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규의 포토 에세이 '우암동으로부터의 편지' (16)만식이의 빨간책
김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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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6 11:25 | 최종 수정 2021.12.0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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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식이 와 이래 안 오노! 점심 때 김치국이랑 밥 잘 무꼬?
저녁은 집에 와서 묵는다 했는데...
바가지에 땡초 넣어 칼칼하게 머무려낸 콩나물 무침. 백열등 불빛에 환 하게 비춰지는 콩나물 무침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머니는 중얼거린다.
그 시각, 또 다른 백열등 밑에서는.
어이~ 박만식! 나시키가 누구냐고?
맞... 맞는데예! 나시키는 의대 다니는 친구인데예, 나이키를 신고 다녀서 별명을 나시키라 부릅니다.
거짓말도 잘 하네. 그 나시키 일본인이 간첩 아이가. 너희가 어떻게 왜 이 불온서적을 주고 받았는지 6하 원칙에 딱, 맞게 거기에 자세하게 일단 적어라.
(학교 정문 밖으로 도망치듯 나오다. 만식이는 『껍데기를 벗고서』 책을 놓쳤고 그것을 잠깜만, 잠깜만 만식아 하며 창호가 주웠다. 학교 밖으로 나오자 말자 도와줄 것 같았던 경찰은 검문을 하며 책을 보고 경찰서로 이들을 연행했고, 이 책 뭐야? 너, 빨갱이야 라고 창호를 억지르는 경찰을 보고 만식이는 그 책 제 건데요 라고 말했다. 그럼 너는 이 책 어디서 났어? 라고 묻자 현주가 줬다고 대답하지 않고 어떨결에 나시키라 했다가 ...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집중 신문을 당하는 중이다.)
니, 친구라며 그라면 전화번호 알겠네.
아이고라 ×됐다.
모른다 하면 사방이 막혀 있는 이곳에서 절대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전화번호를 주면 나시키는 모르는 일인데, 그럼 현주가 줬다라고 하면 현주가 빨갱이?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 살았고 지금은 내 사랑 현주가 빨갱이라고? 난생 처음 들어보는 '불온서적'이라는 말, 이것을 들고 있으면 뿔 달린 빨갱이라고? (이건 아이다 아이가!)
어이, 만식이 니 친구 나시키 전화번호 주봐 ... 왜 못줘? 거짓말 말고, 너는 이제 콩밥이야!
예, 콩밥 예? 무슨 말인데예?
몰라서 물어?!
기다리다 어머님은 콩나물에 밥을 비벼 먹는 둥 마는 둥.
야가 왜 이리 안 오지?
◇김신규는
▷전업사진작가
▷우암동 189시리즈(2002~)
▷다큐작업 외 개인전 13회
▷김신규 사진인문학연구소 소장
▷알리앙스 프랑스 초대작가
▷KBS 아! 숭례문특집 총감독
▷KBS ‘포토다큐 사람들’ 다수 진행 및 출연
▷전 아트포럼 대표
▷전 부산시 산복도로 르네상스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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