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김 보 나
죽은 사람을 장지에 묻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악기를 하나쯤 다루고 싶어서
대여점에 들러
첼로를 빌렸다
48인치짜리 첼로는
생각보다 육중하였고
나는 그것을
겨우 끌고 들어와
문을 닫았다
소파 옆에 세워둔
첼로는
공습경보를 들은 사람처럼
창밖을 보고 있었다
첼로를 이루는 가문비나무는
추운 땅에서 자란 것일수록
좋은 음을 낸다고 들었다
촘촘한 흠을 가진 나무가
인간의 지문 아래
불가사의한 저음을 내는 순간
더운 음악회장에서 깨어난
소빙하기의 음표들이
빛을 향해
솟구치는 광경을
죽은 사람과 함께 본 적이 있었다
가슴에 첼로를 대고
활을 그었다
첼로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내 몸의 윤곽은 분명해지고 있었다
하얀 나방이 숲으로 떠나가는
깊은 밤
수목 한계선에서 빽빽하게 자란
검은 나무 아래
영혼의 손가락 끝에
홀연히 돋아나는 동심원들
숲의 한가운데에서
쉼 없이 악보가 넘어가고 있다
밤의 연주회지만
중단되지 않는다
- 『동행문학』, 2023년 겨울호, 동행문학 젊은 시인상 수상작
장지에 다녀오면서 이별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인지 음악연주 하려고 임대한 악기가 육중한 첼로였다. 시인은 무거운 그것을 겨우 집으로 가져와서 문을 닫고 창가에 세워두며 잠시 시간을 접는다. 시인의 마음처럼 첼로도 흥분을 진정시킬 수 없는 불안한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것 같았다.
좋은 소리를 위해 추위를 견딘 가문비나무가 악기가 되어 불가사의한 소리를 내자 악보 속의 음표들이 세상으로 나와서 빛을 향해 솟구친다. 그 상황을 함께 했던 망자를 생각하며. 위로가 되어주는 첼로를 가슴에 댄다.
내 마음 같은 무거운 첼로와 일체가 될 수 있도록 윤곽 따라 시인의 몸도 분명하게 굴곡을 지었다. 오래 견디기 위해서이다. 떠난 영혼은 숲으로 갔고 툰드라 그 어디 같은 수목 한계선, 즉 생자가 더 갈 수 없는 경계까지 가서 “홀연히 돋아나는 동심원”으로 영혼과 함께 교류한다.
가문비나무가 자란 그 그리운 “숲 한가운데서 쉼 없이 악보”를 넘기며 이별을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으려는 듯 “밤의 연주회”는 중단할 줄 모른다. 선율에 맞추어 기억은 너울거리며 다니고 무거운 기억부터 다시 차분히 쌓일 것이다.
악보를 넘겨 가며 시인은 기억의 뼈를 마침내 덮을지 알 수 없지만 첼로를 통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고, 무거운 시간을 공유한 뒤 고요를 되찾으면 그 첼로를 반납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산 사람의 현실직시이다.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서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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