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규의 포토 에세이 '우암동으로부터의 편지' (19)그것, 운명이되다2 (현주와의 첫 키스)

김신규 승인 2020.03.20 18:43 | 최종 수정 2021.12.05 16:57 의견 0
우암동시리즈 2003  암실작업 에디션5.  김신규
'우암동 시리즈' 에디션5. 암실작업. 2003, 김신규.

현주를 이끌고 골목으로 들어서는 만식이의 격렬함은 마치 씨름선수 같았다. 공격에 무의식적인 방어를 하려는 현주의 심장은 꽁닥 콩닥 쿵닥 뜀이 일정하지 않다. 빠르다, 멈췄다를 반복해간다.  음, 엄엉 ...  안돼, 음 ...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방어해보지만, 늪에 더 깊이 들어가는 듯하다.

100미터를 전력으로 뛰고 나서 숨가쁜 호흡. 그 큰 숨쉼을 하지 못하고 코로 간식히 색색이며 숨을 쉰다. 그 뜨거운 호흡(붉은 바람이 불고 있다)이 서로에게 부디치며 교환될 때면 어색해져 잠시 숨을 멈춰 다시 숨을 쉬다보면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터질 듯한 몸의 소리가 만식이를 더 격렬하게 만들곤 했다. 현주의 몸 중간쯤 여기 저기에 뭔가 스치다 멈춘다. 긴장, 당황스러움에 겨우 손에 힘이 모아진다.

만식이의 흥분은 이내 가라앉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진도를 내기엔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다. 현주는 한 손으로  만식이의 가슴을 살짝 밀어보고, 머리를 돌리려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만식은 현주를 세상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듯 한 팔은 현주 목을 다른 한 팔은 허리를 힘껏 감싸고 있다.      
    
회색빛 담벼락에 등은 붙어 있고  현주의 가슴과 만식이의 가슴이 마찰되며, 하얀색 블라우스의  단추와 단추 사이가 지그제그로 움직이며 벌어진 사이로 포얀 살과 브레지어가 보인다.  현주는 미봉책으로  이마로 만식이 이마를 밀어보려고 힘을 가하자 콧잔등을 밀고 말았다. 현주의 기습적 이마 밀기에  만식은 아, 아! 아파하며 순간 밀리고 말았다.

휴~ 휴 ...  

박만식 못 됐다(아이 몰라). 그만 가자. 기다린다.
현주는 만식의 손을 잡고선 말했다. 큰 호흡을 감추듯 만식이는 가슴을 넓혔다. 폈다 반복하며 숨을 고른다.
둘은 손등으로 입술을 훔쳐내고 골목 바닥에 떨어뜨린 초코파이 상자와 초를 집어들고 골목을 벗어 나려는데...
현주야! 잠시만, 잠시 이리 와봐. 만식은 현주를 바로 옆 평상에 앉혔다. 
제 현주는 만식이의 온기를 두 눈을 감고 받아들인다. 핑크빛 바람이 머문다.
현주와의 의 첫키스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1987년 봄이었다.      

만식아? 
응!
저 골목에 저기에 아직 불켜져 있자나?
응!  그래 뭐지?
신발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모여 밤늦게까지 공부한대.
그렇나? 그래 가끔 지나가다 밤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뭔가 했어. 
우리동네 대학생들이 선생님으로 열심히 봉사하며 가르친대.
야,  좋은 일 하네.
우리도 다음에 실력이 되면 하까!?
그래, 만식아.      

청바집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아, 깜짝이야! 나시키가 문옆 모퉁이에서 한 모금의 담배를 길게 내뱉는다.  

너거 두리 빨리 오네!
노랑빛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김신규
김신규

◇김신규는

▷전업사진작가
▷우암동 189시리즈(2002~)
▷다큐작업 외 개인전 13회
▷김신규 사진인문학연구소 소장
▷알리앙스 프랑스 초대작가
▷KBS 아! 숭례문특집 총감독
▷KBS ‘포토다큐 사람들’ 다수 진행 및 출연
▷전 아트포럼 대표
▷전 부산시 산복도로 르네상스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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