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8)눈 오는 날의 회상(回想)

말년일기 제1209호(2021.1.8)

이득수 승인 2021.01.08 00:14 | 최종 수정 2021.01.22 16:09 의견 0
사진3. 눈을 쓴 장독간과 대밭
눈을 쓴 장독간과 대밭

어제 오후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아내가 달콤한 믹스커피 한잔을 맛있게 즐기는 사이 저는 아내가 말하는 <도리뱅뱅>, 혼자서 거실과 제 서제는 물론 식탁 뒤의 좁은 공간까지 한 30분 뱅뱅 도는 실내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창 바람이 불어 검정비닐조각이 바람에 펄럭이는 텃밭이 눈에 들어왔는데 아뿔사, 영하 10도를 보통 내려가는 큰 산 아래 마을의 강추위에 저를 비롯한 세 손녀의 허수아비가 달달 뜨는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그 허수아비를 만든 계절이 초가을이라 그런지 손녀 셋의 입성은 그들이 평소에 입던 소매가 긴 점퍼와 폭이 넓은 치마라 다리부분에 해당되는 대나무막대까지 완전히 피복이 된데다 다들 챙이 넓은 모자를 써 그렇게 많이 춥기보다는 옹기종기 다정하고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옆에 우뚝하게 선 마초할배는 회색의 소매가 긴 셔츠 하나만 걸친 차람이라 대나무로 만든 외짝다리가 완전히 강추위와 바람에 노출된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제 아바타, 허수아비가 너무 불쌍한 저는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고는 멀리 인도와 부산의 연산동에서 코로나19에 몰려 학교도 못 가고 월동하는 아기 곰처럼 움츠리고 있을 세 아이를 생각하다 어느 듯 자신의 허수아비가 춥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맨 먼저 체온검사, 당뇨측정을 하고 대하소설 <신불산>의 교정에 들어갔습니다. 하도 부작용이 심해 간암환자에 대한 마지막 신약 <카보잔티납>이란 신약을 끊고 나니 우선 지내기는 좀 편한데 이러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절망적인 순간이 다쳐 이 포근한 세상, 정든 사람들 다 떠나야 된다는 공포심도 들지만 40년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나 언젠가 내 고향 신불산 아래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내 아버지와 조상 또 내 누이들이 눈물 뿌리며 살아온 언양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리라.’ 다짐하고 정년퇴직을 하고 3년이나 맘을 다잡아 2012년부터 19년까지 8년에 걸려 1만 쪽이 넘는 긴 글을 쓰고 이 공룡처럼 큰 내 작품이자 자식, 내 생애의 의미인 <신불산>이 도대체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다듬어 세상에 내어놓을지 몰라 지난 연말까지 2년에 걸쳐 다시읽기를 해 이제 대충 그 줄거리의 흐름과 고비와 갈래, 큰 주제와 작은 방점을 파악하던 판에 이제 더는 약도 없다는 강박관념에 전체의 줄거리에서 언양과 신불산이라는 주제와 동떨어진 가지치기를 하고 1000명이 넘는 작중인물의 이름이라도 헛갈리지 않게 열심히 교정을 하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말자 한 시간 남짓 정신이 맑을 때 가장 능률이 올라 오늘도 너무나 외롭고 괴로운 40대 후반의 행정바닥, 그 복마전 부분을 맴도는데

“여보, 눈이 왔어. 눈이.”

이제 잠이 깬 아내가 놀란 목소리로 서재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명촌리로 귀촌한지 6년째에 단 두 번째로(그것도 한번은 너무 적게 내려 미처 사진 찍을 틈도 없이 녹아버린) 제법 많은 눈이 내렸는데 하필이면 올해는 물론이고 최근 몇 십 년 사이 가장 추운 날이라는 오늘 수은주가 영하13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지만 눈이 녹기 전에 사진을 찍으러 나갔는데 휘잉 강풍이 불어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쳤지만 다행히 지붕이나 대나무가지위의 눈이 저지대인 우리 밭에 쓸려와 조손 네 허수아비는 아주 포근하고 정다운 자세로 다정하게 서로를 마주보는 것 같아 얼른 눈밭 속의 허수아비와 단지뚜껑에 논이 소복한 장독간을 찍고는 급히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인도와 부산의 가족과 단톡방 <미인천하>, <초등학교동창회>등 몇 곳에 사진을 보내고는 눈보라처럼 더 아득한 회상 속에 빠졌습니다.

눈 오기 전날 허수아비 가족
사진1.어제 낮에 찍은 허수아비 가족 사진2.눈밭 속의 허수아비
눈밭 속의 허수아비 가족

우리 어릴 적엔 언양지방에 눈이 자주와 영축산에서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을 거쳐 고헌산에 이르는 영남알프스의 능선은 겨우내 하얀 눈에 덮였고 양력4월에도 음달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히뜩히뜩 잔설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많이 오는 해는 농사가 풍년이 지고 살기가 좋다고 하면서 눈에 발이 푹푹 빠져 걷기조차 힘든 신불산 금강골 너머 빨치산에 쌀을 져다주고 돌아오다 온몸이 동태처럼 꽁꽁 얼어붙었던 착한 농부 내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는 보름이상 눈이 계속 내려 눈밭을 달려 읍내 약방의 아저씨를 모시고와 링거를 맞히던 일, 그리고 마침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온천지를 하얗게 눈이 덮어쓴 정든 앞새메와 마구뜰, 진장만디를 넘어 겹겹이 쌓인 눈을 헤치고 홍시보다도 더 빨간 황토구덩이를 파 묻던 생각을 하자 금방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해 일흔이 넘은 아들이 예순다섯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하며 우는 울보라고 아내의 핀잔을 들었습니다.

또 매일 눈이 내리다시피 하던 호반(湖畔)의 도시 춘천(春川)의 군견(軍犬)훈련소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 겨울 내내 제설작업을 하고 언 눈밭에 쭈그리고 앉아 주걱으로 개밥을 식히면서 통일화속에 눈발이 들어가 녹아 봄이 오기도 전에 동상(凍傷)에 걸려 고생하던 병사들이 떠올랐습니다. 단기하사 내무반장으로 개밥도 안 먹이고 제설작업 넉가래도 잡지 않고 편하게 군대생활을 하면서도 저는 눈만 내리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40명 소대원 중에 한글해득도 잘 안 되는 충청도 출신 원덕봉상병과 밀양출신 서성수일병에게 몰래 막걸리를 사주던 그런 회상을 하며 이번에는 강원도의 눈밭을 한참이나 달렸습니다.

아내와 함께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대문 앞이라도 좀 쓸어보려고 하니 어느새 그 얇은 눈은 다 녹고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옹기종기 웅크린 아기 허수아비 제 손녀들에게 할아버지가 보낸 눈오는 날 사진은 보았느냐싶어 전화를 하니 셋다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 애들은 눈이 오는 줄도 모르고 인도에서 둘, 부산에서 하나 세 아이가 한데 엉겨 마침 휴대폰으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살기가 좋아지자 제 손녀들은 이제 눈이 와도 슬프지 않은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아이들이 어떻게든 이 한파속의 코로나19를 잘 넘기기를 빌었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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