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프롤로그 - ‘메멘토 모리’의 뿌리 찾기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의 아나모피즘
#종교개혁의 상황을 빗댄 은유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무덤 파는 광대’(Grave-digger)의 인류를 향한 애도(哀悼)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③
● 삶을 택한 자의 변명
“To be or not to be-” 독백의 중후반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햄릿이 자살을 단념하고 삶을 영위할 의도를 드러낸다. 삶을 선택하며 드러내는 변명은 두 갈래이다. 한 갈래는 “죽음 이후의 꿈”, 다른 갈래는 “회귀불가의 영혼”이다. 꿈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햄릿이 “죽는 것은, 잠드는 것”이라 믿기에 잠들면, 즉 목숨을 끊고 잠들면 필연적으로 꿈을 꿀 것이라 믿는다. “그 죽음의 잠에서 무슨 꿈을 꿀 것인가”(in that sleep of death what dreams may come)(66)라는 의문이 우리를 주저앉게 만든다(must give us pause)고 한다. 이 의문으로 자살을 단념하는 주체가 햄릿에서 인류로 확장되었다. 이 확장으로 이 독백은 인류를 포용하는 보편성의 지위를 얻었고 인구에 회자되는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다.
다른 갈래는 “죽음 뒤에 닥쳐올 일에 대한 두려움, 즉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날아가는 공포”(78-80)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 밝힌다. 그 공포가 자살의 결의를 꺾어놓아 우리 모두가 겁쟁이가 되어 이 지상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순서를 바꾸어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이 두 번째 갈래부터 매듭짓자. 햄릿의 직접화법이 이러하다.
햄릿. ...누가 고뇌의 짐을 짊어지고 이 지루한
인생항로에서 신음하며 땀 흘리려 하겠는가, 죽음
뒤에 닥쳐올 일에 대한 두려움, 어떤 나그네도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온 적이 없는 그
미지의 나라가 결의를 꺾어놓고, 우리로 하여금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느니 보다 차라리 현재
당하고 있는 환란을 견디도록 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숙고하다 보면 우리는 모두 겁쟁이가
되어, 결의의 그 타고난 혈색에는 우울한
사색의 파리한 병색이 그늘을 드리우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를 품고 세웠던 계획도 생각이
이렇게 흘러가면 그 진로를 벗어나서, 실행이라는 것은
생명조차도 잃고 마는 것이다. (3.1.76-85)
이 논리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삶의 연장과 파기를 저울대에 올려놓고 숙고하다 삶을 택할 때 그 결정에 죽음의 공포가 작용하는 것은 문화의 차이도 극복하는 진리이다. 햄릿이 느끼는 공포는 인류 보편적이기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논리의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을 뿐이다. 이 디테일을 확인하면 그의 말 바꿈과 복수지연의 심리적 근원이 드러난다. 자살을 단념하게 하는 두려움의 구체적 내용을 햄릿이 이렇게 밝힌다. “… 죽음 뒤에 닥쳐올 일에 대한 두려움, 어떤 나그네도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온 적이 없는 그 미지의 나라 …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는 일이다.
● ‘죽음 뒤에 닥쳐올 일에 대한 두려움’
“죽음 뒤에 닥쳐올 일에 대한 두려움”(the dread of something after death)에 관하여 부연하자면 이러하다. 햄릿이 부왕의 혼령과 대면하기 전, 위험을 예감해 대면을 제지하는 호레이쇼에게 “아니, 내가 두려워할 게 무엇인가? 내 생명이야 바늘 하나의 가치도 없는 것, 내 영혼에, 저것(유령)이 뭘 어쩌겠는가, 저것과 마찬가지로 (내 영혼도) 영원불멸인데?”(1.4.64-67)라고 했다. 이랬던 햄릿이 생사의 갈림길로 자신을 내몰며 태도를 바꾼다. 예측 못했던 두려움이 엄습했고, 그 두려움을 억누르고 자살을 감행할 결기가 자신에게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칼날에 베이는 섬뜩함을 맛보기 보다는 자신이 인지한 세상의 고통을 인내하기가 수월한 것임을 깨달았다. 말 바꾸기가 벌어졌지만 비난의 대상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닥칠 일을 예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나그네도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온 적이 없는 그 미지의 나라”라는 주장도 디테일이다. 공포를 포장하기 위한 변명인 것이다. 햄릿 부왕의 혼령은 그 미지의 나라에 ‘한 번 갔다가 돌아왔다.’ 이후 궁전에 수시로 출몰한다. 그 혼령과 햄릿은 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햄릿은 혼령으로부터 ‘자신이 아우, 즉 햄릿의 숙부에게 시해 당했다’라는 고발도 들었다. 이 고발은 햄릿의 뇌리에 이미 깊이 인각되었다. “To be or not to be-” 독백 이후 전개되는 극중극 「쥐덫」을 통해 이 고발이 사실로 밝혀지자 혼령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미지의 나라”(the undiscover’d country)도 혼령에 의해 그 실체가 알려졌다. 연옥(煉獄)이다. 종교개혁 당시 서민들의 고혈을 짜던 로마 가톨릭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들먹이던 그 연옥이다. 동전소리가 연옥에 머물던 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거짓말을 햄릿도 들었을 것이므로 연옥은 익숙한 곳이었다. 부왕의 혼령은 영혼의 정화를 위해 연옥에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햄릿이 지상으로 ‘돌아온’ 이 혼령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어떤 나그네도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온 적이 없는 그 미지의 나라”로 날아가는 두려움을 읊조린다. 이 불일치도 용납된다. 햄릿의 의식 속에서 종교개혁이 진행되어 가톨릭 교리 구조의 한 가닥인 연옥과 유령의 존재가 부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프로테스탄트 교리는 수많은 설교,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이 쓴 문서들을 통해 영국 전역에 전파되었다. 종교개혁자 헨리 뷸린거(Henry Bullinger)가 자신의 저서들로 영국에 퍼뜨린 새 교리에 의하면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는 순간 “미지의 세계로 향하고 그곳에 당도한 이후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 미지의 세계는 천국이나 지옥일 것이다. 영혼의 향방이 어디이든 죽음의 공포는 동일하다. 공포에 전율하는 햄릿의 모습만 진실되고 디테일은 반박당할 말 바꿈에 불과하다.
결국 이 죽음의 공포로 인해 우리 모두는 겁쟁이가 되며, 혈색은 파리해 지고, 마침내 자살의 의지는 생명력을 잃는다. “숙고하면 우리는 모두 겁쟁이가 된다”(Thus conscience does make cowards of us all)(3.1.83)는 선언은 예사롭지 않다. 햄릿의 행위에 빗대면 거의 극의 중심축을 이루는 선언이다. 이 죽음의 공포는, 그 죽음이 자살에 의한 것인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햄릿의 ‘복수 지연’을 설명할 주요 단서이기에 그러하다. 아래의 질문에 답하면 “숙고하면…겁쟁이가 된다“는 선언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고전 비극의 주인공 햄릿이 ‘죽음 후의 꿈’과 ‘미지의 세상으로 한 번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겁쟁이가 되어 비천한 삶을 영위하기로 한 후, 지상에서의 복수는 숙고한 후 냉혹하게 감행할 것인가?
‘아니오’가 답일 것이다. 숙고하면 겁쟁이가 된다. 숙고한 후 겁쟁이가 된 프로테스탄트 햄릿이 복수를 계획해서 결행할 리 없다. 햄릿의 이 성격이 결정되게 된 『햄릿』 외적인 배경이 있다. 『스페인의 비극』이 이 배경으로 작용했을 개연성이 있다.
● 『스페인의 비극』
『햄릿』보다 8년 일찍 공연된 토마스 키드의 『스페인의 비극』(The Spanish Tragedy, 1592)은 영국 근대 복수극의 전범(典範)이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쓸 때 이 극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유령의 출현과 극중극, 그리고 복수 등, 두 극은 동일한 구성, 동일한 얼개를 지니고 있다. 『스페인 비극』에서는 죄 없이 살해당한 아들의 복수를 주인공인 아버지가 결행한다. 셰익스피어가 『햄릿』과 『스페인의 비극』과의 차별화를 염두에 두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가령, 『햄릿』에서는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아들이 감행한다. 『햄릿』의 극중극 「쥐덫」은 『스페인의 비극』의 극중극과는 달리 살인의 혐의를 확인하기 위한 장치로 설정되었다. 『스페인의 비극』의 주인공 히에로니모(Hieronimo)는 자신이 꾸민 주도면밀한 극중극을 통해 유혈낭자한 복수를 결행하고 자신도 자결한다. 『스페인의 비극』에서는 극의 시종에 걸쳐 유령이 무대 위 이층 발코니에 자리 잡고 극의 전 과정을 살피는 반면, 『햄릿』에서는 유령이 세 번 출몰한 후 사라진다. 두 유령이 각기 자신을 죽인 살인자를 고발하는 것은 동일하다. 차별화의 최대 결실은 주인공의 성격이다. 햄릿은 히에로니모와의 차별화의 결정체이다. 히에로니모의 대척점에 햄릿이 서 있는 것이다. 햄릿은 복수를 계획하고 냉혈한이 되어 결행하는 인물이 되어서는 아니 될 운명이었다. 심지어 그는 앞의 글에서 밝힌 바대로 극의 심층구조에 의해 복수를 결행하지 못할 딜레마에 처해 있기 까지 하다. 햄릿의 현란한 상념은 이 딜레마에 의해 지연되는 복수의 대가이다. 차별화가 거둔 최대의 수확인 것이다.
● 플랜태저넷 왕조(House of Plantagenet)와 클래런스 공작(Duke of Clarence)
첫 갈래인 꿈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햄릿은 죽음의 잠에서 꿈꾸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스스로 삶을 끝내려 한다. 삶을 끝내면 세상의 고통과 모욕을 겪지 않아도 된다. 정작, 햄릿이 구체적으로 무슨 꿈을 두려워하는지, 되돌아 갈 곳이 없는 이 꿈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햄릿이 사후(死後)에 무슨 꿈을 두려워하는가? 16회에서 언급한 ‘보톰의 꿈’(Bottom’s Dream)을 두려워하는가? 아닐 것이다. 보톰의 당나귀 꿈은 황홀한 꿈이다. 사후(死後)에도 그리운 꿈일 것이다. 그 꿈을 꿀 수 있으면 죽음이 두려울 리 없다. 햄릿이 꾸기를 두려워하는 꿈은 ‘당나귀의 꿈’과는 달리 자신을 공포로 떨게 만들 꿈일 것이다.
죽은 후에도 꿈을 꾼 전무후무한 인물로 문학사에 남은 클래런스 공작을 이해하기 위해 영국 고대사를 잠시 살피자. 이 공작은 『리처드 3세』(Richard Ⅲ, 1592)에서 재창조된 역사적 인물이기에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따라야 한다.
영국의 초기 왕조인 플랜태저넷 왕조(House of Plantagenet, 1154-1485)는 12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노르만 왕조의 뒤를 이어 약 330년 동안 영국을 지배했다. 영국에 노르만 왕조를 세운 윌리엄 1세는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국의 군주였다. 이때부터 프랑스에 영국 영토가 있었다. 플랜태저넷 왕조의 시조(始祖)는 헨리 2세(Henry Ⅱ, 재위 1154-1189)이며 이 왕은 프랑스의 루이 7세의 왕비(1137–1152)였다가 이혼한 아키텐(보르도 지방의 옛 이름)의 엘레오노르(Eleanor of Aquitaine)와 결혼함으로써 초기부터 방대한 프랑스 영토와 영국을 통치한 왕이었다. 그러나 제3대 존 왕(King John, 1166–1216) 시기에는 프랑스에 있었던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고, 그 여파로 존 왕은 귀족들에게 굴복해 ‘대헌장’(Magna Carta, 1215)을 인정하게 된다. ‘대헌장’은 영국 귀족들이 국왕의 잘못된 통치에 분노하여,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왕에게 강요하여 받은 법률 문서이며 이후에도 이 대헌장은 영국의 입헌 역사에 중대한 공헌을 한다.
이 플랜태저넷 왕조는 두 가문, 즉 붉은 장미를 문장(紋章)에 새긴 랭커스트 가문(house of Lancaster)과 흰 장미를 새긴 요크 가문(house of York)으로 나뉘어 왕위쟁탈 전쟁을 치렀으며 이 왕조의 마지막 30년은 ‘장미전쟁(War of Roses, 1455-1485)으로 마무리 된다. 1461년 요크 가문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당시 왕이었던 랭커스트 가문의 헨리 6세(재위 1422-1461, 1470-1471)가 망명하고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 4세(Edward Ⅳ, 재위 1461-1470, 1471-1483)가 왕위에 오른다. 1470년 우여곡절 끝에 헨리 6세가 왕위를 되찾았으나 6개월 후 다시 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오르며 헨리 6세를 폐위시킨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헨리 6세는 1471년 구금된 상태에서 사망한다.
이후 왕좌는 열두 살의 에드워드 5세(Edward Ⅴ, 1470.11.2.-1483.7, 재위 1483년 4-6월)에게 이어지는데 대관식을 앞두고 선왕 에드워드 4세와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 여왕재위 1464-1483)의 재혼(1464)이 왕실 관료들에 의해 중혼(重婚)으로 판단되고 결혼이 무효로 선언되는 일이 벌어진다. 왕과 왕비로서 20년을 유지하던 혼인관계가 무효가 된 것이다. 이 재혼 전에 에드워드에게는 첫 부인 루시(Lucy)가 있었고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이에 더해 그는 왕이 된 이후에도 두 번이나 외국 왕녀와의 약혼을 파기하는 방종함을 드러내었다. 이 무효 선언은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며 어린 황태자(에드워드 5세)의 섭정이었던 글로스터(Gloucester) 공작 리처드(Richard)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왕위를 찬탈할 목적으로 관료들을 회유한 결과였다. 어린 황태자는 자신의 아우와 함께 서자로 낙인찍혀 런던탑에 갇히고 이후 “탑의 왕자들”(Princes in the Tower)로 명명되다가 이내 살해당한다. 리처드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자신이 리처드 3세(King Richard Ⅲ, 1452.10.2-1485. 8.22, 재위 1483-1485)로 왕위에 오른다. 이 왕위 찬탈자는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 친형 클래런스(Clarence) 공작을 위시해 자신에게 반대하는 수많은 귀족들을 죽인다. 왕위에 오른 지 2년 후인 1485년, 리처드 3세는 보스워스 전투(Battle of Bosworth Field)에서 헨리 튜더(Henry Tudor)가 이끈 랭커스트 가문의 군대에 패배해 사망하고, 헨리 튜더가 헨리 7세로 왕위에 오른다. 새 왕은 에드워드 4세의 딸인 요크 가문의 엘리자베스(Elizabeth of York)와 결혼하여 두 가문은 화해한다. 헨리 7세의 등극과 함께 플랜태저넷 왕조는 종언을 고하고 영국에는 튜더 왕조(House of Tudor, 1485-1603)가 시작된다.
『리처드 3세』는 장미전쟁의 과정과 그 종말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현한 사극이다. 극중 리처드의 계략에 의해 런던탑에 갇힌 클래런스가 살해되는 날 밤에 “죽음 이후의 꿈”을 꾼다. 꿈에서 깨어나 간수장에게 토로하는 꿈의 내용이 이러하다.
● ‘죽은 이후에도 이어지는 꿈의 내용’
[1막 3장] 런던탑
클래런스 공작과 브래켄베리 등장
브래켄베리 공작님, 오늘 왜 그리 안색이 좋지 않으신지요?
클래런스 아, 끔찍한 밤을 보냈네.
소름끼치는 광경의 끔찍한 꿈들의 밤이었네.
…
브래켄베리 어떤 꿈이었나요, 공작님? 저에게 말씀해 주시지요.
클래런스 런던탑을 탈출했던 것 같아.
그리고 배를 타고 버건디로 가려고 했던 것 같아.
그 배에 함께 있던 내 동생 글로스터가 갑판 위를
산책하자고 해 그리 했어.
…
그 순간 글로스터가 무엇에 걸려 넘어지며,
날 쳐서 (나는 그를 붙들려고 했고)
갑판 너머 격랑의 바다 속으로 빠져 버렸네.
아, 하느님! 물에 빠져 죽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귓전을 때리는 무서운 파도소리와,
내 눈앞에 어른거리는 몸서리치는 죽음의 광경이라니!
수많은 난파선의 가공할만한 잔해들을 본 것 같아!
물고기들에게 뜯어 먹힌 수많은 시체들을 보았네.…
브래켄베리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해저의
그런 비밀을 바라보실 겨를이 있었나요?
클래런스 그랬던 것 같아. 차라리 죽으려고
몇 차례나 애써 봤어. 하지만
그때마다 심술궂은 큰 파도가
내 혼을 가로 막아, 내 혼이
공허하고, 광대하며, 운행하는 대기(大氣)중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어.
대신 파도는 헐떡이는 내 육신 안에서 혼을 질식시켰고.
육신은 그 혼을 가까스로 바다 속에 토해내었네.
브래켄베리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깨지 않으셨습니까?
클래런스 아니, 아니, 죽은 후에도 꿈이 계속 이어졌네.
아, 그때 내 영혼에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어.
시인들이 말하던 음흉한 나룻배 사공에 이끌려,
나는 저 음산한 황천의 강을 지나,
영원한 밤의 왕국에 도달한 것 같았지.
나그네가 된 내 영혼을 그곳에서
제일 먼저 맞은 분이 내 장인이신 워릭 경이었지.
…
그러고는 피에 젖은 밝은 머리칼을 한
천사 같은 혼령이 너울거리며 나타나
이렇게 소리쳤어. “클래런스가 왔소.
튜크스베리 전장에서 날 찔러 죽인
부정하고 거짓을 일삼는 배신자 클래런스가 왔소.
저놈을 결박하시오, 복수의 여신들이여, 놈을 고문하소서!”라고.
이 말이 끝나자
끔찍한 마귀들이 날 둘러싼 것 같았어.
내 귀에 대고 어찌나 무섭게 외쳐대는지,
그 소리에 난, 덜덜 떨면서 잠을 깼던 것 같아.
그러나 깨어나서도 한참 동안은
지옥에 있는 것 같았지. (1.4.63)
햄릿이 두려워하는 ‘죽은 이후에도 이어지는 꿈의 내용’이 어떠한 지는 『햄릿』에 언급되지 않았다. 햄릿은 이 꿈에 대한 상상만으로 공포에 질려 죽기를 단념한다. 셰익스피어가 『리처드 3세』에서만 이 꿈의 실례를 들려주었다. 햄릿이 『리처드 3세』의 클래런스가 꾼 꿈에 가위눌린 셈이다. 연결고리가 있는가? 셰익스피어 당대에 연극은 거의 유일무이한 여흥거리였고 예술의 장(場)이었다. 관객들이 예술의 경지를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적 행위가 제한적이었던 당시 관객들에게 무대의 기억은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것이다. 과도한 추론일 수 있지만 『리처드 3세』를 관람했던 관객들은 햄릿이 ‘죽음 이후의 꿈’을 언급하는 순간, 클래런스의 꿈을 연상했으리라 필자는 믿는다. 햄릿의 “to be or not to be-” 독백은 당대의 관객들이 『리처드 3세』의 클래런스의 꿈을 들었기에 이해할 수 있었던 독백이었다.
클래런스의 꿈을 음미하자. 익사하는 육신을 버리고 영혼이 탈출해야 죽음이 종결된다. 선원들이 침몰하는 배를 포기하는 이치이다. 그러나 폭력적인 파도가 허공으로 오르려는 클래런스의 영혼의 길을 막고 헐떡이는 육신 속에 영혼을 가둬 질식시켰다(flood…smother’d it[my soul] within my panting bulk.)(1.4.37-40) 인간의 꿈이 직조된 이래로, 꿈속에서 ‘불사의 영혼’이 파도에 질식당하기는 처음이다. 그 즉시 육신이 가까스로 영혼을 토해내 영혼은 기사회생하고 육신은 비로소 생명이 다했다. 이후, 클래런스의 혼은 파도를 뚫어 위로 솟구치지 못하고 기진하여 심연의 하데스로 향한다. 이 하데스에서 그의 혼은 생전에 자신이 죽인 헨리 6세의 아들 황태자 에드워드의 혼백을 만나 또다시 죽음의 공포를 맛본다. 이 꿈에서 깨어난 클래런스를 맞는 자는 리처드 3세가 보낸 자객이다.
반면, 클래런스를 죽인 리처드 3세는 보스워스 전투 전날 밤 꿈에서, 자신이 죽인 어린 황태자를 비롯한 열다섯 인물들의 망령들에 의해 밤새도록 죽음의 공포에 절어있다 깨어난다. 지옥의 ‘뿔의 문’(gate of horn, 『아이네이스』 6.893)에서 흘러나온 피 흘리는 열다섯 망령들이 잠든 자의 뇌리를 휘저으며 악몽을 새기는 무대라니! 망령들은 공히 리처드에게 “절망과 죽음이 네 놈을 덮치리라!”고 저주하고 그는 전투에서 그 저주대로 죽는다.
꿈꾸는 육신이 죽었기에 그 육신이 남긴 꿈은 되돌아 갈 육신이 없다. 회귀할 곳이 없는 이 꿈이 희미한 잔광으로 흩날리다 하데스로 빨려 들어가는 허무의 참극이 생겨났다. 햄릿이 클래런스가 꾼 이 꿈의 공포에 가위 눌림을 당했다. 나는 아니다라고 하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요정의 품에 안긴 당나귀의 꿈을 희귀하게 꾸는 반면, 우리들의 꿈은 대부분 공포로 직조된다. 햄릿에게 이 공포에다 “어떤 나그네도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온 적이 없는 그 미지의 나라 …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는” 공포가 더해졌다. 이 공포를 예감하면서 자살을 결행할 수는 없다. “Tow be or not tow be-”독백은 이 공포에 투항해 삶을 택한 우리 모두의 변명이다. 또한 이 독백은 인류가 결코 알지 못하는 미지의 다른 세계로 날아가기보다는 ‘살아서’ 지금 겪는 고난들을 참도록 하는 위로이기도 하다.
기이한 스펠링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스코틀랜드에 갔을 때 셰익스피어가 실제로 말했다고 들은 바의 소리이다. 셰익스피어가 ‘입을 크게 열고 혀를 가장 낮게 하여 발음하는 모음,’ 즉 개모음(開母音)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개모음을 자신의 모국어인 스페인어의 장점으로 여겼다. 고대영어에도 개모음이 존재했다. (윌리스 반스톤 『보르헤스의 말』, 85) <계속>
<전 한일장신대 교수 / 영문학 박사(셰익스피어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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