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주민의 안전을 위해 국회에서 고리2호기를 비롯한 노후원전 폐기를 법률로 명문화해야 한다.”
“핵발전소 입지지역에 중간저장시설이나 처분시설을 더 이상 짓지 못하도록 금지 조항을 입법화해야 한다.”
지난달 22일 창립한 ‘원전으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더30Km포럼’(공동대표 이흥만 정상래 김정환 오문범 김해창 원정스님)이 10월 19일 오후 4시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YMCA 17층 대강당에서 열린토론 형태로 제2회 포럼을 가졌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이 ‘고리2호기 폐로와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과제와 대응’을 주제로 발표를 했고 참여한 시민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정책위원은 탈핵 입법 과제로 △탈핵기본법을 제정하거나 원전의 신규 건설 및 수명연장 금지 조항을 법률에 추가할 것 △건설허가 철회 및 핵발전소 영구폐쇄 주체를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제2회 포럼은 최근 여당인 국민의힘이 ‘방폐장특별법’을 발의하고 원전 촉진을 위한 법령을 잇달아 내놓는 상황에 대한 우려에서 노후원전의 수명연장 금지의 입법화 추진 방안을 놓고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정책위원의 발표 요지는 다음과 같다.
노후원전 수명연장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 현행법상 노후원전의 수명 연장은 ‘운영 허가 변경’ 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원자력안전법이 아니라 시행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쟁점이 큰 사안임에도 수명연장과 관련해 국회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원자력안전위원회 자체 판단으로 추진되고 있는 게 문제다. 특히 지난 9월 개정된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에 따르면 노후원전의 연장을 위해서는 ‘원전 안전성평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시행령 개정 시 제출 시한이 설계수명 만료 ‘2~5년’ 전에서 ‘5~10년’으로 확대되게 됐다. 이렇게 해서 기한 연장 시 윤석열 정부 임기 5년 동안 수명연장 신청이 가능한 노후원전은 10기에서 18기로 대폭 늘 전망이다. 현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노후원전의 수명 연장만으로 핵발전 비중을 높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 비중을 줄이는 추세인데 한국은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32.8%까지 확대할 것이 우려된다.
지난 9월 한수원이 밝힌 ‘고리원전 부지 내 지상 건식 저장시설 계획’은 사실상 핵폐기장 건설로는 고리 2~4호의 수명연장용 꼼수에 불과하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통해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시키거나, 수명연장을 할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내용을 넣는 방안이 있다. 건설허가 취소나 발전소 영구정지도 한국수력원자력만 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데, 그것을 원안위가 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을 넣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용후핵연료를 폐기물로 보고 처분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핵연료는 폐기물로 보고 처분하는 게 맞다고 본다. 원자력진흥위원회의 결정 없이 모든 핵연료를 폐기할 수 있도록 원자력법상 방사성 폐기물 정의에서 ‘폐기하기로 결정한’이라는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 원전 입지지역에 중간저장시설이나 처분시설을 더 이상 짓지 못하도록, 설치 지점으로부터 반경 5km 이내 지역에 중간저장시설과 처분시설의 설치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정책적 변화에 따라 발전소를 폐쇄하는 경우는 핵발전소에만 생기지 않는다. 최근 기후위기와 미세먼지 심화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탈석탄법을 제정해달라는 국회 청원에 불과 2~3일 만에 청원 인원 5만 명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단순히 발전사업자의 판단이 아니라, 정책 변화나 안전이나 환경 문제 등으로 인해 정부가 가동연한이 남은 발전소 폐쇄를 강제할 일들이 생기고 있다.
국내 언론 등에서 수명연장을 다룰 때 가장 많이 오해하는 것은 ‘수명연장 승인’을 실제 발전소 운영 기간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자동차 운전면허를 갖고 있다고 해서 모두 운전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해외의 경우, 수명연장 승인과 실제 발전소 운전 기간은 차이를 보인다. 설사 수명연장 승인을 받았더라도 경제성이나 추가되는 안전 규제에 따라 핵발전소 폐쇄를 결정하는 발전사업자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셰일가스 발견과 함께 경제성이 떨어진 미국 핵발전소가 2010년대 중반 집중적으로 폐쇄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국내에 고리1호기와 쌍둥이 핵발전소로 널리 알려진 카와니 핵발전소의 경우, 애초 설계수명 40년에 추가 20년까지 60년 운영을 승인받았으나, 경제성이 떨어져 2013년 조기 폐쇄하기로 했다.
핵발전소 폐쇄에 관한 법을 제정한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2000년 6월 핵발전기업과의 협상을 통해 핵발전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핵 합의(Atomkonsens)’를 이뤘다. 이 내용은 2002년 원자력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2002년 개정된 독일 원자력법은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 금지와 △ 개별 핵발전소가 생산할 수 있는 최대 전력 생산량을 확정하였다. 법률로서 핵발전을 줄이는 방안을 다루고 있는 나라로 대만과 프랑스가 있다. 독일과 대만이 모든 핵발전소 폐기 시점(혹은 발전량)을 법률로 정했다면, 프랑스는 중장기 에너지 계획이 담긴 법률을 통해 핵발전 비중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였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선언(에너지전환 선언)’이 법적인 강제력이 약하고 행정계획이나 선언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탈핵 기본법’을 제정하는 방안으로 이미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정의당과 녹색당 등 정당이 제시한 바 있다. 정의당은 2017년 대선 공약을 통해 ‘탈핵 에너지전환 특별법’ 제정을 통해 2040년까지 모든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공약했다. 녹색당도 2011년 ‘탈핵 및 에너지전환 기본법’을 제정하고 2030년까지 폐쇄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 법안은 내용과 탈핵 시점을 서로 다르지만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를 설계수명에 맞춰 폐쇄 △폐쇄 시점까지 설계수명이 끝나지 않은 핵발전소는 별도의 과정(국민적 여론 수렴 등)을 거쳐 폐쇄 결정을 한다는 점에서 내용이 동일하다. 또한 폐쇄 과정에서 생기는 손실에 대한 보상이나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안정 등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내용도 함께 담겨 있다. ‘탈핵기본법’ 제정은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으나 현재 여당은 물론이고 거대 야당에서도 탈핵에 대한 입장이 명료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 제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안으로 ‘탈핵기본법’의 핵심 내용인 ‘신규 핵발전소 건설 금지’, ‘노후핵발전소 폐쇄’를 위한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이다.
건설허가 철회·핵발전소 영구폐쇄 주체 확대하는 방안은 핵발전소 영구폐쇄를 위한 주체를 발전사업자(한수원)에서 정부 혹은 원안위로 확대하려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현행 노후핵발전소 수명의 문제점은 관련 내용이 모두 시행령에 포함되어 있어 원안위가 임의로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관련 내용을 원자력안전법으로 올려 국회에서 검토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 중에 현재 가장 큰 것은 점차 포화하고 있는 ‘임시저장 수조’를 대신할 저장시설을 건설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이다. 현재 국회에는 김성환 의원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김영식 의원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등에 관한 특별법안’, 이인선 의원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등 3개의 고준위방폐물 관련 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3가지 법 모두 ‘부지 내 저장시설’에 대한 조항을 담고 있다. 이들 내용은 전체적으로 △부지 내 저장시설 건설 과정에서 주민의견 수렴 △저장할 용량에 대한 규정 등을 담고 있으나, 김성환 의원과 이인선 의원 법안에는 타부지 사용후핵연료 반입금지, 중간저장시설 완공후 이전 조항이 담겨 있다. 김성환 의원 법안은 ‘설계수명 동안 발생할 용량’만 보관할 것을 명시하고 있으나, 이인선 의원 법안에는 ‘운영허가 기간동안 발생할 용량’만 보관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즉 수명연장을 할 경우, 운영허가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인선 의원안의 경우, 수명연장 이후 보관할 시설까지도 염두해 둔 것으로 보인다.
이중 핵심 쟁점은 ‘임시저장고’를 지을 것인가? 짓는다면 얼마나, 언제까지 보관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는 핵발전소 지역에는 더 이상 임시저장이나 중간저장시설을 짓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핵발전소와 핵폐기물 문제 등으로 고통받은 현실에서 임시저장고가 증설될 경우 핵발전소 지역이 ‘사실상’ 핵폐기장화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의한 것이다.
먼저 사용후핵연료의 정의와 관련해서 핵재처리 등을 염두해둔 ‘폐기하기로 결정한’ 이란 조항을 삭제하여 모든 사용후핵연료는 폐기 대상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중간저장, 처분시설) 모두 핵발전소 반경 5km 이내 지역에는 설치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서 이들 시설 부지를 찾는 별도의 작업을 추진해야 함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존 법안에서 의견수렴의 주체를 사업자로 정한 것을 산업부 장관으로 격상시킴으로써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주체가 정부임을 명확히 하는 의미와 국가정책과정에서 주민투표 등 다양한 의견 수렴 방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이외에도 고준위 특별법에는 중간저장시설 및 처분시설의 부지선정 과정, 의사결정을 위한 위원회 구성, 공론화위원회 구성에 대한 추가적인 사안들이 담겨야 한다.
현재 나온 3개의 법안은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의 의견이 완전히 반영되지 못한 생태로 법안이 제출됐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측면에서 ‘사용후핵연료 특별법’에 대한 시민사회의 논의는 더욱 구체적이고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법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치밀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기도 하다. 노후원전 수명연장과 관련해서도 단순히 ‘행정계획’이나 ‘선언’만 갖고 핵발전소 폐쇄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진 만큼 노후원전 폐쇄를 위한 시민사회의 운동에서 법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어서 다양한 의견과 제안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철훈(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오륙도연구소 소장·전 부산영도구청장)=탈원전반대 원전확대 정책을 펴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대안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탈원전의 법제화에 있어 첨예한 것들은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시민사회가 정치권에 더 어필해야 한다. 정기국회 이후 중앙당과 연계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국회 방문 등을 통해 향후 입법 개선안 의견을 적극 중앙당에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
박재률(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 상임대표)=고리1호기 폐쇄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사회 안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시민과 소통하는 법안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고리1호기 땐 박근혜 정부 당시 여당이었던 서병수 부산시장조차 고리1호기 폐쇄에 앞장섰다. 당시 지역 국회의원이 현재 윤석열 정부의 정무수석으로 있다. 정무수석에게 부산지역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알리고 부산시장에게도 부산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정부 활동을 제대로 하라고 적극 요구해야 할 것이다.
최인화(부산경남생태도시연구소 생명마당 연구기획실장)=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안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을 현재 운영되고 있는 원전입지 반경5km 바깥으로 한다는 것은 다른 시군구로 옮겨간다는데 거기서 거기 아닌가. 오히려 방사선비상계획구역 30km 이상이 되는 곳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본다. 또 하나는 핵발전소 부지 내 수조 내 포화문제다. 부지 내에 건식 임시저장시설 설치를 허용해선 안 된다. 이 두가지를 막기 위해 12월초 정도에 ‘고리2호기폐쇄범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해야 한다고 본다.
우주호(국토와환경연구소장)=고리1·2호기에 비해 신고리3·4호기의 발전 용량은 매우 크다. 장기적 피해 우려가 크기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을 원전 입지 50km 이상 확대돼야 하고 가중치도 줘야 한다. 고리지역의 경우 세계최대 원전밀집지역인 만큼 전략적으로 차별화해 인구가중치를 강조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정부와 지자체에 요구해야 할 것이다.
차연근(부산에너지시민연대 대표)=앞으로 차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석탄화력발전소 반대 서명 5만명 추진이 한달 만에 달성됐다. 우리 부산지역의 탈핵의지를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탈핵 기본법 입법 청원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김영춘(부산 생명의 숲 공동대표)=고준위폐기물처리와 관련해 그 동안 우리나라는 대안을 찾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임시저장을 하겠다고 하는데 정말 이 문제의 공론화가 절실하다.
김용국(영광핵발전소 안전성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전 집행위원장)=현재 국회에 제출된 김성환 법 등은 이번 회기에 심의를 하면 오히려 곤란한 면이 있을 수 있다. 이번 회기를 넘기고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21대 총선 이후에 면밀하게 심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고리핵발전소와 영광핵발전소의 각종 사고 고장 사례를 공유하고 노후핵발전소의 수명연장 문제를 지역을 넘어 연대하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포럼 내에 TF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토론의 의견을 들은 이헌석 정책의원은 “핵발전소 내에 건식저장시설은 한번 만들면 최소 50년일 것인데 이러한 것이 몇 번 반복되면 그 지역은 사실상 최종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될 수 밖에 없다”며 “관련 건식저장시설의 용량 및 기간 등에 대한 명확한 정보공개를 요구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수명연장을 할 수 없도록 입법화해야 한다. 이러한 입법은 입법 청원이나 지역사회의 힘을 바탕으로 국회의원의 입법화를 압박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김해창 경성대 교수는 포럼을 마무리 하면서 “만약 고리원전 내에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이 허용된다면 사실상 고리2호기 수명연장의 길을 터주는 것이 된다”며 “오늘 포럼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노후원전의 수명금지 조항 및 원전 입지 내 건식저장시설 설치 금지 조항의 입법화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수렴된 의견을 정리해 조만간 국회 각 정당 대표와 산업부 장관, 원자력안전위원장, 그리고 부산시장 앞으로 ‘시민의 요구’를 전달할 계획이며 12월 고리2호기폐쇄범시민운동본부 결성 추진에도 시민의 뜻을 모아가도록 더30Km포럼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30Km포럼 참가신청서(모바일) :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edjNAfhc6pfu_WOnVV0I9UW3dkdBiWNfyCaFBZZVPajZTww/viewform?usp=sf_link
<대표기자 / pinepines@injurytime.kr>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