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룡 교수의 셰익스피어 이야기] 『햄릿』(19 최종회) - 환상과 상상력의 계보학

김해룡 승인 2021.06.21 12:04 | 최종 수정 2021.06.23 08:33 의견 0

 

신들에게 네 명의 자녀들을 위탁하는 눈먼 오이디푸스. by Bénigne Gagneraux(1756-1795)높이 122cm (48 in) x 폭 163cm (64.1 in) [Public Domain]
신들에게 네 명의 자녀들을 위탁하는 눈먼 오이디푸스. by Bénigne Gagneraux(1756-1795)높이 122cm (48 in) x 폭 163cm (64.1 in) [Public Domain]

● ‘공포’(fear)와 ‘연민’(pity)
글을 맺으며 지난 회(18회) 서두에서 밝힌 이 글의 마지막 과제는 『햄릿』이 누리는 세계 연극사 내의 위상이 온당한 것인지를 따지는 일이었다. 18회에서 극이 유령의 존재에 의해 휘둘리고 극의 사건에 유령이 개입하는 점을 필자가 부정적으로 몰아갔다. 오롯이 필자의 소견이지만 이 최종회에서 극적인 반전이 전개되지 않는 한 『햄릿』의 위상은 재고(再考)되어야 마땅한 처지에 이를 수 있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다룰 “To be~” 독백 속의 비현실적/환상적 요소도 그 위상에 해 끼칠 것들이다. 이 글을 시작할 때부터 필자는 ‘위상 재고(再考) 요함’으로 글을 마무리할 의도였다. 

마지막 순간에 필자가 첫 의도를 철회했다. ‘위상 재고’ 여부의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정작 필자의 몫은 독자들이 극의 주요 인물에게 감정이입하도록 장애물들을 설명하고 제거하는 일이다. 텍스트 자세히 읽기와 합리적인 비평이 그 바탕이다. 감정이입은 관객이 무대 위 인물의 처지를 자기의 처지로 받아들이는 인식행위이다. 관객은 고뇌하는 주인공의 사유(思惟)의 세계를 탐험해야 하고 주인공의 정서에 호응해야 한다. 만인에 의해 그 경험들이 축적되어 『햄릿』이 지금의 위상을 누린다면 시비할 일 없다. 다시 말해 주인공의 사유(思惟)의 세계를 공유하는 일이 수월한 관객(독자)은 위상에 시비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감정이입에 장애를 느끼거나 그 경험이 없는 독자들을 이 마지막 글에서까지 도울 일이 필자의 몫이다.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요소를 찾아 내 그것의 순기능을 설명하는 일이다. 유령의 존재는 이미 언급했고 마지막으로 “To be~” 독백을 불편하게 만드는 ‘상상’ 혹은 ‘환상’을 언급할 것이다. 

감정이입의 원형이라 불릴 만한 에피소드가 있다. 톨스토이가 그의 『예술론』의 한 페이지에 이 에피소드를 기록했다. 수렵채취로 삶을 영위하는 한 원시부족 공동체에서 매일 밤 벌어지는 일이다. 부족원들은 낮에 사냥하고 저녁에는 사냥감으로 함께 식사를 한 후 서넛 모닥불 근처에 모여 낮에 그들이 했던 사냥행위를 모방하는 놀이로 피로를 풀며 하루를 마감한다. 이 인류최초의 연극 행위에 등장하는 인물은 활로 무장한 사냥꾼 한 명과 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어미사슴과 새끼사슴이다. 사냥꾼이나 사슴 역을 맡은 인물 모두 매일 서로 보는 이웃들이고 사슴 역은 사슴 가죽으로 의상을 갖추고 손발로 기며 사슴 흉내를 낸다. 극이 시작되면 사냥꾼은 사냥감을 찾아 주위를 헤매다가 이윽고 사슴 두 마리를 발견한다. 추격전은 사냥꾼이 사냥감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모닥불 주위를 대여섯 바퀴 회전하는 것으로 재현한다. 이윽고 시위를 떠난 화살이 새끼 사슴을 꿰뚫자 어미가 달리기를 멈추고 새끼의 상처를 핥는다. 배우들은 당연히 화살을 쏘고, 화살에 찔리는 행위를 연기(!)한다. 사냥꾼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활로 도망치기를 포기한 어미를 겨냥한다. 사냥꾼이 당긴 활시위를 놓으려는 순간 그때까지 숨죽이고 구경하던 관객(부족원)들이 슬픔과 질타의 고함을 지르며 사냥꾼을 만류한다. 어미 사슴의 처지를 자신의 처지로 받아들인 관객들은 이 연극행위가 모방인 것을 잊은 것이다. 낮에 자신들이 실제로 사냥할 때와 사냥이 재현(representation)되는 것을 지켜볼 때의 정서는 다르다. 재현이 발휘하는 신비이다. 어미 사슴을 살려낸 관객들은 함께 안심하고 잠자리에 든다. 

● 아리스토텔레스와 『시학』(Poetics)
이 단순명료한 감정이입의 과정을 기원전 4세기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384 BC-322 BC)가 복잡 난삽하게 이론화했다. 이 철학자에 의하면 “비극은 ‘공포’(phobos, fear)와 ‘연민’(eleos, pity)의 정(情)을 야기하는 사건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달리 말해 『시학』(Poetics, 335 BC) 제8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구성은 공포를 자아내고 연민의 정을 야기할 사건의 모방이어야 한다”고 정의했다. 관객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연민’은 부당하게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운명에 공감하면서 생겨나고 ‘공포’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무대 위 인물이 불운을 겪는다는 인식으로부터 생겨난다. ‘공포’와 ‘연민’은 상응하는 정서이며 모든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이기적 본능으로부터 발원하는 복합적 정서이다. 

이 두 정서는 카타르시스(Catharsis)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카타르시스는 주인공의 처지를 자신의 처지로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순수한 감정이입 이후 실행된다. 필자가 이해한 난삽한 『시학』에 의하면 “비극의 목적은 공포를 자아내고 연민의 정을 야기하는 사건의 재현(representation)을 통해 관객에게 공포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고, 관객은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이 겪는 공포를 내가 겪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이기적 안도감과 함께 무대에 재현된 사건으로 인해 내면에서 피어오른 공포와 연민을 ‘정화’(purgation, purification, clarification), 혹은 ‘씻어내는’(emotional enema) 카타르시스를 성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햄릿의 운명 정도에 ‘공포’와 ‘연민’을 절감하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관객이 몇이나 될까?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리는 이미 과도한 경험과 자극으로 인해 ‘공포’와 ‘연민’의 정을 잊고 있는 것인가? 그럴 것이다. ‘공포’는 아니라도 ‘연민’은 어떠한가? 

카타르시스 이론이 생겨났던 기원전 335년경의 그리스 야외원형극장을 채웠던 관객들은 어떠했을까? 확언컨대 주인공이 겪는 공포에 아무 반응도 드러내지 않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이론을 정립했을 리 없다. 

장녀 안티고네(Antigone)에 의지해 테베 왕국을 떠나는 눈먼 오이디푸스. by Charles Jalabert(1818-1901). 높이 115cm (45.2 in) x 폭 147 cm (57.8 in)[Public Domain]
장녀 안티고네(Antigone)에 의지해 테베 왕국을 떠나는 눈먼 오이디푸스. by Charles Jalabert(1818-1901). 높이 115cm (45.2 in) x 폭 147 cm (57.8 in)[Public Domain]

●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 c. 429 BC)
『시학』이 집필되기 94년 전인 기원전 429년, 소포클레스(Sophocles)의 『오이디푸스 왕』이 공연되던 아테네 디오니소스 극장(The Theatre of Dionysus)의 관객과 원형 무대(Orchestra)를 상상해 보자. 무대에서는 14명 정도의 코러스와 함께 키를 30cm나 높이는 편상화(thick-soled boots)를 신고 실재 얼굴의 두 배 이상이나 되는 가면을 쓴 배우들이 ‘인류 최초의 출생의 비밀’로 기록될 연극 『오이디푸스 왕』을 실연(實演)했다. 배우들의 신체를 확대한 것은 원형극장 꼭대기 석에 앉은 관객도 배우들을 잘 보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범할’ 운명이라는 신탁(神託)을 받고 테베(Thebes)의 왕궁에서 태어난 왕자 오이디푸스는 출생 즉시 발목에 구멍이 뚫리고 밧줄에 꿰매어져 깨진 항아리에 담긴 채 유기(遺棄)된다(아리스토파네스, 『개구리』[Batrachoi ] 김해룡 번역, p.203). 왕실에서 아기를 직접 죽이지는 않았으나 죽으라는 조치였다. 이 죽을 아기를 테베 왕실의 양치기가 인접국 코린스(Corinth)의 양치기에게 넘기고 아기는 마침 후손이 없던 코린스 왕실에 입양된다. 코린스의 왕자로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어느 날 우연히 자신에게 내려졌던 신탁을 듣게 되고 그 운명을 피하려고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코린스를 떠나 테베로 향한다. 코린스의 왕과 왕비를 자신의 친부모로 알고 있었고 테베가 자신의 왕국임을 모른 채이다. 테베의 국경을 넘자 마침 변장한 채 국정 수행 중이었던 자신의 친부 라이오스(Laios) 왕 및 그 수행원들과 조우하고 사소한 시비 끝에 오이디푸스가 이들을 다 죽인다. 신탁의 일부가 이루어졌다. 이어 오이디푸스는 테베를 재앙으로 몰아가던 괴물 스핑크스를 죽인 것으로 인해 선왕 라이오스의 사망 이후 후계자가 없던 테베의 왕으로 추대되고 당시 미망인이었던 왕비, 즉 자신의 어머니와 혼인해 자녀 넷을 낳는다. 신탁이 전부 실행된 것이다. 이후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왕비 이오카스테(Iocasta)가 아들의 존재를 감지한다. 혼비백산한 이오카스테의 격렬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소름끼치는 패륜의 비밀을 손수 파헤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칼로 찌른 후 왕의 신분을 버리고 방랑의 길로 나섰다가 죽음을 맞는다. 

당대 관객들의 감정이입의 수월성을 추정할 수 있는 무대 관행이 존재했다. 즉, 14행으로 축약된 상기(上記)의 스토리 중 관객의 격한 정서를 야기할 사건들, 가령, 아기 발목에 구멍 뚫기, 부친살해, 모친과의 혼인, 네 명의 자녀출산, 두 눈을 찌르는 행위, 그리고 죽는 장면 등은 반드시 메신저나 코러스의 전언(傳言)으로 관객에게 전달될 것, 즉, 무대에서는 비윤리적이거나 유혈의 상황을 재현(representation)하지 말 것 등의 관행이 준수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에서까지 지켜지던 이 관행은 무엇을 염두에 둔 것인가? 필자의 조심스러운 추론은 이러하다. 격렬한 유혈 행위는 말(전언)만으로도 당대 그리스 관객에게 걷잡을 수 없는 정서적 고통을 주었을 것. 이 관객들은 인류 연극의 태동기에 모방과 실재를 혼동했던 철기시대 인류였고 유혈 행위를 무대에 재현할 경우 이들의 내분비 바이탈(vital) 리듬은 위험수위를 넘었을 것. 유혈의 사건에 관한 전언만으로도 관객들은 ‘경악’했고, 인간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갈망했던 이들에게 이야기만으로도 감정이입은 차고 넘쳤을 것, 등이다. 정서의 벽을 중무장시킨 현대 관객들은 상상하기 쉽지 않은 현상이었다. 따라서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목격했던 당대 관객들은 카타르시스 이론 없이도 주인공의 공포에 전율하고 연민의 정을 강렬히 체감했으며 그것들이 씻겨나가는 카타르시스를 체험했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이로부터 94년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비극의 전범(典範)으로 삼아 비극은 이 전범의 극적 전개 방식과 구조를 따라야 한다고 규정한 『시학』을 집필했다. 『시학』은 개별적인 비극의 사례들을 전제로 하여 비극의 일반 원리를 귀납적으로 이끌어 낸 결과물인 것이다.

관객(독자)들로부터 연민의 정을 유도해내는데 장애물로 작용하는 “To be~” 독백 속의 비현실적/환상적 요소에 대한 변명을 논할 차례이다. 변명꺼리를 극 외부로부터 찾았다. 현실과 괴리된 상상/환상을 포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독자층이 내세우고 싶어 할 냉소적 경구(警句)가 있다. 198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가 그의 소설 『백년의 고독』(Cien anos de soledad, 1967)에서 이 경구를 직조했다. “문학은 인간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장 좋은 장난감”(조구호 역, 265)이라는, 희화화된 경구가 그것이다. 비현실적 상상의 영역을 수용하기가 난망인 것으로 인해 심사(心思)가 불편한 독자층은 이 경구에 힘입어 상상력을 냉소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 상상력: 마술적 사실주의
하지만 이 천재적 작가도 불가피하게 셰익스피어의 후예이다. 이 괴이한 경구를 직조한 것이 결코  비현실적 상상력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아닌 것이다. 『백년의 고독』은 끝을 모르는 상상/환상이 빚어낸 비현실적 이야기로 구조되었다. 이 소설은 소위 ‘마술적 사실주의’로 명명된 새로운 유파의 선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와 시간의 공간을 넘어 마르케스는 햄릿이 두려워하는 “죽음 이후의 꿈”에 상응하는 상상/환상을 마술적으로 펼쳐 보였다. 현란한 판타지와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은유들로 넘쳐나는 이 소설 속의 짧은 에피소드 한 가닥이 이러하다.

『백년의 고독』의 초반부의 주인공인 호세 아르까디오 브엔디아와 그의 아내 우르슬라는 근친혼으로 맺어진 부부이다. 우르슬라는 돼지꼬리가 달린 자녀나 이구아나를 낳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남편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부부의 두 가계(家系)는 수 백 년 동안 근친혼으로 피를 섞어 왔으며 브엔디아의 삼촌과 결혼한 우르슬라의 고모는 실제로 돼지꼬리가 달린 아들을 낳은 전례가 있다. 이 신혼부부에게 자식이 태어나지 않자 동네 사람들은 브엔디아가 남자의 구실을 못한다고 의심한다. 이웃인 쁘루덴시오 아길라르는 마을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히 브엔디아의 남성성을 조롱하고 이에 분노한 브엔디아가 창으로 그의 목을 찔러 죽인다. 이후 아길라르의 환영(幻影)은 ‘산 자를 부러워하는 깊은 우수에 잠긴, 죽은 자의 한없이 쓸쓸한 모습으로’ 브엔디아의 집에 출몰하고 그때마다 “또 죽일 것이니 사라져라”는 브엔디아의 간청과 위협을 듣지 않는다. 달리 이 환영을 피할 방도가 없어 부부는 추종자들과 함께 마을을 떠나 2년을 방랑한 끝에 한 곳에 정착해 그곳을 마꼰도라고 명명하고 공동체를 일구어 나간다. 에덴동산에서의 첫 살인과 축출에 대한 은유이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아길라르가 브엔디아의 침실에 나타난다. 연민의 정에 끌려 브엔디아가 “어떻게 그 먼 길을 찾아왔는가?”고 묻자 아길라르는 죽은 지 여러 해가 지나자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강해졌고, 말동무가 절실히 필요했으며, ‘죽음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죽음’과 가까이 있는 것이 너무 무서워 결국 적들 가운데 가장 나쁜 적, 즉 자기를 죽인 브엔디아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브엔디아를 찾아 헤매느라 많은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브엔디아는 거실에서 혼령과 밤을 새워 얘기를 나누고 새벽에 혼령은 떠난다.

600여 쪽으로 된 이 소설이 제공하는 ‘내적 풍족으로 인한 전율’이 어떠한 지는 독자들이 경험할 일이다. 햄릿의 꿈에 관한 상상에 한정해 한 가지만 기억 하자. 햄릿은 죽은 후에 무슨 꿈을 꿀 것인지가 두려워 자살을 포기하고, 소설 속의 아길라르는 “죽음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죽음과 가까이 있는 것”이 두려워 말동무를 찾아 여러 해를 헤매다 결국 자기를 죽인 가장 나쁜 적을 사랑하게 됐다. 아길라르에게 공포감을 주는 “죽음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죽음”은 사자(死者)가 인간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 공포감은 햄릿이 상상하는, ‘죽은 후에 꾼 꿈이 회귀할 곳 없이 (꿈은 꿈의 임자가 산 자일 경우에만 그 임자에게 회귀하기에) 떠돌다가 하데스로 휩쓸려 들어가는 공포’와 상응한다. 상상과 환상만큼 우리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것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소설 속 한 등장인물의 말이다. “인간이 일등칸에 타고 문학을 화물칸에 싣게 되면 이 세상은 개떡같이 끝장나고 말 거야.” 이에 필자가 간섭하고 싶은 말이 있다. “화물칸에 실린 그 ‘문학’에 상상과 환상이 결여되었다면 그 ‘문학’은 화물칸에 실려도 크게 안타까울 게 없을 것 같다.”

● 모호함
『햄릿』에 내재된 모호함은 극을 이루는 주요 요소이다. 그 모호함으로 인해 극에 신비감이 가해진다. 그 모호함은 단순히 극적 개연성이나 동기의 결여로 인한 결과물이 아니다. 완벽한 심층적 증거에 의해 제거될 것도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모호함은 극에 ‘심겨져’(built-in) 있다. 모호함은 극이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들 중의 한 가지 요소이다. 막이 열리는 순간, 파수병이 무방비인 관객에게 대뜸 들이대는 것이 바로 이 모호함이다. 1막 1장, 춥고 칠흑 같은 밤, 추위로 웅크린 채 덴마크 왕궁의 성벽을 지키는 파수병이 교대병의 신원을 묻는 극의 첫 대사, “거기, 누구냐?”(Who’s there?)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열 개가 넘는 질문들이 극중 불편한 모호함의 축을 이룬다. 

이 글의 상당부분이 이 모호함을 조명하는 데 할애되었다. 신비의 영역으로 덮어두기에는 독자들의 해독(解讀)을 불필요하게 저해하는 모호한 대사/장면들이 그 대상이었다. 유령이 햄릿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명령, “나를 기억하라”가 15-6세기 유럽 전역에 만연했던 화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변형임을 수용하는 순간 우리는 ‘지연되는 복수’에 수반되는 의혹이 한 겹씩 벗겨지는 것을 체험했다. 그에 따른 소득은 극 읽기가 쉬워진 것과 햄릿이 동시대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To be ~ ” 독백에 스민 모호함을 조명하느라 많은 지면이 할애되었다. 햄릿이 두려워하는 “죽음 후의 꿈”은 성서의 계시록에서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 1321), 존 밀턴의 『실낙원』(Paradise Lost, 1667)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계보학에 기록될 만한 지옥도이며 우리 시대 작가 마르케스가 현란한 상상력을 펼치며 그 계보를 이었다. 필자는 “죽음 후의 꿈”이 환상의 힘을 보여준 전례로서 독자의 뇌리에 남을 것임을 믿는다. 성서 66권의 대미(大尾)를 환상과 계시의 서(書)인 [요한계시록](Revealation)이 장식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이 계보학에 미흡함을 느끼는 독자는 주제 사라마구(Jose de Sousa Saramago, 1922년 ~ 2010)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의 소설들로 갈증을 채우기 바란다. 

햄릿은 모호함 그 자체이다. 그는 자신이 꾸며대는 광증의 실체를 파악하려고 접근하는 두 염탐꾼 로젠크란츠와 길던스턴에게 결코 내면을 드러내지 않을 것임을 공언한다. 

햄릿.  ...자네들은 내가 피리보다도 다루기가 더 쉬운 위인이라고 
생각하나? 나를 무슨 악기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아무리 긁어 봐도 소리는 내게 할 수 없을 것이네” (3.2.360-3). 

함구하겠다는 햄릿의 이 작심으로 모호함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 들었다. 모호함은 모호함 자체의 가치를 상회하는 그 ‘무엇’으로 변했다. 『햄릿』 찬양론자들은 이 ‘무엇’을 신비(神祕)라 부른다.

● 대단원의 주인공: 호레이쇼
불확실성의 연극 『햄릿』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인물은 호레이쇼이다. 그는 극중 햄릿의 유일한 친구이며 햄릿의 비텐베르그 유학 동기이다. 그에게 덧입힌 기이함을 조명하며 햄릿의 장례식을 언급하면 이 『햄릿』 읽기는 마무리된다. 칼더우드(Calderwood)는 사전적 근거를 밝히지 않았지만 어원적으로 ‘호레이쇼’(Horatio)라는 이름은 ‘말하다’(speaking)와 관련되어 있다고 밝혔다(To Be and Not To Be. 114). 그러나 이 인물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지극한 인내심을 지닌 ‘듣는 자’(listener)로 밝혀진다. 그는 햄릿의 장황한 레토릭을 “그럴 것입니다”(It might, my lord.)(5.1.80), “예, 왕자님”(Ay, my lord.)(5.1.86)으로 응대하며 다 수용한다. 그와 얽힌 비상식적인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는 덴마크인이며 햄릿의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덴마크 궁정에서 관습적으로 벌어지는 “머리가 터지도록 퍼마시는 주연”(this heavy-headed revel)(1.4.17)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급기야 햄릿이 그 관습에 대해 그에게 35행(行)에 걸쳐(1.4.13-38) 설명을 해야 했다. 그는 햄릿의 친구임에도 왕과 왕비가 그를 모른다. 그는 햄릿의 어릿광대였던 궁정 재담꾼 요릭(Yorick)도 모른다. 왕과 왕비는 햄릿의 우울증의 근원을 밝힐 염탐꾼으로 햄릿이 신임하지 않는 로젠크란츠와 길던스턴을 왕실로 불러들였다. 왕과 왕비가 호레이쇼를 알았더라면 의당 그를 불렀어야 했다. 궁정에서의 그의 존재감이 없는 것이다. 햄릿이 3막 4장에서 영국으로 떠난 이후 호레이쇼에게는 자기를 알아주는 인물이 아무도 없는 궁전에 드나들 이유도 사라졌다. 

이 호레이쇼가 극의 서두부터 관객에게 느닷없이 혼란을 선사한다. 그는 파수병들과 함께 햄릿 부왕의 유령을 처음 목격한 직후 “선왕께서 노르웨이 왕과 일대일의 결전을 벌일 때 착용하셨던 갑옷이 유령이 입었던 바로 그 갑옷”(1.1.63-4)이었다고 알린다. 호레이쇼 자신이 햄릿 선왕이 출전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증언이다. 이와 불일치한 증언이 있다. 5막의 묘파는 인부(grave-digger)에 의하면 햄릿 부왕이 이 동일한 전투에서 승리한 날은 “햄릿 왕자님이 태어난 바로 그 날”(5.1.153)이다. 햄릿과 호레이쇼는 동년배이기에 “햄릿 왕자님이 태어난 바로 그 날”은 호레이쇼의 출생일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호레이쇼의 증언대로라면 자신이 선왕의 출전 모습을 목격했던 그 즈음에 햄릿이 갓 태어난 것이다. 

햄릿과 호레이쇼 둘 만의 비밀도 있다. 햄릿이 유령과 대면 한 직후 유령의 실체를 궁금해 하는 호레이쇼에게 “우리 둘(유령과 햄릿)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을 테지만, 그저 꾹 참아 주게”(1.5.145-47)라고 부탁한다. 햄릿은 유령을 목격한 파수병들에게도 이미 함구(“You’ll be secret?”)(1.5.127)할 것을 명해 놓았다. 호레이쇼에게도 사실상 함구할 것을 명한 것이다. 그러나 햄릿이 이 비밀을 무대 밖에서 호레이쇼에게 털어놓았다. 관객에게도 이 사실을 숨긴 것이다. 유령으로부터 들은 바대로 숙부의 부왕 시해 사건을 극화한 극중극 ‘쥐덫’(Mousetrap)의 공연을 앞두고 숙부의 반응을 살필 수고를 호레이쇼에게 부탁하면서 햄릿이 이렇게 말한다. 

햄릿. 오늘 밤 어전에서 연극 공연이 있네. 내가 자네에게 
이미 부왕의 서거에 관하여 말해 준 바 있지만, 그중 
한 장면은 그때의 상황과 흡사하네. 내 자네에게 
부탁일세. 그 장면이 펼쳐지는 것을 보거든 자네의
영혼 속에 깃들어 있는 판단력을 모조리 동원해서 
숙부를 살펴주게. (3.2.85-88) 

시간적으로 1막 5장과 3막 2장 사이 어느 시점에서 이 비밀이 발설되었다. 호레이쇼가 극중 최대의 비밀을 들은 유일한 인물이 된 것이다. 유령과의 대면 이후, 혹은 이 비밀을 들은 이후부터 호레이쇼는 기이하고 그림자 같은 인물이 되었다. 독약을 입힌 칼에 찔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햄릿을 지켜보던 호레이쇼가 갑자기 독이 든 포도주를 마시려 하고 햄릿이 가까스로 이를 제지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의미 없거나 불명예스러운 삶을 택하느니 자살을 택하는 전통을 지켰다. 호레이쇼가 이 전통을 따르려한 것이다. 극에 만연되어 있는 함구와 비밀을 염두에 두면 이 미수에 그친 자살은 비밀을 지키려는 몸짓이다. 혹은 햄릿만큼 호레이쇼도 자살 충동에 휘둘리는 인물일 수 있다. 

● Tell my story. (5.2.353)
호레이쇼의 자살을 만류한 후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달라”(Tell my story)(5.2.353)는 부탁을 남긴다. 1막의 유령 장면에서 두드러지게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었던 호레이쇼는 이후 점점 더 침묵을 지키며, 불분명한 인물이 되어갔다. 그러나 극의 대단원에서 햄릿의 유언 집행자가 된 호레이쇼는 햄릿의 이야기를 전달할 전권을 지닌 채 무대의 전면에 선다. 

호레이쇼. …나로 하여금 아직 모르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일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리게 해 주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음탕하고, 유혈낭자하며, 천륜에 어긋나는 행위,
우발적인 처벌, 과실에 의한 살인, 
교묘한 술책에 의해 이루어진 죽음,
그리고 음모자의 머리 위에 떨어진 빗나간 간계에 
대해 들으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나는 진실 되게 
말씀 드릴 수 있소. (5.2.384-391)

조용히 듣는 자, 극의 비밀을 듣고 함구했던 자가, 이제 자신의 이름(Horatio)이 뜻한 바(speaking)에 충실하게 극의 공식적 목소리가 되었다. 반면, 햄릿은 극의 말미에 자신의 존재와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도록 요구한 첫 연극사적 인물이 되었다. 

소리가 생명인 연극은 그 말미에 결국은 침묵의 진공 속으로 사라진다. 『햄릿』은 이 소멸의 과정에서 특별히 그 침묵이 깊다. 극의 구성을 이루는 사건들을 목격한 인물들은 다 침묵과 비밀을 강요받고 그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유령을 목격한 파수병들에게 함구가 명령되었고, 클로디오스가 선왕을 시해한 사건은 오직 유령에 의해서만 밝혀지고 햄릿만 그 자초지종을 들었다. 후에 햄릿이 호레이쇼에게 이 비밀을 토로하고 호레이쇼는 그 비밀을 충실히 지킨다. 앞에서 밝힌 바대로 햄릿은 두 염탐꾼에게 속마음을 결코 드러내지 않겠노라고 극의 서두에서 이미 선언을 했다. 햄릿은 “남은 것은 정적 뿐”(the rest is silence.)(5.2.363)이라는 마지막 말을 뱉고 죽는다. 이 “남은 것”(the rest)은 자신이 향유하지 못할 남은 삶일 것이다. “향유하지 못할 남은 삶”은 죽음이고 죽음은 정적(靜寂)이다. 더 가깝게는 자신이 아직 뱉지 않은 말들(the rest)은 영원한 침묵에 잠길 것이란 의미일 것이다. 중세인들에게 죽음은 거대한 침묵(great silence)에 잠기는 것을 뜻했다. 

호레이쇼가 ‘햄릿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극의 비밀을 충직하게 지킨 인물이기에 토로할 것들이 넘칠 것이다. 그가 “진실 되게 햄릿의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다”(All this can I/Truely deliver.)(5.2.390-1)고 하지만 관객들은 그가 행한 기이한 언행을 이미 목격했음으로 그 진실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시공의 차이에 따라 같은 이야기가 달리 전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수많은 비평가들이 같은 『햄릿』을 달리 해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뿐인가? 관객은 같은 극단의 『햄릿』 공연을 관람하고도 각기 다른 『햄릿』을 뇌리에 새긴다. 다른 극단의 새로운 공연의 경우, 그 ‘다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 가지, 햄릿이 죽을 때까지 뱉지 못한 “남은 것”(the rest)은 호레이쇼도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아버지의 복수를 잠시 주저하는 햄릿. 햄릿의 이 같은 행동은 무의식중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작용한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해석했다. [Eugène Delacroix 1844 / public domain]

● 연민의 정을 햄릿에게 
오필리어의 묘지 장면 이후로, 그리고 묘지의 정서에 취했던 햄릿이 마침내 음험한 적대자들과의 최후 결전을 받아들인다. 레어티스와의 일대일 무술시합이다. 햄릿을 죽이려는 음모가 무술시합으로 위장되었다. 일대일의 결투지만 상대는 다수다. 왕이 제시한 결투의 조건을 햄릿이 조건 없이 수락한다. 햄릿이 왕의 계략에 무방비인 상태로 말려든 것이다. 그러나 묘지 장면에서 햄릿이 뱉은 경구, “대비만이 우리가 할 전부”(readiness is all)를 떠올리면 우리는 다른 판단에 이르게 된다. 햄릿의 이 경구에는 삶의 종말을 신의 뜻으로 맞아들일 의지가 담겼다. 그는 죽음을 자신에게 초연히 귀띔하기도 했다. “일찍 떠난들 어떠하겠는가? 섭리대로 둘 밖에.” 그는 ‘참새 한 마리 떨어져 죽는’ 것에도 신의 특별한 섭리가 존재함을 믿고 있다. 또한 이 섭리가 만사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 무술시합도 섭리일 것이기에 햄릿이 피하지 않는다. 섭리를 믿으며 생사를 가를 음모에 무모하게 뛰어 든 것이다. 

극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장면이 이러하다. 레어티스가 자신의 칼에 비밀리에 독을 입히고, 결투 중 갈증을 느낄 햄릿이 마실 포도주에는 왕이 독약을 풀었다. 결전이 시작되자 음모를 알 리 없는 왕비가 아들의 행운을 빌며 그 독배를 마시고, 햄릿은 독 입힌 레어티스의 칼에 찔린다. 결전 중에 둘의 칼의 임자가 바뀌고 햄릿이 레어티스가 독 입힌 칼로 레어티스를 찌른다. 왕비가 마지막 숨을 뱉으며 독살 당했다고 외치자, 이내 레어티스도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왕과 자신이 꾸민 음모를 고백한다. 격분한 햄릿이 왕의 입에 독배를 들이부어 왕을 죽인다. 햄릿이 계획한 바 없는 복수가 느닷없이 이루어졌다. 이어 레어티스도 죽는다. 이 죽음을 끝으로 오필리어의 가문이 멸절했다. 햄릿은 마지막 숨결로 적국이었던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라스에게 덴마크의 왕위를 넘긴다. 덴마크 왕실의 혈통이 종언을 고했다.

햄릿의 시신은 마침 덴마크 왕실에 당도한 포틴브라스와 그의 병사들에 의해 단(壇)위에 안치되고 군악이 울리는 중에 전사한 병사들을 위한 장례의식의 예(禮)를 따라 시신에게 엄숙한 의전이 행해진다. 장군이었던 오셀로를 포함하여 셰익스피어의 비극의 주인공들 중 이 병사들의 엄숙한 장례의식을 거친 인물은 없다. 포틴브라스가 군인이 아닌 햄릿에게 병사들의 장례의식을 베풀어 만인으로부터 햄릿이 기억되기를 기원한다. 아일랜드 해방군 병사들의 장례에 대한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의 성찰이 포틴브라스의 이 결정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돕는다. 

왜 우리는 전쟁터에서 죽은 전사들에게 경의를 표해야만 하는가? 
인간은 자신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며 무모한 용기를 발휘할 것이기에 그러하다.
(The Man and the Masks, 298) 

이 시적 경구의 둘째 줄 “인간은”을 “인간은 햄릿처럼”으로 보완하고, “자신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며”(in entering into the abyss of himself)를 ‘죽음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며’로 수용하면 이해는 용이해진다. 찬연한 상념의 기념비를 남긴 채 죽음으로 치달은 햄릿의 무모한 용기는 “자신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며” 병사들이 발휘한 무모한 용기와 동류이다. 자, 지금쯤은 햄릿을 향한 연민의 정이 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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