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의 만주 일기 (6)도문행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 (상)북조선 인민

박명호 승인 2019.05.07 10:57 | 최종 수정 2019.06.24 20:14 의견 0
두만강 건너 북한의 마을과 민둥산
두만강 건너 북한의 마을과 민둥산. 사진=박명호

도문행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 북조선 인민

도문(圖們)*행 기차는 개찰구에서도 긴 줄을 서야 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자욱한 연기 같은 것이 끼어 있어서 현재라는 시간과는 멀리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그 아득함 속에서 내 눈에 영화처럼 다가온 것은 북조선 사람들이었다. 내가 영화를 생각한 것은 그들이 그 수십 년 시간 여행을 확인하는 세트 같았기 때문이었다. 예닐곱 쯤 되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모두 삼사십 년 전 우리네 공무원 같은 차림이었다. 바싹 마른 체격에 하이칼라 머리는 낯익은 모습이었다. 물론 그들의 가슴에는 김일성 빼지가 달려 있었고, 책임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고급공무원 같았다.

도문행 기차는 대단히 길다. 아니 장엄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칸 수와 저녁 어스름에 짙은 초록색의 우중충한 기차는 70년대 서울 가던 십이열차를 생각하게 했다. 3층으로 된 침대칸에 짐을 푼 나는 좁은 통로에 붙어 있는 접이식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조금 전 대합실에서 봤던 북조선 책임동무가 일행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키가 컸고 얼굴도 호남형이어서 분명 고위 간부로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도문.”

절도와 예의를 갖춘 짧은 그의 대답은 더 이상 당신하고 대화하기 싫다는 뜻이 분명했다. 옆에 있던 조선족 아가씨가 묘한 표정으로 ‘남과 북’이라면서 고개를 갸웃 했다. 머쓱해진 나는 통로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그때 차림새가 남루한 사내가 옆으로 다가와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런데 담배가 ‘평양’이었다. 조금 전에 만난 북한 사람과는 신분이 전혀 달라 보였다.

“북한에서 오셨습니까?”

나는 인사를 건네며 내 담배를 내밀었다. 사내는 자신이 피우던 담배를 끄더니 버리지 않고 꽁초를 주머니에 넣었다(그 모습도 옛날에 많이 보던). 내가 건넨 ‘에세’를 신기한 듯 받아 피웠다. 그래서 나는 담배를 갑 채로 줬다. 그는 무척 고마워하면서 주머니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 동경(銅鏡)이었다. 순간 나는 감동했다. 꼴난 담배 한 값의 선심에 그렇듯 큰 답례라니. 진정한 민족애를 만끽하려는 순간.

‘한국 돈 일만 원만 주시오.’

아, 감동은 이내 사라졌지만 그래도 만원에 골동품이라... 나는 망설임 없이 만원을 건넸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사내는 대답 대신 다시 자그마한 청동거울을 하나 더 끄집어냈다. 조금 전의 것보다 더 아담하고 오래돼 보였다. 가짜가 아닐까. 그제는 약간 망설여졌다. 그러나 가짜라도 만원 가치는 충분해 보여 다시 만원을 줬다. 그러자 사내는 옆 칸으로 가버렸다. 나는 흡족해했다. 그냥으로도 도와줄 수 있는 불쌍한 북한 동포에게 청동거울을 샀다는 낯선 경험 때문이었다. 그런데 잠시 뒤 북조선 사내가 다시 통로에 나타났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다.

“저, 선생님. 이것도 하시렵니까?”

작은 청동 불상이었다. 얼핏 보아 문화재급 보물 같아 보였다. 그러나 뭔가 꺼림칙해 손사래를 쳤다.

“불쌍한 동포 도와주는 셈치고 인민폐 50원만 줍쇼.”

도문행 열차
도문행 열차

 

사내는 이제 간청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돈이 없다며 손사래를 쳐도 사내는 도와달라고 했다. 에라, 북한 돕기 운동에 옷도 보내고 거금까지 쾌척한 바도 있는데 눈앞의 불쌍한 동포를, 그것도 공짜가 아니라 어쩌면 값나가는 보물일지도 모를 물건의 값으로 기껏 50위안이야……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옆에 사내가 또 불상을 내밀며 간청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50위안을 더 끄집어냈다. 그들은 그것을 ‘샀다 말고 선물 받았다’ 하라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현재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칙칙한 대합실 분위기에서 그림자처럼 나타난 과거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내게 떠맡긴 낡은 구리거울 속의 사람들이었으며, 흑백사진 속이나 뭉크의 그림 속에 있는 사람들이었고, 연민과 그리움을 유발시키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구리거울을 물끄러미 보았다. 문뜩 윤동주의 시가 스쳐갔다.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 욕이 될까...

윤동주는 구리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연민을 했지만, 정말 녹이 낀 낡은 구리거울과 같은 아득한 시간 속의 아니 유물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아, 도문행 기차간에서 만난 북조선 인민. 아니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람들이여...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중동부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 그 명칭은 두만강에서 유래한다.

◇소설가 박명호는

▷경북 청송 출생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장편 '가롯의 창세기', '또야, 안뇨옹'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구기뿔',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
▷잡감집 '촌놈과 상놈' 등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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