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으죽죽
백승휘 소설가
아무리 일찍 출근해도 어김없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그것도 구루마에 엉덩이를 떡하니 받치고 담배 한 대 빼물고 기다리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도전적이고 적의가 가득한지 눈에 힘이란 힘은 다 들어가 있다. 거기다 가래침까지 타악 뱉을 때면 내 오장육부가 다 문드러질 정도다. 왜 하필 내 앞에서 그 영감탱이가 그런 말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좀 삐딱하다는 건 나도 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내밀한 부분이다. 뭐, 물론 30, 40년 전만 해도 나 같은 자는 사회불순세력으로 손가락질 당했으니 부인은 못한다. 그렇다 해도 40년이 훌쩍 넘은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아침 훤한 날에 그런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똥 씹은 느낌이다.
그렇게 피해갈래야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길에서 마주쳤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힘으로 왈짜 짓을 해도 손쉽게 넘어갈 영감탱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엄연히 살아있는 서릿발 같은 보안법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고, 또 그 영감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앓 듯했다.
얼마 전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비루먹은 개꼴인 영감쟁이와 다투니 부아가 이만저만 치밀어 오른 게 아니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서 이곳 지리에 익숙지 못한 것도 있고, 이곳 사람들 성향도 파악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지만 너무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
싸움도 적당한 인격의 소유자끼리 싸워야 식식대는 감정도 덜 할 것인데, 이건 뭐 숫제 때리면 깡통 소리밖에 낼 줄 모르고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벽창호 같은 영감탱이하고 말싸움을 했으니 화가 날 수밖에. 거기다 아무리 싸움이라도 쓰는 단어가 고급지면 들을 말이라도 있고, 그러다보면 그 말꼬리를 잡아 뭔가 공통점을 찾아가면서 부글부글 끓던 감정을 사그라뜨릴 것인데, 그런 것 전혀 없이 딱 한 마디만 연거푸 내뱉는 영감하고의 싸움이라니. 영감한테 우세당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 우세를 당했단 생각에 배앓이가 틀어지고 속이 상했다.
그 영감탱이가 어디 사는지 모른다. 사금파리 꽂은 담벼락 밑에서 담배 피는 걸 여러 차례 봤지만 사는 곳이 어딘지 모른다. 물론 관심도 없다. 영감은, 구멍 송송 뚫린 러닝셔츠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가슴뼈와 빨래판처럼 선명히 드러난 갈비뼈가 살가죽을 죽죽 당겨 오물오물 씹는 것 같은 몸을 가졌는데, 그것만 보자면 싸움이고 뭐고 갈쌍해서 에잇! 하고 돌아서고 말았을 것이다. 거기다 담배 피울 때마다 새 부리 쪼인 사과 마냥 움푹 파인 볼과 양 미간으로 모이는 꼬막 같은 주름은 어찌나 볼품없던지, 출근길 오갈 때마다 본 바로는 그리 평탄한 삶을 산 건 아니었겠구나, 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 영감쟁이가 하는 일이란 구루마를 끌며 폐지를 주워 담는 일이다. 구루마도 큰 것도 아니다. 요구르트를 싣는 작은 구루마다. 그러니 폐지를 많이 담을 수도 없다. 아무리 발로 꽉 꽉 누르고 쌓아도 고물상에서 넘겨받은 돈이란 물판금 2천 원이 고작이다. 국수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그 돈으로 담배 한 갑 사고 만다. 물론 비 오는 날은 당연히 쉬는 날이고, 폐지가 없는 수요일 목요일은 주인 따라 구루마 바퀴도 하냥 논다.
가장 폐지를 많이 수거 하는 날은 불타는 불금, 금요일과 욕망의 포탄 터지는 시간, 포토타임 토요일이다. 그런 날은 두툼한 박스가 가게 앞에 주체 못해 널려있다. 한 놈이 싣고 가고 또 다른 놈이 와서 싣고 가도 폐지가 늘 쌓여 있어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움하지 않아도 된다. 무항산무항심이고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굳이 힘들이지 않고 취할 정도로 폐지가 흔전만전 넘쳐나면 따로 욕심 부리지 않아도 되는 게 이 세계의 그 시간이다.
그런데 금 토 일요일을 빼고는 폐지가 없어 벌이가 시원찮아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어데서 굴러먹다가 왔는지 한 살이라도 덜 먹은, 근골깨나 있을 법한 새파란 영감이 등장했다. 그 영감이 눈 부라리고, 이것은 내꺼! 하고 찜해 놓자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었다. 영감치곤 피둔한 살집이 잡혔다. 허벅지와 팔뚝도 굵다. 그러니 그 영감에게서 폐지 몇 장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간 드잡이를 겪어야 한다. 그들 세계에서 묵계처럼 지켜졌던 ‘남 구역 넘보기 금지’란 협정은 그 영감이 나타난 이후로 깨져버렸다.
무한경쟁 시대, 약육강식의 시대라는 말로 시장주의를 외쳐댄 개신교 장로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폐지 줍는 세계에도 경쟁 불똥이 튀어 더 살벌해졌다. 힘 센 놈이 남 구역을 넘보고, 자기 구역이라고 하던 ‘나와바리’도 한 살 더 젊은 치들에게 뺏기고 마는 세상 삭막함이 거리를 배회했다.
학문의 전당 대학에서도 철학이 천학賤學으로 전락하는 세상이고, 유치원에도 조기 경쟁마인드를 심어야 된다는 정부정책에 ‘얼라가 가르치는 경영학’이란 해괴한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러니 현대판 팔천업에 속한다는 폐지 줍는 업도 경쟁의 소용돌이에 안 빠져들 수가 없었다. 그 영감탱이라고 무슨 통 뼈가 있는 것도 아닌데, 죽을 맛이었겠다. 새벽같이 일어나도 어느 놈 년이 주워가는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폐지가 없다. 빈 입맛만 쪽쪽 다시다 보면 가슴 안에 불길처럼 화가 홧홧 쌓이고, 화 풀 만한 대상을 찾으려는 그때 막걸리 집에서 술 주작 부리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순간 영감쟁이는 뭔 생각이 들었던지 내 얼굴에 대고 ‘빨갱이! 빨갱이!’를 소리 내어 외쳤고, 그 말을 들은 나도 눈에 이빨을 사려물고 ‘틀딱! 틀딱!’ 하고 외쳤다. 근데 그 영감탱이가 틀딱이 뭔지 알아들을 턱이 있나. 빨갱이 소리는 알아들어도 틀딱은 일방만 알아듣는 아무 소용없는 말이었으니 의문의 1패였다.
그 이후부터 영감쟁이는 나만 졸졸 따라다니며 빨갱이를 외쳐 되었다. 그 영감쟁이의 그런 망령된 말이 듣기 싫어 한 두 번 피해 다니긴 했지만 이 골목이 아닌 다른 길로 방향을 잡으면 곱절을 돌아서 집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입에 십 원짜리를 달고 그 화를 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영감을 마주쳐야 하는 게 숙명이려니 했다. 사실 내가 피할 이유는 없었다. 막무가내로 머리를 디밀고 달려드는 통해 식겁하긴 했지만 피해 다닐 이유는 없었다. 마침 그때 막걸리 주인장이 그런다.
“어이 백 선생, 그 영감 미워하지 마오. 저 영감이 제일 잘하는 것은 ‘빨갱이’ 소리라오. 그래야 쳐다봐 주니까, 응답해 주니까. 빨갱이, 해도 세상은 아무런 반응이 없고 그러니 한동안 그 말을 써 먹지 않다가 아무나 걸려라 농 삼아 던져본 게 백 선생이 걸린 것이요. 잘코사니 했겠죠. 그리고 백 선생 스스로도 빨갱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 그냥 대화가 그리운가 보다 하고 넘어가오. 어찌 보면 식구 하나 없이 사는 저 영감, 그 말에 반응하는 세상과 사람이 그리워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소. 내가 막걸리 빈 통이 나올 때마다 쌓아놓고 ‘영감님이 말한 그 빨갱이 손님이 영감님께 드리랍디다’하고 말하며 주겠소. 대신 ‘빨갱이 소린 하지 마시오’ 하고 타일러 보겠소.”
그 일이 있은 후 오갈 때마다 영감을 불러 막걸리 한 사발을 대접하였고, 영감쟁이는 고맙다고 예의 ‘빨갱이’ 소리를 입 밖에 내었다. 그러면 나는 손바닥을 부처님의 ‘시무외인’처럼 만들어 ‘반사’했다. 그 영감의 입에서 나온 빨갱이는, 이유 없이 죽여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힘드니 쳐다봐 달라는 ‘빨갱이’였고, 가진 자들의 억눌림에서 신음하는 영감 같은 이들을 해방시키려는 목성牧星의 「깨어 가는 길」에서 나오는 ‘빨갱이’였을 것이다.
*‘빨갱이’는 소설 「깨어가는 길」에서 처음 등장했다. 소파 방정환이 함경도 지방을 지나가다가 농민들을 위해 일을 아주, 썩, 훌륭히 잘하는 청년을 보았다. 실명을 밝히지 않고 대신 빨갱이라 썼다. 그것은 일본경찰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여하튼 소설에 등장하는 빨갱이는 죽어도 또 살아나 농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자를 말한다.
◇ 소설가 백승휘
▷고용노동부 주관 제39회 근로자문학제 단편소설 <땅개> 금상 수상.
▷방송통신대학교 주관 제43회, 44회 방송대 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그녀와 미숙이>, <명암 방죽> 입선.
▷사단법인 인본사회연구소 <인본세상> 편집위원(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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