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규의 포토 에세이 '우암동으로부터의 편지' (10)만식이의 연적3

김신규 승인 2020.02.11 10:38 | 최종 수정 2021.12.05 17:02 의견 0

파란 띠. 국민학생 만식이의 태권도 실력이었다. 만식은 다락방에 고이 모셔졌던 샌드백을 다시 내려 혹 있을지 모를 나시키와의 결투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 사건(현주 앞에서 넘어져 연적 나시키에게 창피를 당한 사건) 이후 몇번 쳐보지 못한 샌드백은 멈춰버렸다. 나시키를 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하게 지낼 수도 없다. 

감사의 인사는 전해야 할진대 참으로 껄끄럽다. 그래도 남자답게 나시키 집으로 전화를 했다. 육십칠국에 삼오공칠 뚜 뚜 뚜... 
"여보세요?" 아이고라, 저 저음의 멋진 목소리. 순간 저 목소리가 현주의 귀에  메아리처럼 울렸을 것을 생각해보니 ...  

"나 만식인데 그날 고마웠어.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 그래서 한잔 살라고, 언제 시간 괞찮아?" 
"지금도 좋아." 이 화끈함은 뭐야! "그럼 청바지집(목로주점) 알지. 내호냉면 밑에, 7시에 ..."

만띡아, 너 현두 어덴부떠 도와했떠? 나는 현뚜가 떤사야( 만식아, 너 현주 언제부터 좋아했어? 나는 현주가 천사야.).
나띠키야 현쭈는 내꺼당(나시키야, 현주는 내꺼다.).
그럼 만띡아, 현뚜랑 똑싸리 했더?(만식아 현주랑 키스 했어?)
니는? 먼쩌 말해 내가 먼쪄 물어딴아(먼저 말해. 내가 먼저 물어잖아.) 

만식이와 나시키의 양보할 수 없는 술 대결이 절정에 이를 즈음,  문을 드르륵 열고 건하게 한잔되신 현주 아빠가 친구분이랑 오셨다.

어,  아이꼬라 만띡이 이놈 한딴 하네. 차칸 만띡이 인물 보또. 장가 가도 되겠넉. 차카고 효다고 장학쨍이고 ... (만식이 인물 보소 착하고 효자고 장학생이고)

'나의 신 현주 아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벗님'. 

그런데 난데없이 청바지집 주인 아줌마가 고춧가루를 뿌린다. "아이고 현주 아빠, 인물은 나시키가 낫지요, 말은 바른 말이지. 키도 크고, 또 의대생 아이가!"

듣고 있던 현주 아빠,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인 아줌마를 보며 불쑥 내던지듯 말한다.
"아지매, 울집에 전화함 해보소. 현주 있는지, 있으면 오라 하소."

김신규
김신규

◇김신규는

▷전업사진작가
▷우암동 189시리즈(2002~)
▷다큐작업 외 개인전 13회
▷김신규 사진인문학연구소 소장
▷알리앙스 프랑스 초대작가
▷KBS 아! 숭례문특집 총감독
▷KBS ‘포토다큐 사람들’ 다수 진행 및 출연
▷전 아트포럼 대표
▷전 부산시 산복도로 르네상스 추진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