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면국수는 늘 불안했다. 자기 몸, 국수에 칼이 들어가 있으니 조심하라며 을러대는 칼국수 때문이었다. 사실 반달 같은 칼로 쓱쓱 자기 몸을 쓸어대는 것도 모자라 걸핏하면 자기 몸에 홍두깨로 두들겨 패는 자해를 하고는 선을 다시 긋자며 공갈하는 통에 골머리가 아팠다.
그러잖아도 제법 국수 세계에서 장사 잘한다고 알려진 온면국수는 장사 망칠까 싶어 좋은 게 좋다는, 세상 물리에 돈 아니면 풀 수 없는 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돈 몇 푼을 가지고 이제껏 구슬려 오던 참이었다.
하지만 온면국수는 가진 게 많았고, 그걸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을 파악한 칼국수는 땅바닥에 널브러져 흙무지가 되어 못 먹게 된 자신의 국수를 돌려 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그렇게 온면국수를 들들 볶았다. 그럴 때마다 오던 손님이 발걸음을 돌리거나 앉았던 손님들도 서둘러 자릴 떴다. 장사가 될 리 없었다.
그런 칼국수에게 온면국수는 속상하고 열불 난 마음이 아니든 게 아니었지만 단군신화 창조 이래 늘 가슴에 품었던 '국수는 하나다!'란 거창한 명분으로 자신의 국수 속을 달랬다.
한 번은 칼국수가 업종 변경한답시고 속 시뻘건 장칼국수를 만들었는데 뒤집을 때마다 벌건 국물이 산지사방으로 튀었다. 붉으죽죽한 장국물이 어쩌다 온면국수에 들어가 섞일 때도 있었다.
온면국수는 칼국수가 시도 때도 없이 벌건 국물을 튕기는 걸 보고는 자기를 칼국수화化하려는 야욕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제 몸 속을 파 뒤집기도 했다. 별 것 없는 붉은 방울임에도 한 방울이라도 비치면 마치 적화赤化에 감염이라도 되서 망할 것 마냥 온갖 호들갑을 다 떨고 알레르기 발작을 일으켰다. 특히 온면국수에 있던 쌀국米國 메카시는 붉은 국물 한 방울도 있어선 안 된다고 하는 극렬 시위를 벌였다. 아니. 자기 국물을 덜어내는 한이 있어도 빨간 국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사실 면발의 색깔만 다를 뿐이었지 멸치를 우린 물로 하는 건 온면국수든 칼국수든 다를 게 하나 없었다. 다만 칼국수가 거기에 시뻘건 고추장을 섞으면서 맛과 간의 이념장화라는 주체사상면을 고집하면서부터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것은 일본산 멸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온면국수에 대항하기 위한 칼국수의 나름 생존방식이기도 했고, 짱개면과 라프샤면이 지원을 끊자 위기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서로가 가진 공통점을 받아들이지 못한 칼국과 온면국은 언제부턴가 너가 틀렸고 폭망해야 내가 산다며 성마른 피새질에 삿대질, 급기야 주먹질까지 하는, 격한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온면국수는 그간 맛을 잘 내고 고명처럼 우아한 장식으로 풍미를 돋웠던 붉은 고추, 붉은 당근에게 종칼이란 이름을 씌워 마구잡이로 수채 구멍에 밀어 넣었다. 붉은 종칼로 한 번 낙인찍히면 국수로서 가졌던 모든 기본권은 박탈당했다. 황당한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아무 상관없는 계란 노른자도 종칼의 칼춤 사냥에 비켜갈 수 없었다. 노란색이 붉게 변해 적화 야욕에 빠지고 노란 색이 붉은 색을 은닉할 수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의심으로 온면국수 스스로 불고지죄를 만들기에 이르렀고, 결국 온면국수는 시각과 맛을 대표하던 노른자위를 빼버렸다. 허여묽은 흰자만 남게 된 온면국수는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국수 본연의 맛을 잃어 가고 있었다.
칼칼한 맛이라곤 없는 온면국수에 부추와 시금치가 제대로 된 맛을 내보겠다고 나섰으나 그러나 오월 단오 끝물에 쑨 풀죽 맛이었다. 결국 국수 세계에서 서서히 외면을 받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온면국수는 국면을 일거에 바꿀 뭔가를 짜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실 그전에도 온면국수가 위기에 처할 때면 칼국수에게 있지도 않은 칼을 던져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고 해서 음험한 공작을 한다는 게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MSG를 넣고는 순수 멸치로 국물을 냈다고 국민을 여러 번 속였기 때문에 웬만히 해선 국민이 믿지 않을 거란 것이 영 맘에 걸렸다. 그때였다. 칼국수가 세상 이목을 다시 끌어보겠다고 시뻘건 구공탄에 냄비를 올려놓고 팔팔 끓여대며 허연 김을 내는 일명 '광명성 냄비우동'이라고 하는 실험을 했다. 별거 아니었다. 그저 펄펄 끓는 냄비물에 우동사리만 집어넣으면 되는 그런 국수 비스므리한 거였다.
그러나 펄펄 끓는 물을 처음 본 온면국수는 저거다! 하고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동네방네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우리와 같이 면발 가는 국수는 저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익기도 전에 퍼져 더 맛이 없어지고 칼국수 적화 야욕에 온면국수 최후의 보루 자유 민주가 없어진다는, 있지도 않은 말을 국수 세계에 대고 떠들어 대었다. 더 나아가 자신을 담가서 죽일 것이란 두려운 말을 만들어 내며 냄비우동을 막을 만한 것을 들여와야 한다고 외쳐대었다.
이때 기다렸다는 듯 길 건너 지엠오국수가 나섰다. 펄펄 끓는 물에 터져서 날아 올 냄비우동을 미리 예측하여 막을 반사경과 케노피가 있으니 구입하면 냄비우동뿐만 아니라 가는 면, 굵은 면 심지어 짜장면도 막을 수 있다고 구입하기를 강권하였다.
온면국수 주변에 어깨 넓은 랩터국수와 흉터 자국 진한 비오십이국수가 어슬렁거렸다. 무기류에 단속되지 않는 날카로운 드라이버를 돌돌 돌리면서 온면국수 주위를 배회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온면국수는 칼국수가 있지도 않은 칼을 던진다며 국수의 내성 강화를 위해선 지엠오의 유전자 고고도 시드[씨앗 종자]를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그것을 아니꼽게 지켜보던 옆 집 검은 짜장국수는 유기농이라고 속인 자기 시커먼 속이 들킬까보아 지엠오에게 반사경과 시드를 들여오지 말 것을 강력히 주문하였고, 온면국수에겐 설치 즉시 부추, 상추, 시금치 등을 전량 회수는 물론 그간 모른 체 대주었던 유커스프를 더 이상 공급해주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여기다 한 술 더 떠 다진젠 마늘을 뿌려 온면국수 시장을 일거에 초토화 시키겠다는 경고를 연거푸 내놓았다.
온면국수는 위기를 맞았다. 그렇잖아도 푸성귀를 우려낸 물로 근근이 맛을 내던 온면국수였다. 그것마저 없으면 경제적으로 입을 타격이 이만저만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괜한 짓에 지엠오국수와 짜장국수 사이의 힘겨루기 싸움에서 등골이 휠 지경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양분된 국수 세계의 한축인 온면국수에선 체제를 위태롭게 한다는 일부 심상치 않은 발언이 새어나왔고, 칼국수 시장의 개성면 일부를 양도 받아 집 옆 귀퉁이에서 소규모 장사를 하던 일부 온면국수류들은 못살겠다고 비난을 마구 쏟아 내었다. 갈수록 처지가 곤궁해진 온면국수는 급기야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국수들로부터 시장을 망가뜨린다는 손가락질을 받기에 이르렀다. 여기다 칼국수의 장국수와 실험용 냄비우동국수를 비난한 것이 되려 온면국수 시장을 위태롭게 하는 바람에 세계국수는 온면국수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겠다는 경고를 보냈다.
이런 상황을 숨죽여 지켜보던 온면국수의 면발들이 서서히 일어났다. 일제라면 나가사끼 우동 사촌인 다가끼마사오면과 문어면으로 국수시장을 질식시켰던 88면 시대에도 우리밀 주의를 외치며 우리밀은 우리밀 끼리라는 구호로 서슬 퍼런 시대를 지나온 면발들이었다.
드디어 판문점포에서 극적으로 각기 가진 국수를 대동하고 만났다.
“이보라우요 대통령님. 기래 우리민족끼리 싸울 필요 뭐 있갔습네까.”
“허, 김 칼국방위원장님. 손을 쥐어보니 칼이 없군요. 우린 다들 칼이 있는 줄 알고 여태 가슴 졸였지 뭡니까. 하하.”
“아니 칼은 아무 때나 씁네까. 지 민족 강토를 침탈하는 강도에게 써야지. 어데 지 민족에게 씁네까.”
“그럼요 그럼요. 개성에 온면공단 분점 하나 낼까 하는데....”
“아. 좋디요. 우리 칼국수 인민들 취직해서 아니 좋습네까. 무장 칼국수 뒤로 물리겠습네다.”
그렇게 칼국수와 온면국수는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썩어가고 있는 분단면을 없애고 통일면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 소설가 백승휘
▷고용노동부 주관 제39회 근로자문학제 단편소설 <땅개> 금상 수상.
▷방송통신대학교 주관 제43회, 44회 방송대 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그녀와 미숙이>, <명암 방죽> 입선.
▷사단법인 인본사회연구소 <인본세상> 편집위원(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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