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규의 포토 에세이 '우암동으로부터의 편지' (8)만식이의 연적

김신규 승인 2020.02.07 13:24 | 최종 수정 2021.12.05 17:03 의견 0

하하하, 천동의 수난시절이었네요. 학력고사 시험을 치고 겨울, 만식이가 염려했고 상상했던 우암독서실 나이키 머시마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어요. 그 이후 만식이는 그 친구를 "나시키"라 불렀대요. 만식이는 자주 봉창으로 현주의 방에 불이 켜졌는지, 무사히 집에 왔는지를 확인한곤 했다. 

나시키 그 놈이 나타났다!
바바리코트에 머리에는 무스를 잔득 처바르고 손에는 꽃다발까지... 현주집 주변에서 서성거리며 현주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골 때리네! 저건 뭐고... 진짜네, 내가 생각했던, 현주가 나한테 냉정했던 이유가. 와 진짜... 
현주 사수 위해 만식이는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방은 군초소로 바꿨다.  
 
프레쉬한 대학 1학년 3월 만식이는 그렇게 잔인한 봄을 나시키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건축가의 꿈을 가진 현주는 공대 건축공학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갔고 그 과에는 여학생이 몇 명밖에 되지 않아 가뜩이나 신경이 쓰이는 터에, 
현주는 초등학교 때부터 예쁘고 공부도 잘했는데, 갈수록 더 예쁘지고 있었으니.

이게 뭔 일이야! 초소 봉창으로 보자니, 현주가 저만큼에서 나타났는데 키가 큰 한 놈이 옆에 있다. 저놈은 또 뭐야. 
오른쪽은 나시키, 왼쪽은 키 큰놈. 

도란스럽게 잠시 얘기를 나누더니 제2의 등장남 키 큰놈은 빠빠이 하며 휘리릭 사라져버린다.
현주가 저만치에서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다. 나시키의 저꽃들이 현주 손에 옮겨지는 순간 꽃은 가슴으로 파고 들어 현주의 마음이 나시키에게 갈 수도 있음이 뻔하다.
백열등 가로등 밑에 처발린 무스는 빛나고 무릎 근처까지 내려온 바바리는 봄바람에 실랑대고, 금테 안경에 쪼개고(웃고 있는) 있는 저 모습은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아이고라×됐다.
에라이 모르겠다.
만식이는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

김신규

◇김신규는

▷전업사진작가
▷우암동 189시리즈(2002~)
▷다큐작업 외 개인전 13회
▷김신규 사진인문학연구소 소장
▷알리앙스 프랑스 초대작가
▷KBS 아! 숭례문특집 총감독
▷KBS ‘포토다큐 사람들’ 다수 진행 및 출연
▷전 아트포럼 대표
▷전 부산시 산복도로 르네상스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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