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모진 생명 태어날 때7

에세이 제1198호(2020.12.28)

이득수 승인 2020.12.27 21:54 | 최종 수정 2020.12.27 22:14 의견 0

 집에 도착한 기출씨가 손에 갈치를 든 채 빼꼼히 문을 열고

“욕 받제?”

명촌댁에게 아이 여덟을 낳을 동안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치사를 던지며

“보자아-”

고추라도 만져보려고 다가가다 갑자기

“이크!”

기겁을 하고 물러서 한참이나 넋을 놓고 아이를 바라보더니

“안 되겠다. 거름 밭에 갖다 내삐리라!” 

빽 고함을 질렀다. 태열을 심하게 해서 머리는 물론 얼굴과 어깨, 등짝까지 부스럼을 둘러쓰고 벌건 얼굴에 눈도 잘 찾기 힘든 갓난애가 도무지 사람 같지가 않았다. 아니 사람이 될 것 같지가 않은 것이었다. 아이 여덟을 낳아도 이런 아이는 처음이었다.

“순찬이 니는 뭐 하노? 퍼떡 안 갖다 내삐리고!”

또 다시 고함을 빽 지르자 여덟 살 금찬이와 다섯 살 덕찬이가 앙 울음을 터뜨리고 산모 명촌댁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부지, 안 되지요. 그라면 죄 받지요.”

 사진1 미역국을 먹는 산모 이미지
미국에서도 미역국이 산모에게 인기 있다는 MBC 보도의 한 장면.

방금 아이라도 집어던질 기세의 기출씨를 순찬이가 막아섰다.

“에이, 지게미. 재수가 없으려니까...”

투덜대면서 문을 나간 기출씨가 아이 대신 들고 있던 갈치를 거름더미에 확 던지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골목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휘적휘적 논길을 걸어 뚝다리를 건너갔다. 아마도 다시 닭 장사를 하기보다는 주막집에서 종일 막걸리를 마시고 술이 취해 온갖 타령을 흥얼거리고 남천내를 건너올 모양이었다.

“금찬아, 퍼뜩 솥에 불 안 때고 뭐 하노?”

갑자기 순찬이가 고함을 빽 지르자 여덟 살 금찬이가 조갑지처럼 작은 손을 꼬물거리며 조심조심 성냥불을 켜 보릿대에 물을 붙였다. 또래 아이들 출강댁 군자나 말랑댁 광자보다 보다 키도 손도 작았지만 만사에 야무치고 집을 보거나 동생 덕찬이를 거두는 등 집안일을 돕는데 벌써 단단히 한 몫을 하는 것이었다.

“금찬아, 불붙었으면 퍼뜩 거름 밭에 칼치 주어 오너라.”

순찬이가 시키는 대로 금찬이는 지체 없이 후다닥 튀어나갔다.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작고 손도 작았지만 조그만 얼굴에 눈만 반들반들한 그 아이는 매사에 똑 부러지고 말과 행동이 모두 야물었다. 

“다 잘 씩꺼면 되는 기다. 아아는 이렇게 씩꺼서 따듬는 거란다.”

 사진2 재래시장에서 튀빕(박상)을 튀기는 이미지
 재래시장에서 튀빕(박상)을 튀기는 장면

능숙하게 세수를 시키고 아이의 귀를 펴주던 순찬이가 

“새이야, 고기를 얼른 씩꺼라. 내 금방 나가서 미역을 찾아 빨구마.”

시집간 무동에서 쫓기다시피 돌아온 언니 갑찬씨에게 말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잡히는데

“됐다. 알라 눈떴다!”

다섯 살 덕찬이가 커다랗게 소리쳤다.

아이가 눈을 떴다는 말에 갑찬이, 금찬이가 잽싸게 방에 가 들여다보았지만 순찬이는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아무리 쌀독을 긁어도 보리쌀 두어 줌 외에는 단 한 톨의 쌀도 없고 미역도 없었다. 여자가 해산을 하면 잘 먹고 산후조리를 잘 해야 몸이 야물지 그렇지 못 하면 몸이 부실해지는 것은 물론 그런 상태로 함부로 무논에 들어가 모를 심거나 몸을 차게 하면 큰 병이 된다는 것을 여러 번 보고들은 순찬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아버지가 준 빨간 지폐로 적으나마 쌀 반 되라도 살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쳐다보니 철없는 덕찬이가 강냉이박상이 담긴 바가지에 코를 박고 한 창 먹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