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암제의 부작용으로 호랑이보다도 밥그릇이 더 무섭던 지난가을 문득 우리 손녀들이 즐겨먹는 컵라면을 하나 뜯어 더운물을 붓고 한참 기다려 젓가락으로 한두 가락 먹어보았습니다. 뜻밖에도 간간하게 먹을 만 했습니다.
논산훈련소를 거쳐 군대생활을 하던 시절 이후 거의 먹지 않은 라면, 젊은 시절 어쩌다 아내와 아이들이 야식으로 먹으며 먹길 권해도 담백한 걸 좋아하는 저는 빨간 국물에 노란 달걀이 둥둥 떠 기름기가 느껴지는 라면을 어디 낯선 나라의 음식처럼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밥도 죽도 떡도, 쇠고기도 돼지고기도 다 안 넘어가고 맨밥을 물에 말아 김칫국물을 반찬으로 겨우 안 죽을 만큼 먹던 식사량에 그 날 컵라면 하나를 거뜬히 먹어치운 후, 지독히 밥맛이 없을 때 아내더러 라면을 끓이라고 하니 몸에 해로울 거리고 이마를 찌푸리다 당장 굶어죽는 것보다는 그거라도 먹는 것이 낫다고 끓여주다 이제는 마치 군대의 식사처럼 매주 일요일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고 있습니다.
제가 라면을 처음 접한 건 국민학교 5학년 운동회 날 행사를 마치고 청소를 하다 <삼양라면>이라고 쓰진 빨간 빠딱종이(비닐)를 발견하고 그게 무엇인가 고개를 갸웃할 때입니다. 그런데 며칠 뒤 부부교사 아들이 외지에 근무하면서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혼자 사는 집을 중학을 못간 제 막내누나가 같이 묵새기며 자고 말동무도 해주고 지낼 땐데 하루는 그 신기한<삼양라면>한 봉지를 들고 와 그게 새로 나온 국수인데 아주 기름져 닭고기 냄새가 난다며 끓이다가 식구가 다섯(부모님과 나와 아우)까지 되어 국수까지 한 다발 넣어 끓여 먹었는데 도저히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19세 어린 공무원으로 삼남면사무소에 출근을 하여 점심시간이 되어 하나뿐인 구멍가게(식당은 없었음)에 가 라면을 시키면 1인당 라면 하나에 식은 밥을 조금 말아주는 것이 아주 특별한 외식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군에 가서 3년 동안 일요일마다 라면을 점심으로 먹는데 취사병이 매번 스프를 훔쳐 제대로 된 라면을 먹기가 어려웠는데 여산이란 곳의 제2하사관학교에서는 식판에 라면 2개씩을 쌓고 밥을 하듯이 쪄 식기에 담고 따로 스프가 충분히 들어간 국물을 주었는데 그 당시의 라면 맛이 아마 제 생애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일 것입니다.
벌써 한 3, 4년 전일 것입니다. 저와 동갑으로 알고 있는 청순가련형의 탤런트 김자옥씨, 늘 생글거리며 웃는 밝은 얼굴도 곱지만 목소리가 촉촉해 내레이션이 너무 착착 귀에 감기는 그 예쁜이가 대장암에 결렸다는 기사가 나더니 얼마 뒤에 이제 암을 다 이겨냈다면서 한층 밝은 얼굴로 텔레비전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암이 재발, 죽고 말았는데 그 원인은 망자가 라면을 너무 좋아해 그 몸으로 저녁마다 라면을 끓여먹고 잤다고, 라면이 저승사지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저는 뭐 특별히 연예프로그램이나 연예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쩌다 스쳐가듯 한번 보면 이름을 알면 좀체 잘 잊어버리는 편이 아니라 그 후 탤런트 김영철, 김영애, 저와 동년배이며 함중아, 윤수일은 같은 울산의 동향인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엔 탤런트 김영애가 <월계수양복점>의 안주인 역을 맡아 청승스럽도록 늙고 병든 역을 잘 한다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연속극에 역할이 사라져 얼굴이 보이지 않더니 금방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이 났들렸습니다. 얼마나 연기에 대한 열정이 치열한지 죽기 직전까지 촬영을 했다는 이야기에 동년배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또 그 밖의 동년배, 애꾸눈 궁예의 역할을 기가 차게 잘 했던 김영철은 요새 <동네한바퀴>라는 프로그램에서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이 언젠가 지금 국민배우 최불암의 뒤를 이을 것만 같고 또 서양인처럼 이목구비가 오똑한 윤수일도 그 적잖은 나이에도 헤비메탈이나 락에 가까운 <터미널>로 열정적인 기타리스트와 가수의 면모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사람 내 마음을 울린 가수가 바로 함중아가 문제입니다. 제가 알기로 남자가수 중에는 가장 가는 목소리, 아주 가는 철사로 은박지나 양은을 긁는 것 같은 특이한 목소리에 작은 키와 왜소한 체격으로 <내게도 사랑이>라는 노래를 어찌 그리 적막하게 잘도 부르는지...
그런데 그 함중아가 직접 경영하는 야간업소가 연산로터리의 아라비안나이튼가 뭔가 하는 곳인데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나이트클럽으로 수많은 중년의 술꾼과 춤꾼이 모이고 부산의 인기음악강사인 한병창씨가 출연한 정도였는데 그런 야간업소를 그 왜소한 사람이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풍문으로 들었소.> 같은 그의 인기곡과 반대방향으로 그는 그 큰 업소를 운영하느라 마약과 탈세혐의로 늘 시달린다고 들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부음이 저를 기습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가 극심한 음주와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니라 아마도 라면 때문에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바쁘고 불안정한 생활을 하면서 독주로 쓰린 뱃속을 라면국물로 달래며 하루하루를 넘기다 마침내 한 가객의 삶이 낡은 기타의 줄처럼 끊어지고 만 것이겠지요.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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