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칼럼] 우리 삶을 아파트 단지에 구겨 넣고 있는 ‘주택재개발사업’
강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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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4:03 | 최종 수정 2020.10.16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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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힘에 무력감을 느꼈던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거기에 굴욕감까지 맛봤다면 인생의 쓴맛을 다봤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굴욕을 넘어서 우리의 ‘사유’자체가 조종당하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이 삶을 ‘참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동성애’가 ‘소비’되는 이유와 같다. 자본주의 안에서 ‘개별자’를 독특한 소비자로 포착해서 다루고 있기에 우리는 ‘동성애’를 이전보다 혐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동성애에 대해서 편협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스스로 성찰해왔다기 보다, 자본 안에서 이미 동성애가 소비되고 있기에 우리가 더 쉽게 동성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의 역사를 스스로 성찰해 볼 수 있다면, 성별로는 ‘여성’의 동성애를 앞세워서 다뤘다가 이후 남성의 동성애를 좀 더 편하게 다루게 되었다는 점을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역사물 같은 경우 후궁들의 동성애를 주로 다루지, 왕이나 남성 권력자의 동성애는 역사적으로도 사료도 적지만 적극적으로 말하거나 다루려 하지 않는 점이 보인다. 아직까지 사극은 전통적 세계관 안에서 ‘동성애’를 이미 과거에도 존재했던 현실로 다루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우리는 사실 우리의 감각이 이미 자본주의에 안주하도록 세팅(setting)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공간이 얼마나 ‘괴물’ 같은지 실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의 부산은 ‘도시재생’이라는 환영 안에서 과거의 주택단지를 완전히 부수어가며 아파트 단지를 곳곳에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에서는 서민들을 위한 도시재생을 우선시하는 ‘도시재생’에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지만, 이런 정부와 다르게 민간 건설업체가 주도하고 있는 실제의 주택재개발사업들은 과거 낙후된 주택단지를 ‘아파트 단지’로 만들어 땅값을 올리는 부동산 투기의 장소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 현재 당감동, 망미동, 천마산, 우암동 등의 주택단지들은 지금 아예 모든 주택을 쓸어내 버리고 유명한 건설업체들이 아파트 단지를 거대하게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삶에서 요즘의 학생들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저는 사직 자이 살아요.”라는 등의 말을 내뱉기도 한다. 마치 유명한 메이커의 신발을 신는 것처럼, 아파트는 집의 기능을 넘어서 품절 대란을 만드는 메이커 제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동네라는 기억을 부수고 있는 이러한 사업들이 이미 건설업체의 사유지이기에 어떤 힘도 못쓰고 있는 현실은 자본주의가 만든 것이지, 실제 좋은 법과 대안을 성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우후죽순 벌어지고 있는 아파트 단지 위주의 주택재개발은 앞으로 규제와 대안이 너무나 절실하다. 예를 들어 엊그제 방문했던 부산 진구 당감동에 ‘부산 정중앙 표지석’이 있는데, 그곳에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곧 다른 곳으로 옮겨질 운명에 처했다. 부산의 한 가운데라고 약속한 이정표도 실제로 정해봤자 자본이 밀려들면 어쩔 수 없이 바뀌어 버리는 씁쓸한 풍경이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무서운 현실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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