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모진 생명 태어날 때8 후일담
에세이 제1200호(2020.12.30)
이득수
승인
2020.12.29 23:40 | 최종 수정 2021.05.0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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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촌마을 등말리로 이사 온 제가 등말리 터줏대감 박씨네 며느리 평천댁(홍식이 엄마)의 동생이란 사실을 알고 8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의 묘한 눈길, 그러니까 <저 사람이 앞으로 어쩌나 보자는 식>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건 누님집이 명촌김씨 집성촌에 외톨이 가뜩이나 외톨이 의흥박씨라는 점, 또 제 자연 박진수씨 사망 이후 교회에 나가게 된 누님네 식구가 전혀 마을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점, 거거다 돌아가신 매형의 술버릇이 고약해 생전에 여러 번 마을에 물의를 일으킨 점 때문입니다.
명촌별서를 지으며 식수를 구하러 마을의 이장에게 이미 울주교회의 장로로 있는 큰 생질을 보냈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았습니다. 이제 집이 곧 완공될 판이면 반드시 수도시설이 완비되어야 사용허가가 나는데 마을에는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초1급 자연수가 지하 깊숙이 고인 지하수를 개발해(군청의 지원으로) 등말리가 포함된 사광리 25호는 물론 5개소 정도의 소를 키우는 축사에도 물을 제공하는 넉넉한 물탱크가 있음에도 이장, 반장은 무조건 물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대여섯 번 이장집에 찾아간 생질 둘이 또 울상이 되어 돌아온 어느 날 저는 상북면 사무소를 찾아가 제가 아주 옛날 울주군의 공무원이었다는 점, 중년에 시골의 면장격인 도시의 동장을 2곳에서 4년이나 지낸 베테랑으로 지하수개발과 급수의 전문가임을, 또 사람은 누구나 물을 먹고 살 생존권이 있고 그걸 막을 수 없다고 설명하자 부면장(면장은 출타중)자기 면장보다 훨씬 고참인 저에게 무조건 내일 아침까지 물이 나오게 해주겠다고 돌려보냈는데 과연 이튿날 물이 나왔습니다(아마 이장에게 면장이 압력을 넣은 모양).
그래서 제가 우리누님과 조카들이 외딴집에 살며 마을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아 그 사람들을 시키면 잘 되던 일도 비틀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경로잔치, 경로회원들의 버스대절소풍, 지하수 물탱크청소날 등에 시골에선 꽤 큰 현금이 든 봉투를 서너 번 내자 비로소 제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말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된 이야기는 마을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엉뚱한 기행을 일삼는 제 누님과 생질들에 대한 걱정(사실 제게 그런 사실을 아느냐는 일러바침)과 또 하나 젊은 시절 제 어머니가 친정마을인 명촌리를 중심으로 인근의 길천과 거리 양등 일대에 복숭아나 사과를 이고 돌아다니며 보리쌀과 바꾸던 이야기로 어떤 날은 순정마을 뒤 긴등을 타고 1박 2일로 배내까지 갔다오곤 했는데(그것도 아직 전쟁이 안 끝나 신불산에 빨갱이가 득실거릴 때) 이틀에 한 번씩 명촌리 동사(옛날의 마을회관)에 버든의 어린 처녀 하나가 갓난 아이 하나를 업고와 어머니를 만나 젖을 먹이고 아이와 함께 짐을 받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90쯤 되는 나이로 당시에 갓 시집온 나이의 새댁들로 우리 어머니의 복숭아나 사과를 사먹은 경험이 있는 노파들은 어느 날
“그렇게 그 때 그 젖먹이 아이도 이제 나이가 한 70은 되었겠네. 아이 없는 처녀도 80이 훨씬 넘고..."
하면서 유심히 저를 바라보았는데 제 등에 진땀이 흘렀습니다. 그 때 업힌 어린이가 바로 저며 아이 업은 처녀는 바로 제 둘째 김해누님인 것입니다. 저는 이미 마을에 완전히 동화되어 산책길에 나서면 마을사람들이 저와 마초에게 아는 척 다들 인사를 하고 지내고 제가 나눠준 포토에세이집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를 보고 다들 저를 작가 선생님이라 부르고 제 건강을 염려해주는 판이라 차마 제가 동란 중의 그 꾀죄죄한 젖먹이 어린아이임을 짐작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 하나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행상을 다니다 하루는 집에 도착해서 돈과 보리쌀을 정리하는데 천 원짜리 한 장을 둘로 나누고 양쪽에 같은 크기의 종이를 붙이고 파란색 크레용을 칠해 2천원어치의 복숭아을 사먹었는데 눈이 어두운 어머니는 그게 위조된 된지 아닌지 또 그 몹쓸 총각이 어느 마을 누군지 도무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째누님 금자(신불산의 금찬)의 결혼식이 끝난 저녁 장모와 사위의 인사를 시키기 위해 체각들이 사위를 다듬이방망이로 다스리며 장모님 소리를 하게 하고 장모님이 따로 거대하게 술상을 내오는 장난이 시작되는 순간 그 때까지 그렇게 반질반질 잘 받아넘기던 우리 자영이 그만 끔쩍 놀라며 말문을 닫았습니다. 그 때 천 원짜리를 찢어 두 장 값의 복숭아를 사먹은 사람이 바라 그 새신랑이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형제들이 다 알았지만 차마 어머니에게는 말을 못 하고 쉬쉬하다 끝내 아무것도 모르고 천치 같은 우리 어머니는 눈을 감았습니다. 세상의 이치와 윤회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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