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9-꽁트】 오키 오키 프로브 - 백승휘

백승휘 소설가

시민시대1 승인 2022.09.08 09:03 | 최종 수정 2022.09.09 21:00 의견 0

내가 그 놈을 만난 것은 순전히 프로브 탓이다. 그놈이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만지긴 했어도 어쩌자고 내가 그놈 것을 만졌는지, 한숨 밖에 안 나온다. 내가 그때 귀신에 씌었거나 뭔가 딴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놈 것을 만질 턱이 없다.
 
내 나이 마흔 다섯. 한때 죽을 만큼 열렬했던 사랑이 깨지고 너무 아파 다신 사랑 같은 건 하지 않으리, 했다. 십년이 흘러 마흔 중반에 다가서니 주위가 난리다. 딴은 그렇다. 고 사슴 같은 눈망울에 포동포동 살 오른 아기를 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기를 어르고 쪽쪽 빠는 아빠를 보니 결혼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잊자고 등산을 해보기로 했다. 산악회에 전활 걸었다. 어디 어디 몇 시에 나와서 버스를 타란다. 그리고 끝맺는 말에 몇 살인교? 하고 묻는다. 남의 나이 물어서 뭣에 쓰려고 그러나 싶어 눈깔사탕 입에 문 것처럼 하고 있으려니, 일일 안전보험 들려고 한다기에 마지못해 나이를 가르쳐주었다. 

흐미, 적은 나이는 아니구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느물한 말투에 마흔 다섯 심통을 부렸다. 못 가겄다고. 그제야 저쪽에서 안달이 났는지 통사정한다. 됐구. 당신은 어찌 되요? 하고 물으니 마흔 다섯에 산행대장이란다. 어쭈, 꼴에 산행대장. 글고 갑장. 그것이 그놈하고 첫 대면이다.

애계계, 작기는 뭐 저리 작나 싶었다. 비교하긴 그렇지만 콩아저씨만 했다. 그런데도 60리터짜리 배낭을 등에 메고 가는데 말똥벌레 소똥 이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콩아저씨나 말똥벌레라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빠르긴 날다람쥐요, 헷갈리는 산길 안내도 척척 가르쳐주는 ‘내비’였다. 저만치 앞서갔다가 다시 처진 사람 없나 확인하는 왕성함과 다시 선두로 가서 길을 잡는 저 다감함. 적당한 지점에 도착해서는 십분, 휴식! 사람 마음까지 읽는 기술을 갖췄다. 조금씩 믿음이 갔다. 그리곤 곁눈질로 슬쩍슬쩍 쳐다봤다. 읏따, 알통 튀어나온 것 봐라. 장딴지와 종아리는 성이 잔뜩 나서 금방이라도 옷을 찢고 나올 것 같고, 쇄골 밑 가슴은 구리를 갈아 발라 놓은 것 같은 색깔에, 실팍한 것이 탄성지수 제대로인 생고무 같고.

말은 또 을매나 찰지고 넉살좋은지. 옆에 있는 여자들 말 그대로 껍벅 넘어간다. 내시가 어떻고 노조가 어떻고 설레발을 까는데 내시와 노조가 뭔 상관인가 싶어 더 귀를 가까이 대다가 에쿠, 암반짝 만한 궁딩이가 주책없이 과하게 들썩거려 몸이 그놈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이걸 놓칠 리 없는 그놈이 에, 이 아줌씨 신입이요. 나이 마흔 다섯. 잘 봐주쇼 이, 하는데 성난 황소 코 맨코로 벌릉벌릉 평수를 넓히며 자동 댐퍼로 심호흡을 조절하고, 쥐고 있던 스틱으로 한 대 쥐어 팼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더라. 니가 내 나이 먹는데 도와준 것 있느냐, 야! 이, 이, 콩놈아.

에, 그러니까 내시들은 노조결성이 불가능하다. 왜냐. 노조 결성에 반드시 있어야 할 정관과 그 신호탄을 쏘아 올릴 발기와 탄압이 들어오면 각 요로에 사정을 해야 하고, 그러다 난관에 봉착하면 뚫어야 하는데, 너희들은 그럴만한 것들이 없지 않느냐. 이 말에 졸참나무가 웃다가 도토리 하날 똑 떨어트리는데 하필 그것이 내 가슴 흉골 두 젖무덤 사이로 쏙 들어가더라고. 얼릉 꺼내쇼. 그것 때문에 신경 쓰여서 잘못하면 다치닝께. 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셔보쇼. 가슴과 브라쟈가 이격이 만들어지면 그때다 싶어 콩콩 뛰면 밑으로 흐르닝께. 이, 인간이. 그렇게 하면 배가 들어가지 어케 가슴이 들어가냐구. 

아니나 다를까 도토리가 브라지어의 고어에 걸려 영 떨어지지 않으니 그것 신경 쓴다고 그만 너덜겅에서 발목을 접질리고 말았다. 아, 이런 낭패가 있나. 하산 길이어도 아직 갈 길이 먼데.   콩놈이 업으라고 등을 댄다. 아, 근데 업히라고 돌아선 저놈의 등짝이 뭐 저래 넓어. 대감댁 대청마루보다 넓어 보여. 이것 참 난감하더라고. 냉큼 올라탔다간 가벼운 여자로 오해받을 것 같고 안 그러자니 나 때문에 산행 망쳤다구 할 것 같구. 에라 모르겄다. 이놈을 다시 만날 것도 아니고, 올라타자. 허, 이놈 봐라 귀밑이 시뻘개져갖구 걷는 것도 어기적거려. 나 같은 미녀를 처음 겪어보니 넙다리 위가 근질거리나? 하는 의심이 확 들데. 이러다간 산에서 무슨 봉변을 겪게 될 줄 몰라 내려달라 했지.

아따, 아까 그것 쫌 빼내라 안 혔소. 내 등짝이 좀망치로 맞는 줄 알았소. 근디 나보단 더 아팠을낀데 신음소리 안내고 잘도 참소 잉. 오메 오메 오메. 도토리를 안 빼고 있었네. 그 도토리 때문에 그 놈 콩놈이 아팠다니. 괜시리 미안해 갖고 풀섶에 들어가 얼른 빼내고 나왔드만, 보소, 그렇게 마음 구석에 뭐든 콕 박혀 있으믄 아핀 벱이요. 얼른 빼내야 상처도 빨리 아무는 법이요. 이 말에 못이기는 척 업혀 내려왔다. 그놈의 거친 숨결이 왜 그리 듣기 좋던지. 꼭 구름 위에 떠다니는 것 같더라고.

산악회에 열심히 참가했다. 그런데 그놈이 안보였다.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주저하고 갈팡질팡. 언제부터 그놈이 내 마음 속에 들어찼는지. 그 콩만한 놈이. 결국 산악회장한테 전활 걸었다.

아, 훈이요.
훈이? 이름이 훈인가?
예. 김훈. 

묻지도 않았는데 이름을 알려주네.

김훈 대장 떠났어요. 
떠났어? 죽었다는 거야 뭐야. 어디로? 
김훈, 그 양반 그림 그리거든요. 미술가죠. 어디 섬에 들어가 그림 그리고 오겠다고 하고선 갔죠.
아, 이젠 들어올 때 됐구로.

이건 무슨 말이지. 그놈이 되도 않게 그림을 그린다구.

실장님, 예약된 환자는 아닌데 실장님께 꼭 초음파 검사를 받고 싶다는 분이 계신데, 어째 모셔볼까요? 
안내를 맡은 정 간호사가 뭘 알고 있다는 듯 베시시 웃는다. 
눈데? 
이름이 훈이라고 하는데요, 김훈.
김훈?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콩아저씨 닮았더만요. 앙증맞고 귀여워요. 그리고 얘기도 너무 재밌게 해요. 

이기 여기까지 와서 딴 여자에게 꼬리치나 싶어 화증이 솟았다.

예약된 손님 아니면 안 받는 거 몰라요. 일단 모셔와요.

그리곤 누가 볼까봐 몸을 돌려 심호흡을 크게 하였다.

그놈이 왔어. 그놈이. 근데 왜 왔을꼬? 정말 아픈가? 아니지 나보러 왔겠지. 주머니 속 거울을 빼들고 얼굴 한 번 쳐다보고, 입술을 혀 밑에 침 발라 윤기 나게 만들고, 하얀 가운에 행여 머리카락 붙어 있을까 싶어 툭툭 털어보고, 가슴이 삐뚤어지지 않았나 두 손으로 받쳐 좌우로 흔들어보고. 준비 끝.

김훈 고객님 들어가세요.

떨렸다. 나이 마흔 다섯에도 떨 가슴이 있었던가, 이렇게 떨리긴 처음이다.
 
자, 머리를 여기로 하시고 반듯하게 누워보세요. 복부 초음파부터 할 거에요.

젤을 배 군데군데 바르면서 슬쩍슬쩍 그놈의 살갗을 만져보았다. 흠칫 놀라다가도 느낌이 좋았다. 이 남자 뭐지 하는 생각에 심장도 콩닥콩닥 뛰었다. 땀이 났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에 쥔 프로브가 미끄러운 젤 밖으로 벗어났다. 그놈은 태연하게 내 눈을 계속 쳐다본다. 더 땀이 나고 마음은 쿵쾅쿵쾅 뛴다. 모니터는 그놈의 배 속을 구석구석 보여준다.

프로브가 움직일 때마다 흑백의 그림이 출렁인다. 그것에 따라 내 가슴도 끓는다. 프로브는 주책없이 자꾸 비켜간다. 옆구리와 명치 부를 거쳐 아슬아슬하게 수건 한 장으로 걸쳐 있는 골반까지 왔다. 눈을 옳게 뜰 수가 없다. 혼미하다. 이놈을 마음에 두고 있었나. 왜 이리 갈피를 못 잡지. 프로브가 이놈의 아랫배를 스캔한 회색의 음영을 모니터로 보여주긴 하는데 현기증이 일어 볼 수가 없다. 다만 프로브를 쥔 손이 따로 논다.

앗! 그런데 이건 뭐지? 프로브가 내려가다 걸리고 왼쪽으로 틀어도 걸리고 오른쪽 방향으로 가도 걸리고 대체 이게 뭐야. 이놈은 뭐가 이리 걸리는 게 많아. 아, 아 그러나 그것은 그놈의 그것이었으니.

마흔 다섯 아줌씨!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내 순결을 은근슬쩍 꿀꺽하다니. 흑! 책임지세요.

어라, 이놈 봐라. 지가 뭔 순결이 있다고 책임지라 마라냐. 글잖아도 책임지려했거든.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내 나이 마흔 다섯이라고 쉽게 보면 안 되겠다 싶어 진단검사 결과로 생청붙였다. 

아, 이 부분은 용종이랑 돌 같아요. 일단은 크기들이 (너만큼) 작아서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닌데, 이게 염증 단계로 가면 담낭 벽이 두꺼워질 수도 있어요. 지금도 살짝 두꺼워져 있고요. 혹시나 소화가 안 된다든지 배가 아프면 염증이 생겼다는 증거에요. 정밀검사를 다시 해야 하니 예약해놓을 게요. 내일 다시 오세요. 

정 간호사님 이 분 한 달 예약해 놓으세요.

그래 이놈아 책임져주마. 우리 한 달 내내 실컷 보자. 넌 내 꺼다.

 

백승휘

◇ 소설가 백승휘

▷고용노동부 주관 제39회 근로자문학제 단편소설 <땅개> 금상 수상.

▷방송통신대학교 주관 제43회, 44회 방송대 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그녀와 미숙이>, <명암 방죽> 입선.

▷사단법인 인본사회연구소 <인본세상> 편집위원(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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