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의 만주 일기 (17)용정 와이당과 하리파인(下里巴人)

박명호 승인 2019.07.22 10:37 | 최종 수정 2019.07.22 10:48 의견 0
용정의 거리 풍경. 사진=박명호

용정에는 이야기가 많다. 용정은 연변의 어느 지역보다도 조선족의 비율이 높다. 용정에 가야 진정한 조선족의 사회를 느낄 수 있다. 북간도의 역사는 용두레 우물가에서 시작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어떤 아이가 흰 뱀을 잡았다가 놓아주었는데 그 뱀은 용두레 우물에 와서 승천하였다. 그 뱀은 용왕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용정 주변에는 용과 관련된 이름들이 많다. 용정 외에도 용주사, 용제늪, 용산... 아무튼 맨 처음 조선에서 두만강을 건너 오랑캐 령을 넘어온 이들이 용두레 우물가를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북간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용정에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이야기 신문’이 있었다. 월2회 발행이지만 발행부수가 무려 2만부가 넘었다. 1부에 버스요금 곱에 해당해도 전량 판매되었다.

원래 중국에서는 양춘백설(陽春百說)이라는 순문학과 하리파인(下里巴人)이라는 육담과 같은 하류문학으로 나뉜다. 그런데 이야기 신문에서는 양춘백설보다는 하리파인 쪽에 훨씬 무게를 두고 있었기에 인기가 대단했다. 그쪽에서는 육담을 와이당, 쌍소리, 고급세미나(북한)라고 했다. 민간 이야기, 전해오는 이야기, 전 세계의 토픽 등 짧은 이야기, 작가들이 창작한 이야기 등. 아무튼 이야기에 관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미있는 것이라면 게재했다.

스무 해 전 용정에 갔을 때 그곳 시인의 주선으로 ‘이야기 신문사’ 사람들과 점심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주간인 소설가 이태수 선생과 다섯 명의 편집인이 자리를 같이 했다. 그곳 사람들의 점심 문화는 정말 푸짐했다. 우선 한상 가득한 기본 채(안주)로 39도의 뚱빠이(동북)주를 건배했다. 그리고 참석한 사람 수대로 채 하나씩 시킨다. 채를 시킨 사람이 술잔을 돌린다. 그것도 홀수는 복이 나간다며 반드시 겹으로 돌린다. 또한 술을 마주칠 때는 상대에 대한 예의의 표시로 잔을 상대 잔에 낮게 부딪친다. 점심시간이 우리네 저녁 만찬과 같았다.

“다들 직장에 있는 분이 낮에 이렇게 술을 드십니까?”
나의 질문에 그들은 비웃듯이 대답했다.
“우리는 한국처럼 그렇게 각박하게 살지 않습니다.”

소설가 이태수 선생. 사진=박명호

당당하게 여유 없이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생활 태도를 비웃던 이태수 선생, 그를 몇 해 전 다시 만났다. 중국 전체에서 가장 큰 과수원이라는 용정의 사과·배 농장 호텔 커피숍에서였다.

연변조선족 사람들의 50년 이야기 대하소설 ‘해란강’ 전 15권을 곧 발간할 것이라 했다. 해란강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다. 해 총각과 란 처녀가 살았는데 어느 날 마귀가 란을 잡아갔다. 해가 동네 사람들과 칼을 뽑아 싸웠다. 해가 마귀의 머리를 내리쳐도 곧 붙어버리곤 했다. 그때 치마폭에 재를 싸가지고 온 란이 해가 다시 마귀의 머리를 칠 때를 기다려 재를 뿌려 붙지를 못했다.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여기서 ‘해’는 용맹을 상징하고, ‘란’은 지혜를 상징한다. 북간도 이야기의 시작처럼 그의 소설 ‘해란강’의 첫머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세월의 할미가 떨어놓은 거울 같은 샘에서 발원하여, 천 년의 댕기오리 같은 물줄기가 버들방천을 지나 비로소 해란강을 이룬다.

용정 시내를 돌아다니다 호텔로 돌아가려고 택시를 탔다. ‘배꽃 호텔’ 하며 단문으로 말했다. 운전기사는 알았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차를 몰았다. 그러나 택시는 엉뚱한 곳으로 갔다. 운전기사는 조선족이 아니라 한족이었다. 내가 손을 저어 아니라고 하니 운전기사는 몹시 미안해했다. 나는 다시 ‘배 꽃!’이라고 분명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다시 엉뚱한 한족 마을로 갔다. 나는 리후아(梨花)라는 배꽃의 중국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마을 이름이 바투군가 뭔가 하는 마을이었다.

용정에도 한족은 제법 살고 있었다. 이민족인 한족과 어울려 살다 보니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해프닝도 많다. 용정 와이당은 그런 것이 많다. 그 몇을 소개한다.

#해프닝 하나

한 여인네가 빈 소달구지에 딸을 태우고 가고 있었다. 이웃에 사는 한족 사내가 5위안을 내밀며 소달구지를 좀 빌러 달라고 했다. 소달구지는 한족말로 ‘처뉴(車牛)’였다. 한족말을 전혀 모르는 여인네가 듣기에는 ‘처녀’, 곧 딸을 빌러 달라는 줄 알고 너무 어이없어 대답을 않았다. 한족 사내는 돈이 적어서 그러는 줄 알고 자꾸 따라오더니 10위안을 내밀며 ‘처뉴’를 빌러 달라고 했다. 결국 참지 못한 여인네가 한족 사내의 뺨을 때리고 말았다.

용정의 거리 풍경
용정의 거리 풍경.

#해프닝 둘

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서로가 채소를 사려고 이리저리 밀치고 있었다. 조선족 여인네 뒤에 있던 한족 사내가 그 여인네의 어깨를 살짝 치면서 ‘빼조지, 빼조지’ 했다. 화가 난 조선족 여인네가 누굴 희롱하느냐며 달려들었다. 그것은 ‘서둘지 말라(別着急)’는 한족말이었다.

#해프닝 셋

주로 조선족 노인들만 탄 버스가 산골 마을에서 장날 시내로 가다가 갑자기 고장이 났다. 버스에서 내린 운전기사가 이래저래 손을 써보지만 쉽게 해결되지가 않았다. 시간이 급한 노인 승객들의 원성이 높아갔다. 보다 못한 한족 차장 아가씨가 ‘따쟈, 빼조지’ 했다. ‘여러분, 서둘지 마세요.’라는 말인데 한족말을 모르는 노인네들이 듣기에는 욕으로 들렸다.

‘저 간나 봐라. 뭘 따고 뭘 빼?’

아니래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노인들은 새파란 젊은 차장에게 욕까지 먹었으니 감정이 격화되어 삿대질을 했다. 갈수록 태산이라 한족 차장 아가씨는 더 큰소리로 ‘개조지 쓰지마!’라고 외쳤다. ‘오히려 바쁜 사람은 운전기사입니다.’라는 뜻인데 노인들에게는 더 심한 욕설이 되고 말았다.

‘개 무엇이 쓰다’라고?’

그제는 노인 승객들이 차장 아가씨에게 달려들어 큰 소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박명호

◇소설가 박명호는

▷경북 청송 출생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장편 '가롯의 창세기', '또야, 안뇨옹'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구기뿔',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
▷잡감집 '촌놈과 상놈' 등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