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규의 포토 에세이 '우암동으로부터의 편지' (9 )만식이의 연적2

김신규 승인 2020.02.09 14:23 | 최종 수정 2021.12.05 17:03 의견 0

어제는 마트에 가지 않고 시장에서 장을 봤어요. 초봄을 알리는 초벌정구지가 나왔더라구요.
만식이랑 현주집 앞에서 조금 나오면 골목시장이 있었지요. 그 길로 항상 다녔어요. 
만식이집 파란색 대문은 예뻤어요.

그날 만식이는 꽃을 든 나시키로부터 현주를 방어하기 위해 빛의 속도로 뛰어나가다 그냥 대문에 걸려 그대로 넘어졌지요.
그것도 걸어오던 현주 바로 앞에서.
엄마야, 엄마야, 너무 놀란 현주가 "어머머... 만식아, 괞찮나?" 하며 일으킬려고 했지만 만식이는 그냥 바닥에 쭉뻗어버린다. 아파서 못 일어나는 건지 부끄러워서 안 일어난 건지. 

그러나  만식이는 몹시 아팠다. 팔을 못 움직이고 다리도 그랬다.
현주는 "병원에 가자, 가야겠어. 팔을 움직여봐, 안 움직이네. 다리는? 어머, 피난다!" 

나시키도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다. 
저쪽 목노에서 이 모습을 목격한 나시키는 달빛을 품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이건 또 뭐야, 쪽팔려 죽겠는데...     

그것도 현주를 쳐다보지도 않고 한손에 있던 꽃다발을 터프하게 건너주는 것은 분명 꽃이 아니고 한방 맞으면 정신을 못차린다는 그 전설의 큐피터 화살이었다. 
만식이를 이리저리 보며  전투에서 총에 팔다리를 맞아 쓰러진 전우를 자기 몸뚱아리처럼 따뜻하게 보살피는 이 모습을 보고 있는 현주에게는 큐피터 화살이 한 번 더 심장을 향해 날아가는 중이다.
날아가는 화살을 막아보려 하지만, 제기랄 팔다리가 움직여야지.  이 흑기사는 분명 나시키.
나시키의 꾸구정 부축은 만식이를 더 비참하게 했다.  만식이는 나시키보다 훨 키가 작았다. 

동네병원은 늦은 시간이라 문을 닫았고 도착한 병원은 범일동 S병원 응급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만식이로서는 전혀 뜻밖에 '적과의 동침 아닌 동침'을 한 셈이 됐다.

세 사람이 병원을 나섰을 때는 벌써 날이 희붐이 밝아왔다.

김신규
김신규

◇김신규는

▷전업사진작가
▷우암동 189시리즈(2002~)
▷다큐작업 외 개인전 13회
▷김신규 사진인문학연구소 소장
▷알리앙스 프랑스 초대작가
▷KBS 아! 숭례문특집 총감독
▷KBS ‘포토다큐 사람들’ 다수 진행 및 출연
▷전 아트포럼 대표
▷전 부산시 산복도로 르네상스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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