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의 문화칼럼] ‘공동선(共同善-common good)’은 쓸모없는 상상력인가?

다시 번지는 코로나 사태와 집단화된 이기성의 문제를 바라보며

강희철 승인 2020.08.31 12:14 | 최종 수정 2020.08.31 12:34 의견 0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가장 알기 힘든 것은 그 당시에 가졌던 사람들이 가졌던 나름대로의 세계관과 인식체계다. 그때의 제도와 관습, 시대상황 등은 기록으로 남아있을 지라도 그 당시의 사람들이 하루를 마감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하며 꿈꿨던 생각들이 무엇인지 알기는 정말 힘들다. 특히 ‘꿈’이라는 것은 이미 이뤄질 수 있는 체계 안에서 생각된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포섭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없다.

더 나아가 지금 같은 공간과 같은 현실에 살고 있으면서도 코로나 사태를 자기 방식 혹은 자신이 속한 정치적, 직업적 성격 안에서만 사고하며 행동하는 모습들을 보면, 과거의 사람들을 이해해 보는 것만큼이나 이해의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인간은 특별한 것 같지만, 일정한 역사적 패러다임 안에서 자신의 삶을 구성하며 살아왔다. 쉽게 이야기해서, 나 혼자 밀림을 헤쳐 나가며 산 것이 아니라, 가족, 마을, 국가라는 역사적으로 구성돼온 기본적인 집단성을 만들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과 해서는 안 될 것들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해 왔었다.

그것을 조율해왔던 가장 큰 개념이 ‘공동선(common good)’이다. 특히 서구에서는 근대 이후 공동선 개념이 확고히 국축돼 왔다. 특히 미국이 근대 이후 국가를 구성하는데, 각기 다른 주를 구성하면서도 하나의 국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최종적 목적이 ‘공동선’을 이루는 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하였기에, 전 세계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조율하겠다는 ‘세계 경찰국가’임을 스스로 자인해 올 수 있었다.

그런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들어 ‘국가이기주의’를 부추기면서 수많은 국가들이 오히려 미국에게 이기적이었다며 그간 경찰국가를 담당해 준 데에 대한 답례를 해야 한다며 뭔가 ‘앙갚음’의 마음을 가지고 말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슈퍼맨과 배트맨이 막강한 적을 상대하고 물리치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와 세계경찰국가를 자임했던 시대가 과거의 이야기였다면, 이제 그러한 슈퍼맨과 베트맨이 각각 <슈퍼맨 비긴즈>, <배트맨 비긴즈>로 이미 자신이 ‘공동선’의 존재가 아님을 자각했다는 점이다.

강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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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금 거의 모든 미국 판타지 히어로들의 자각지점이 되었으며, 이제 히어로들은 기독교적 성찰에서 비롯된 그들만의 독특한 공동선의 자혜(慈惠)적 성격의 캐릭터들을 버리고 어벤져스(Avengers)라고 하는 ‘복수’의 화신들의 모임으로 전락한 것도 이러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시대, 정신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우도 유교국가가 사실 사대주의적 성격과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유교국가들 간의 교류 관계도 사실 단순한 강한 국가를 단순히 권력적인 문제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공동선’을 지향하고 있는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문제이기도 했으며, 이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듯이 한 쪽이 조공만 하던 관계도 아니었다. 마치 팬클럽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조공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처럼, 조공이라는 이름으로 선물을 하고, 답례란 이름으로 선물을 받았다.

윤리적 중심과 윤리적 보편성을 꿈꾸던 세계가 몰락하고 있는 것, 개인 하나 하나가 이러한 공동선의 정신을 잃은 것은 마치 자기가 소속된 단체만 어떤 이익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정치투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다시 무섭게 창궐하는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는 정치적 태도는 분명 우리가 지키려는 공동선의 문제이기보다, 갈등만을 조장해왔던 오래된 정치적 악습에 비롯된 것에 가깝다.

물론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지키는 개인들에 대해서까지 그 성격을 비판적으로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단체나 국가가 그러한 지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이는 자본주의 너머의 상상력이 없는, 공동선이 몰락하는 세계 안에서 ‘갈등’과 ‘복수’만 있는 어벤져스들이 부딪치기만 하는 우울한 세계를 지향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언제나 공동선이라는 오래된 아이디어는 ‘이기성’을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척도이자, 미래의 공동체를 기획하는 주요한 동기가 된다. 그렇기에 공동체를 걱정하는 마음만 있다면 집단화된 이기주의의 어리석음이 다양한 측면에서 코로나 사태를 부추기고 있는 지점도 좀 더 명확하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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