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승인
2019.07.08 10:30 | 최종 수정 2019.07.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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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참 인상적이었다. 연길의 한 노천 술집에서 대구의 시인 여럿과 같이 만났었다. 서로가 생면부지의 사람이라 상대방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를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그를 먼저 안 대구의 서지월 시인이 연변에서 잘 나가는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아주 맹랑한 그의 답이 나왔다.
“제 자랑 쫌 할까요? 지나는 사람 불러 세워 물으면, 둘은 몰라도 셋은 자신이 있습니다.”
셋 중에 자신의 이름을 대면 하나는 알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니, 아무리 유명한 시인이라도 그렇지, 지나는 사람 아무나 셋 중에 하나는 자신의 이름을 안다니, 그런 허풍이 어디 있겠어.
나는 콧방귀를 뀌면서 다음에 벌어질 그의 낭패를 즐기기로 했다. 마침 술을 가지고 온 젊은 점원이 있었다.
“혹시 석화를 아십니까?”
점원은 유명한 시인이라고 바로 대답했다. 아, 우리는 감탄했다. 하지만 우연일수도 있으니 다시 한 번 확인해 봤다. 마침 거리를 지나가는 아가씨 둘을 불러 물어봤다.
“석화를 아십니까?”
망설임 없이 잘 안다고 했다. 그러면 석화는 연변에서 ‘김소월’과 같은 존재란 말인가...
알고 보니 그럴 이유가 있었다. 석화가 유명 시인이긴 하지만 대중가요 작사가이기도 했다. 거기서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시인이 쓰고 있었다. 당시 그가 작사한 ‘동동타령’이란 노래가 유행되고 있었다. 그렇고 보니 우리는 시인 따로, 노랫말 작사가가 따로였다. 그래서 시는 너무 고상하고 대중가요는 너무 질이 낮은 건가... 하며 시와 대중가요가 미분화된, 아니 하나가 된 연변의 문화 풍토를 부러워했다.
때로는 덜 발전된 것이 더 좋은 것이 될 수 있다. 요즈음의 우리 시는 독자보다 시인이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자들로부터 괴리되어 있다. 반면 대중가요의 가사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다 같이 부를 수 있는 이른바 국민가요가 없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살면서 정서의 공감이 없다는 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사회이다. 세대별 단절의 골이 깊어 서로가 바리케이트를 치고 끼리들만 놀고 있다. 이미 절벽처럼 아득하다. 정서는 이미 황량한 사막이다. 그것을 적셔줄 시인은 또한 자기네들끼리 자기들만 아는 언어에 빠져 있다. 아무도 시를 읽지 않고 아무도 시인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다. 시인은 그 시대의 정서를 선도할 책임이 있다. 시인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상(賞)이 있다. 좋은 노래가사에도 상을 줘야 한다. 시인이 거기에 동참을 해야 한다. 소설에서 대중소설이라 해서 굳이 소설과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시가 노래라면 대중가요와 구별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석화를 아십니까.
그것은 저 홀로 고고한 우리네 시인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연변에서는 시인들이 일반인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석화를 아십니까. 그의 시가 그곳 ‘조선어문’, ‘음악’ 교과서에도 몇 편 실려 있다.
할아버지는 마을 뒤산에/ 낮은 언덕으로 누워계시고
해살이 유리창에 반짝이는 교실에서/ 우리 아이들이 공부가 한창이다//
백두산 이마가 높고/ 두만강 천리를 흘러/ 내가 지금 자랑스러운/ 여기가 연변이다
자라나는 조선족 아이들에게 우리의 민족성과 연변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작품이다. 연변은 그와 같은 시인들과 그 시들을 노래하는 대중이 있기에 급격한 변화의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의 시는 곧 민족의 정서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명호는
▷경북 청송 출생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장편 '가롯의 창세기', '또야, 안뇨옹'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구기뿔',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
▷잡감집 '촌놈과 상놈' 등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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