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규의 포토 에세이 '우암동으로부터의 편지' (7)천동의 비밀3

김신규 승인 2020.02.04 23:40 | 최종 수정 2021.12.05 17:03 의견 0
그 시절 영화 포스터가 붙은 풍경.

안녕, 겨울비가 세상을 조용하게 만드는군요.
아이가 다독상을 받았다니 축하드려요. 

J에게는 잘들었습니다. 
그때, 시간이 지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애틋함이 느껴지는군요.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 같습니다.

천동은 그 여름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어요.
그  고추사건 며칠 후 나와 종환이는 미안한 마음에, 아마 제헌절이었던 것 같은데, 어거정 걸어다니는 천동에게 뭔가 해줘야겠다 싶어 영화를 보여주기로 했어요.  

비가 많이 내렸던 7월 17일.
적기 뱃머리에서 34번을 타고 부산진시장에 내려 철도 건너목을 지나 두 극장이 딱 붙어있는 삼성, 삼일극장에 도착했죠.  
극장영화 간판을 보니 삼성극장은, 마타하리-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삼일극장은 뽕-빨간앵두, 두 프로를 보는 동시상영.
우리는 천동에게 선택권을 줬죠.
삼성극장의 "마타하리-포스트맨은 벨을두번 울린다"

'학생출입 불가'는 그저 형식이고 입장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 없었어요.
문제는 영화 그 자체였죠.
19금이니 야한 장면은 기본이고, 돌비시스템의 음향은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니...

마타하리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는 고교생인 우리를 자극을 넘어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죠.
그 바람에 중간에 앉은 천동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리의 호흡과는 약간 다른 비명을 동반한 앓는 소리.
 "어. 어 어 아 아..."

많이 아팠던 모양입니다. 혹, 실밥이 터진 거는 아닐까 생각도 들었지만, 우리는 모른체 하고 끝까지 두 프로를 봤죠.

비가 많이 오는데도 천동이의 우산은 지팡이가 되었고 펼쳐진 우산 두 개에 세 몸뚱이가 한 몸이 되어 향한 곳은 극장 맞은편 데레사여고 옆 넁면집.
비오는 여름날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어요. 우리는 안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엉거주춤 앉은 천동. 큰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천동의 눈동자는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초점이 흐릿하더군요.

냉면 곱배기가 나왔어요. 냉면 김치 한 젖가락을 천동 냉면에 올려주며 "많이 먹어레이." 
천동 냉면 한 젖가락 후루록 입에 넣고 우리를 쳐다보면,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숙여  젓가락으로 냉면을 집고.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었죠, 웃음이 터질까봐.

돌아오는 길 택시를 잡았죠. 천동이 불편한 몸을 숨기듯 앞좌석에 탄 택시는 우암동으로 향했고, 기사 아저씨는 그런 천동의 모습에  "다리를 다쳤어면 기브스를 해야지" 하네요.
내가 탄 오른쪽은 부두요, 종환이 쪽은 우암동189번지, 우리 둘이 보는 풍경은 다르되 생각은 같았겠지요. 

"꾹 참아야 한다. 웃음아, 제발 멈추어다오."

천동이는 그 다음날 학교에 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재치료를 받았어요.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된 거지?" 하고 묻자, 
천동이 저도 모르게 "영화 보다가 예"라고 했대요.
"무슨 영화?" "마타하리 예, 그리고 포스트맨 ..."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누나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천장을 쳐다보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더라나요.
결국 간호사 누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네요. 하하하...

김신규

◇김신규는

▷전업사진작가
▷우암동 189시리즈(2002~)
▷다큐작업 외 개인전 13회
▷김신규 사진인문학연구소 소장
▷알리앙스 프랑스 초대작가
▷KBS 아! 숭례문특집 총감독
▷KBS ‘포토다큐 사람들’ 다수 진행 및 출연
▷전 아트포럼 대표
▷전 부산시 산복도로 르네상스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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