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규의 포토 에세이 '우암동으로부터의 편지' (11)한여름 밤의 아리랑

김신규 승인 2020.02.12 21:31 | 최종 수정 2021.12.05 17:02 의견 0
이상한 도둑도 다 있제, 상추만 따가고?

종환 : 있제, 우리집 1층에 뭐 키우는지 아나? 
천동 : 뭔데?  
종환 : 대마초. 
나 : 설마, 진짜?
종환 : 내가 아는데 맞다.

아랫집 아저씨, 한낮인데도  컬컬하이 노래 불러사코.  

나 : 진짜로? 
종환 : 가볼래? 함 가보자.
천동 : 진짜로? 
나 : 야! 그럼 따와보까? 
종환 : 일단 따와보자. 

천동이 망을 보고 종환이 살금살금 비좁은 틈길로 몸을 옆으로 세워 들어간 뒤 손을 뻗어 그것을 똑 똑 따면 나는 옆에서 받아 한 잎 두 잎 주머니에 넣었다.
하얀 진액도 나온다. 진짜인 모양이다. 이미 줄기의 밑부분은 아저씨가 따서  했는갑다. 

인자 나온나 가자.
종환이 방으로 가져온  잎파리는 '독재타도 민주쟁취'라는 글짜가 선명한 '민주소식'이라는 신문지 비슷한 거에 싸서 농 위에 올려 놓았다.
종환이 말로는 말려야 한단다.

비가 오고 해서 그런지 며칠이 지나도 잘 마르지 않고 시들시들 한 것을 누나 방에서 가져온  드라이기로 말렸다.
조금 뽀시락해졌다. 

담배 한 까치의 연초를 빼고 그곳에  요것을 넣었다.
마리포사 성냥에 불을 댕겨 한 명씩 붙였다. 
"쑥 빨아댕기야 된다. 쑥 쑥 수욱~" 
어떤 노? 
"독하긴 한데 아무 느낌이 없고 토할 것 같은데..." 하며 천동은 욱욱거리며 충혈된 눈빛을 보인다. 

뭐 뿅가는 거 아니네?
아이다, 이거 한 번 해가지고 안 된다.
우리는 그렇게 그날 밤 또다시 그것을 따왔다. 그것도 왕창.

또 말렸다. 반갑 넘게 만들어졌고.
야심한 밤에 각각 나눠 다 피웠고 두통을 동반한 미식거림 그리고 계속되는기침... 목이 타는 듯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종환이 어머니께서 돼지갈비를 구워주시는 밥상머리에서 하시는 말씀에.  
"참자, 제발 웃지 말자." 
한 명이라도 웃으면 뾰록난다.

나는 상추에 싼 돼지갈비가 입에서 다 뛰어나오는 줄 알았고, 종환이는 갈비를 씹다 말고 한참 고개를 돌리고, 천동이는 상추만 바라보며 어금니에 힘을 주고 젖가락을 내렸다 들었다 하면서 보리차 한 잔을 벌컥 마신다.  안 그래도 목이 타는데...
우리 세 명 절대 눈이 마주치면 안 된다.
참자, 참자. 호흡을 크게 하고, 웃으면 안 돼! 

"야야 우리 동네에 생전 없던 도둑이 생겼다.  우리집 1층 희야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이상 하이 상추만 다 따갔다 하더라."  

푸하하 하하하... 
너거 와 그라노, 너거가? 
아입니더, 하하하...

김신규
김신규

◇김신규는

▷전업사진작가
▷우암동 189시리즈(2002~)
▷다큐작업 외 개인전 13회
▷김신규 사진인문학연구소 소장
▷알리앙스 프랑스 초대작가
▷KBS 아! 숭례문특집 총감독
▷KBS ‘포토다큐 사람들’ 다수 진행 및 출연
▷전 아트포럼 대표
▷전 부산시 산복도로 르네상스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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