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진은 명촌마을 지방도에서 언양읍에서 상북면으로 접어드는 <부리시봇디미>라는 좁은 골짜기를 향해 찍은 사진입니다. 노란 민들레와 하얀 클로버, 진자주 빛 흑싸리꽃을 바탕으로 그 황폐한 언덕의 뒤쪽으로 작은 대밭과 혼자 선 활엽수 한 그루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늘 새파란 들판과 지평선과 능선을 바라보는 사람은 저 잡초처럼 우묵한 대밭 뒤로 포근한 사광리마을과 소막과 저수지는 물론 고래뜰, 이불뜰을 거쳐 부리시봇디미 건너 언양성당과 언양읍성, 언양 5일 장터의 소음과 펑! 튀밥 튀는 폭음도 보고 듣고 냄새를 연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건 제가 뭐 특별해서가 아니고 우리 농경민족은 아주 옛날부터 저렇게 아득한 먼 들판 끝을 바라보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아주 옛날 칡넝쿨이나 토끼가죽 같은 것으로 겨우 몸을 가린 우리의 조상들, 한 다섯이나 일곱쯤의 아이를 가진 덥썩부리 아비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저 들판 끝 두 개의 능선사이 좁은 틈으로 누가 새까만 점으로 다가오지 않는지 살피고 아침을 먹고도, 점심을 먹고도 ,또 해가 지과 완전히 어둠이 세상을 삼키기 전 노을빛 아래서도 저 들판 끝을 살폈습니다. 혹시나 자신의 움막집을 덮쳐 소나 염소 같은 가죽이나 칡이나 도토리 같은 먹거리에 심지어 아내나 딸들을 훔쳐갈지 모르는 낯선 사내들 무리, 말을 타거나 칼을 든 무리들이 다가오지 않아야 비로소 움막속의 제 식솔들이 편안히 잠들 수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사내가 저 먼 들판 끝을 살피는 동안 아낙은 딸아이들을 데리고 피나 강아지풀 같은 여러 가지 풀씨의 알곡을 줍고 강가에서 움직임이 느린 조개를 잡고 가끔은 머루나 다래 돌 복숭아나 돌배를 발견하는 횡재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덩치가 조금 큰 사내아이들은 패를 지어 산토끼를 잡거나 알몸으로 웅덩이를 헤엄쳐 메기나 붕어를 잡기도 했겠지요. 또 아주 날씨가 청명한 날은 차디찬 삭풍이 뺨을 에이던 겨울이나 꽃향기가 가득한 봄의 훈풍이나 단풍이 물들거나 낙엽이지고 마침내 찬바람 끝으로 눈이 내려 시야가 흐려지는 한겨울까지 저 들판 끝을 바라보며 가족을 지키던 사내가 활과 창을 둘러매고 커다란 곰이나 순록을 잡으러 떠나면 아들 중에 그 중 큰 놈이 아비가 섰던 자리에서 먼 들 끝을 바라보았겠지요. 법도 없고 나라도 없던 그 시절엔 그렇게 만인과 만인이 서로 적이 되어 죽이고 빼앗기를 거듭하던 시절이니까요.
그렇게 사냥을 나가는 사내는 사진속의 대숲이나 나무가 있는 지점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레 나뭇가지나 넓은 잎 너머 반대쪽에 혹시 자기처럼 이쪽을 지키는 눈이 있는지 한참을 살피기 마련인데 어느 순간 아! 커다란 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나부끼는 순간 자기와 똑 같은 어느 사내의 눈길을 마주하고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잠시 뒤 아주 오래전에 한두 번 만나 악수를 한 사이임을 알고 무기를 놓고 악수를 하는데 한문자 서로 상(相)자(字)가 바로 그렇게 나무를 사이에 두고 두 눈이 마주치는 상태이니 엄청 무섭고 긴박한 글자인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젠 사람들의 숫자가 제법 늘어나고 저 산 너머나 들판 건너 마을에는 어느 듯 시집을 가거나 분가한 딸이나 작은 아들들이 손자를 낳고 사는 조그만 움막마을들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경계심은 한결 풀어지고 이제는 저 들판 끝으로 시집간 딸이나 아들, 손주와 사위와 며느리, 어떨 때는 모처럼 커다란 곰을 잡아 낑낑거리며 다가오는 아비의 음영을 찾아내고 온 가족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겠지요.. 이제 저 먼 들녘의 끝이 두려움이 아닌 반가움의 땅으로 바뀐 것입니다.
아직도 유목(遊牧)생활을 하는 몽골인들은 말이나 낙타에 자신들의 천막 겔(파오, 포(苞)를 짓고 양을 길러 양젖을 먹고 치즈를 만들고 좋은 날엔 양을 잡아 양고기를 먹고 사는데 해마다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 살고 또 너무 드문드문 떨어져 살아 아주 늙은 목동은 저 멀리 한 10킬로쯤 떨어진 곳에서 인기척이 감지되면 발랑 엎드려 땅에 귀를 대고 한참을 집중하면 지금 얼마쯤 떨어진 곳에서 말이나 낙타 몇 마리, 또 몇 명의 사람이 오는지를 감(感)을 잡아 미리 양을 잡아 만찬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귀한 황야에서 자기의 가족이 아닌 손님을 만난다는 일은 너무나 커다란 사건이자 교류이며 영광이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석양이 뉘엿뉘엿한 초저녁에 손님이 도착하면 불에 달군 돌멩이로 잘 구운 양고기와 양젖이 저녁식탁을 채우고, 만찬이 끝나면 아득히 높고 밝은 초원의 달빛 아래 말의 머리처럼 생긴 마두금(馬頭琴)을 울리며 길고긴 목동의 창과 휘파람으로 밤을 새는 것이지요. 그래서 손님을 무엇보다 귀하게 생각하는 몽골사람들은 밤이 이슥하면 손님을 자기의 아내가 자는 방에 같이 자게 하는 바람에(인류학에는 공처(供妻)제라 함) 그만 매독(梅毒)이라는 성병의 발원지(發源地)가 되었다고 합니다.
양력설이 지났지만 올해는 저 들판 끝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 많이 다를 겁니다. 반가운 사람의 실루엣이나 발자국보다는 혹시 코로나19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또는 손님의 호흡을 타고 다가오는 것이 아닌지, 그러니까 찾아오는 손님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시절이 되고만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꽁꽁 언 땅도 풀리고 지진으로 무너진 땅에서도 샘이 솟듯이 언젠가 이 끈질긴 바이러스도 물러나고 저 들판 끝으로 향긋한 꽃향기와 보리냄새가 실려 올 날이 있을 겁니다. 아직은 모두 긴장이 풀리지 않았지만 짧은 한 순간만이라도 저 먼 들판 끝을 보며 무언가 행복한 손님이나 바람, 새로운 희망을 한번 느껴보기 바랍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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