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2)무엇을 쓸 것인가?

말년일기 제1203호(2021.1.2)

이득수 승인 2021.01.01 19:31 | 최종 수정 2021.01.03 16:50 의견 0
 사진1. M.R.I 촬영의 천장(20. 11. 30)
 M.R.I 촬영의 천장

누구에게나 지나간 한해 한해가 다 소중하고 생애의 하일라이트가 될 수 있겠지만 저 역시 참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냈습니다. 우선 늘 아프고 괴로운 건강문제를 빼고 순수하게 글쓰기만 이야기를 하면 지난 한해는 이미 완성된 1만 쪽 짜리 대하소설 <신불산>을 두 번째로 읽으며 제가 쓰기는 했지만 공룡처럼 덩치가 너무 커 어떻게 잘 가름하기가 힘든 제 자식에 대한 전체적 흐름파악과 어떤 부분을 빼고 보충해야 될지를 생각하며 자잘한 맞춤법을 고치는 것이 주 업무였습니다.
 
다음 포토 에세이는 마침내 1000회와 제 칠순을 넘어 이제 포토 에세이집을 한번 내어보자고 수소문을 하던 중 전부터 조금 면이 있는 출판사 <인타임>과 웹진 <인저리타임>을 운영하는 출판인, 전 국제신문 조송현 논설위원을 만나 산뜻한 구성으로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를 발간하여 경향각지의 매스컴과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열린 공간 <인저리타임>으로 진출하면서 대부분이 전문직업인인 대학교수와 도시공학자, 미학자, 심리학자, 심지어 셰익스피어 전문연구가까지 같은 필진으로 포진하면서 나름 빠지지 않는 글을 쓰려 작품의 길이나 기승전결 등 너무 외형적인 구색에 신경을 써 타고난 순수함, 천진함이 많이 경감되지 않은지 자책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또 명촌리의 고운 자연을 찍어 보내던 순순함이 포토 에세이라는 함정에 빠져 전공도 아닌 사진에 너무 신경을 써 글쟁이 본연을 잠시 잊기도 하고...

그리고 언제 어느 해의 글이 자신의 종명(終命)기가 될지 모르는 형편이라 그간 제 삶에 있어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던 제 아버님과 누님 같은 그리운 사람들과 심지어 저를 몹시 힘들게 한 미운 사람들의 일까지 되씹어보았습니다만 그리움이나 미움을 비워낸 자리에 새로운 기쁨이 자리잡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에는 언제나 더 큰 그리움과 아쉬움이 밀어닥친다는 때늦은 후회와 각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비록 이루어지지 못할지라도 늘 꿈과 그리움으로 살아야 된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올해 2021년은 겨우 70을 산 것이 아니라 이제 70년대 초반을 사는 나이로 뭘 좀 새로운 글, 내 가슴 깊이 자리 잡은 진정한 나의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며 지나간 사진첩과 휴대폰 갤러리를 드나들던 저는 문득 이제 8, 9세 제 손녀들이 그린 그림과 일기나 만화형태, 혹은 동화로 쓴 글을 보면서 일흔한 살의 저도 제 가슴속에 남은 마지막 순수함이랄까 꿈을 담아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를 써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진2 골안못 둑에서 누워서 찍은 궁륭(穹隆)(19. 3. 13)
골안못 둑에서 누워서 찍은 궁륭(穹隆)

물론 명촌리 고래뜰과 골안못, 명촌별서의 사계와 시골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하겠지만 순진한 아이처럼 아직도 남아 있는 이 병든 가슴 속의 짧고 발칙한 이야기와 아슴푸레한 유년의 기억과 피 할 수 없는 현실, 투병의 고통, 병원에서 일어난 일까지 특별한 미화나 감춤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일흔 한 살의 <마지막 순수(純粹)>를 길어 올릴 작정입니다. 여러분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동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첫 번째의 이야기는 특별한 테마나 줄거리도 없이 부산 백병원 M.R.I 촬영실의 천장, 인격과 개성이 완전 무시된 촬영 복으로 갈아입고 속이 훤히 투영된다는 조영제(造影劑)주사를 맞고 요리사의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처럼 결박된 체 30분 동안 온갖 굉음과 소음, 절간이나 어머니의 양수처럼 포근한 음악을 들으며 “숨 쉬세요!”, “숨 참으세요!” 촬영기사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지옥 같은 시간, 멋모르고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맞으면 맞을수록 공포에 싸이는 그 도살장 같은 분위기에 슬며시 눈을 뜨면 기적처럼 환하게 다가오는 천장의 그림입니다. 

아마도 너무나 괴로운 육신의 고통을 겪은 환자가 잠깐 고통을 잊고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지라는 뜻으로 설치한 천장 장식이겠지요. 벌써 5년째 석 달마다 한 번씩 M.R.I 촬영을 받아야 하는 저는 이제 그 어떤 고통, 심지어 죽음보다도 저 M.R.I 촬영이 더 심한 고통이라 다음 생에는 M.R.I 촬영이 없는 세상에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다 하게 됩니다. 

두 번째 사진은 제가 골안 못가의 잔디밭에 누워 비틀즈나 루이 암스트롱을 들으며 거꾸로 보이는 하늘을 찍은 사진입니다. 어떻습니까? 가장 괴로운 순간이나 편안한 순간의 하늘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어쩌면 우리 인간의 삶과 죽음, 꿈과 절망이 모두 저 현란한 한 순간의 환각(幻覺)이 아닐지...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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