게 되는 도원의 이미지는 오랜 시간 숱한 사람들의 마음을 거쳐 오면서 형성된 ‘원형적 심상’(칼 융)과 이어져 있다. 도원은 모태, 자궁의 형상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시작되는 이상향 도원은 실은 세속의 환란으로부터의 피난처이며 은둔지다. 생각해 보라,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심리적 도피처가 어디겠는가? 우리가 체험했던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곳, 그곳은 모태이다. 조선말 흉흉한 민심 속에 은밀히 떠돌기 시작한 『정감록』의 십승지(十勝地) 또한 마찬가지다.
프로이트의 꿈 해석법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점이겠지만, 꿈의 이미지가 원형과 접속할 때 꿈은 자주 예지적 비전을 드러내기도 한다. 모태는 우리가 태어난 곳이지만 또한 우리가 죽는 곳, 무덤이기도 하다. 신화의 숱한 영웅들이 들어가 (상징적으로) 죽는 곳인 미궁, 동굴, 괴물의 배속, 지하세계는 모두 모태이며 무덤이다. 「몽유도원도」, 이 황홀한 이상향의 꿈속에 적막한 죽음의 예감이 떠돈다. 인적이 끊긴 산길, 도원의 빈 집과 빈 배(한 번 찾아보시라)는 왠지 가슴 한 곳을 스산하게 한다. 실제로 이 그림을 보고 줄을 서서 글 솜씨를 뽐내며 제사(題詞)를 달았던 사람들은 안평대군을 포함하여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야심가 수양대군의 쿠데타 세력에 의해서 말이다.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꾸어진다. 꿈의 이미지를 만드는 원형은 우리 마음의 가장 밑바닥, 집단무의식에 있다. 그런데 이 집단무의식이란 게 내 속에 있는 듯하지만 내 것이 아니다. 영사기를 켜는 것은 나이지만 나를 넘어선 어떤 것이며, 내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어떤 것이다. 상상력이 또한 그러하다. 꿈은 언제나 상상력의 가장 풍요로운 밑천이었다.
「오시안의 꿈」은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대가 앵그르(1780-1867)가 나폴레옹의 침실 천장화로 주문받은 작품이다. 백발의 가인(歌人)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하프에 기대어 잠들어 있다. 그의 머리 위로 켈트족 전사들의 환영이 떠오르고 있다. 고전주의답게 환영들은 조각 같이 견고하고 얼음처럼 차갑지만, 그러나 낭만주의 상상력의 언저리를 떠돈다. 17세기 말, J. 맥퍼슨은 중세 음유시인 오시안(Ossian)이 지었다는 한 서사시를 발굴하여 발표한다. 맥퍼슨 본인의 위작 혐의가 농후하지만 〈오시안의 시〉는 유럽 낭만주의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용사 핑갈의 아들 오시안은 결혼을 하면 본래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추녀와 결혼한다. 그녀는 아름다움을 되찾고 그 대가로 오시안은 젊음의 나라 타르 나 노그를 300년 동안 통치하게 된다. 어느 날 향수에 빠진 오시안에게 그녀는 절대로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와 함께 귀향을 허락한다. 옛 이야기 속에 언제나 그렇듯이 금지된 것은 저질러지고야 마는 법. 그가 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자, 타고 간 마법의 말은 죽고 오시안은 순식간에 눈 먼 노인이 되어버린다. 이 늙은 노인은 꿈속에서 고향의 가족과 옛 전사들을 만나게 되고 그것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된다.
폭풍우는 그치고,
멀리 골짜기 개울의 중얼거림이 들린다.
술렁이는 물결은 바위를 희롱하고,
저녁 파리 떼의 날개소리 들에 찼도다.
아름다운 빛이여, 무엇을 찾는가?
그러나 그대는 미소 지으며 즐거운 듯 머리카락을 나부끼고 있도다.
잘 있거라, 조용한 빛이여. 나타나라!
그대 오시안의 영혼의 희한한 빛이여!
―〈오시안의 시〉 중에서
꿈은 오시안을 시인이 되게 하였다. 어두운 숲에서 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그의 마음 심층에서 올라온 것인지 모를 꿈이 이제 상상력의 하프를 울리게 할 것이다. 꿈의 영사기를 누가 돌렸는지 그것이 무어 그리 중요하랴. 나의 것도 아니고 세상의 것도 아닌 꿈이 어둠 속에 아름다운 빛(상상력)을 발하며 하프를 켠다. 그리고 우리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미학자 이성희는
▷1989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부산대(철학과 졸업)에서 노자 연구로 석사, 장자 연구로 박사 학위
▷시집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 등
▷미학·미술 서적 『무의 미학』 『빈 중심의 아름다움-장자의 심미적 실재관』 『미술관에서 릴케를 만나다』 등
▷현재 인문고전마을 「시루」에서 시민 대상 장자와 미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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