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규의 포토 에세이 '우암동으로부터의 편지' (17)빨갱이 블루스

김신규 승인 2020.03.09 10:26 | 최종 수정 2021.12.05 16:58 의견 0
"우암동 시리즈"  에디션5 암실작업  2003 김신규ㅡ
'우암동 시리즈'  에디션5. 암실작업, 2003. 김신규.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끼그적 문이 열리며 형사같은 사람이 소리친다.
어이, 박만식 니 이리 나온나. 
예 ? 
박만식!
빨리 나오라고 빨갱이 새끼야! 
(방도 아니고, 사무실 같은 문 앞에는 중국집에서 시켜, 채 먹지도 않은 그릇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평소 짜장면 맛있는 냄새가 아닌, 공포의 냄새가 엄습한다. 무섭다)

여기 니 이름 옆에  지장 찍어라.       
인주 저 있네. 야! 니 눈에 안 보이나, 그 옆에 있네, 새끼야.
빨리 찍고, 저 사람 따라가라.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서류 같은 것에 이미 내 이름 '박만식'이 타이프 쳐쳐 있었다. 

들어올 때와 달리 다른 문으로 데리고 나가더니 "박만식이, 너 저쪽 골목으로 가라" 하고 쉭 들어가고, 작은 철문이 끼ㅡ잉, 처렁 닫히는 듯 싶더니, 다시 문이 열렸다.
박만식,  니 이리 와봐. 
니 운 좋은 줄 알아라. 
한 번만 더 데모하다 잡혀오면 그때는 진짜 콩밭이다, 알았나! 
가라.

진짜 보내주는 건가 뒤에서 때리는 거 아이가. 두리번거려본다.  아무도 없다... 와 살았다! 
(그런데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와, 시바 이런 데 왔어. 죽어도 쥐도 새도 모르겠네. 와 쪼리라. 빨리가자.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벗어나려는데...)  

어! 어찌 된 거지?  골목을 벗어날 즈음 사람들 무리가 다들 나만 쳐다 보고 있다.

어 ! 이건 또, 어찌 된 거고  강후이... 정강훈 (나시키) 와 저 서 있노? 주머니에 손 딱 넣고 당당하이... 형사 아저씨 나시키한테 진짜 전화한 거 아이가. 폼 보니 했는 것 같은데. 아~ 진짜... 좀 그렇네.    

가만히 있어 보자, 저, 저 현주 아이가, 그라고 그 옆에  창호... 내 앞으로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아줌마, 아이고라! 엄마... 우리 엄마네!  근데 와 울라 하노! 
저, 담배 피는 사람은 아버지... 저건 또 누고! 현주 집 앞까지 선물주며 데려다준 키 큰놈. 우째 된 거고, 여기 와 다 와 있노? 

(시계는 밤 10시 즈음을 지나고 있다. 이 모두가 택시 두 대에 도착한 곳은 우암동 청바지집.) 

야야 사람 다 못 앉는다. 요기 탁자 붙여라!
언니야! 우리 갈비 주고, 술도 주고. 빨리 좀 주 봐라.
다, 어디 갔다 오노, 늦은 밤에?
언니야! 언니야! 말도 말아라.  

한 패(엄마. 아부지)는 걱정과 화가 잔뜩 나 있고, 또 한 패(현주, 나시키,  키 큰놈) 는 미안해 하고 만식이 얼굴은 두 패 사이에서 어리둥절 왔다갔다 한다. 창호는 지쳤긴한데 그나마 낫다.

만식아! 니 전화해 봐라 현주 아빠 계시면 오셔서 한잔 하시라 해라. 

만식이는 오늘 도대체 뭐꼬~.

학교 가기는 갔는데 한 시간만 하고,
데모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니고, 
불온서적?  읽은 것도 안 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빨갱이는 아니고 노랭이도 아니다.  

그라고 왜 사람들 여기 다 있노?
안 그래도 그렇는데 저 키 큰놈은 뭐고?

(그래도 현주 보니까 미소가 나온다. 어찌 되었든 우리 엄마 옆에 딱 붙어 앉자 있는 모습이 우째 저리 예쁘노!)   

야! 박만식.

휴, 니 엄마가 뭐라 하시더노!
데모하는데 옆에라도 가지 마라 했제.
옆에만 가긴했는데... 엄마 말이 귀에 안 들어온다. 현주와 맞주 앉은 키 큰놈의 저 능글한 미소가 현주에게 뭐라 말하는 듯 현주는 알겠다는 듯 현주 고개숙이며 미소짖는다. 나시키도 그 둘을 쳐다본다. 

박만식! 엄마말 안 들리나?

가스 불 켜라!

김신규

◇김신규는

▷전업사진작가
▷우암동 189시리즈(2002~)
▷다큐작업 외 개인전 13회
▷김신규 사진인문학연구소 소장
▷알리앙스 프랑스 초대작가
▷KBS 아! 숭례문특집 총감독
▷KBS ‘포토다큐 사람들’ 다수 진행 및 출연
▷전 아트포럼 대표
▷전 부산시 산복도로 르네상스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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