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규의 포토 에세이 '우암동으로부터의 편지' (3)천동의 비밀

김신규 승인 2020.01.26 22:19 | 최종 수정 2021.12.05 17:05 의견 0

안녕, 편지 잘받았어요.

하하하~지금에야 말할 수 있겠네요.
그때 천동이 갑자기 다리를 벌리며  걷는다고 낄낄대며 웃었지요.
포경수술은 아니었어요. 
토요일 밤샘 토론을 자주했던 우암맨션 종환이의 방에서,
아마 85년 즈음 나 그리고 천동, 종환. 
그날도 세 명이 딱 달라붙어 별은 보이지 않지만 천정을 보며 누워 그 시대의 얘기를 하며 분노하기도 했고,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사실은 이랬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우던 새벽 무렵,
중간에 있던 천동이 잠을 못이기고 잠이 들어버렸어요.
양 옆에 있던 나와 종환이는 도무지 이야기를 할 수 없었죠.
천동이가 코를 심하게 골았거든요.

코도 잡아보고 베개도 빼보고 했는데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서로는 장난끼가 발동되었지요.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치약이 아니라 빨간 노끈이었어요 

그래서 그 노끈으로 천동의 고추를 묶어 동그란 문고리에 팽팽하니 연결했지요.
그리곤 우리도 잠이 들어버렸죠. 

아침에 어머니가 "야들아! 아침 먹어라" 하시며 문을 열려는데, 묵직하게 잘 안 열리니 한 번 더 힘을 주셔서 문고리를 당기셨고......
천동은 두 번의 비명을 지르며 방문 방향으로 날랐어요.
나는 꿈인 듯했지요. 종환이도 꿈인 줄 알았다고. 
 
그 치료 받는다고 천동이 한동안 다리를 벌리고 다녔던 것이었어요. 

벌써 새벽이네요, 잠이오네요. 그 새벽처럼.
그 이후는 담에 또 이야기할게요. 

김신규

◇김신규는

▷전업사진작가
▷우암동 189시리즈(2002~)
▷다큐작업 외 개인전 13회
▷김신규 사진인문학연구소 소장
▷알리앙스 프랑스 초대작가
▷KBS 아! 숭례문특집 총감독
▷KBS ‘포토다큐 사람들’ 다수 진행 및 출연
▷전 아트포럼 대표
▷전 부산시 산복도로 르네상스 추진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