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위험은 언제 어느 때 갑자기 나와 나의 가족들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불의의 위험에 대비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보험제도는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했을 때 경제적 안정을 지지하는 기능으로서 가장 효용성이 큽니다.
보험은 우연히 발생한 위험을 보장하는 제도이므로, 보험가입자가 고의적으로 야기한 위험은 보상하지 않는 것이 기본 원리입니다. 종종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는 보험범죄도 고의사고가 대부분이고, '자살'도 보험가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므로 고의적인 사고로 간주하여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자살과 관련한 보험 분쟁은 대개 두 가지 형태로 발생합니다. 우선 자살이냐, 아니냐의 분쟁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자살이 있는가 하면, 자살인지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자살은 보험회사가 보상하지 않는 위험이므로 그 이익은 보험사에 있습니다. 분쟁에서는 통상 이익을 보는 측에서 사실을 증명할 의무가 있으므로, 보험가입자의 자살여부가 문제되었을 경우 보험사측에서 보험가입자가 자살로 사망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합니다.
법원은 보험가입자의 유서나 객관적인 물증을 포함하여, 일반인의 상식에서 망인이 자살을 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으로 집에서 유서를 남기고 치사량의 독극물을 먹은 정황이 있다면 범죄혐의가 없는 한 비교적 손쉽게 자살로 인정될 수 있겠으나, 겉으로는 자살로 보이는 정황이 있더라도 사고사나 병사 등 다른 사망원인도 의심되는 경우에는 보험사가 일방적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가족에게 유서를 남기고 가출하였다가 1년 후 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보험가입자에 대해, 반드시 자살을 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하여 보험사가 사망보험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판결한 하급심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황이 있다고 하여 자살을 속단해서는 안 되며 명백히 확인되지 않는 한 쉽게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여서도 안 됩니다.
두 번째 분쟁 요지는, 자살이 확인되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람의 생명, 신체에 발생하는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에는 크게 생명보험과 상해보험이 있는데, 자살에 대해서도 생명보험과 상해보험의 약관 규정이 다릅니다. 통상 생명보험은 00생명보험(주)에서 판매하는 보험상품이고, 상해보험은 00손해보험(주) 또는 00화재해상보험(주)에서 판매하는 보험상품을 말합니다.
생명보험에서는 자살이라고 해도 보험가입일로부터 2년이 지나서 발생한 자살에 대해서는 사망보험금을 지급합니다. 문제는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받느냐,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받느냐 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모르면 크게 손해를 보게 됩니다.
보통 생명보험에 가입할 때 보장내용을 선택하게 되는데, 재해사망보험금이 일반사망보험금에 비해 보장금액이 훨씬 높습니다. 그러므로 재해사망보장에 가입되어 있을 경우 계약일로부터 2년이 지난 자살이라고 하더라도 재해사망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개 생명보험사에서는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하고 끝냅니다. 재해사망보장이 있으면 반드시 다시 알아봐야 합니다.
그런데 상해보험에서는 2년의 경과 규정이 없으므로, 언제 발생하든 자살은 고의적인 사고로 간주하여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습니다. 단, 자살이라고 하더라도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보험약관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생명보험의 재해사망보장이든, 상해보험의 상해사망보장이든 자살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자살할 당시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신상태가 좋지 않았어야 합니다. 자살 당시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흥분상태에 있었거나, 술에 만취하여 의식이 오락가락 하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는데, 그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도 자유로운 의사 여부를 판단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정도란 어떤 경우를 의미하는지 대법원의 대표적인 판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보험가입자가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베란다에 뛰어내려 사망한 사안인데, 대법원은 ‘보험가입자가 술에 취한 나머지 판단능력이 극히 저하된 상태에서 신병을 비관하는 넋두리를 하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린다는 등의 객기를 부리다가 마침내 음주로 인한 병적인 명정으로 인하여 심신을 상실한 나머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고 하여 보험회사가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렇게 명확한 사례가 있기는 하나, 자살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워낙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법원이 일률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마디로 사안에 따라 다르고(case by case), 비슷한 사안에 대해서도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분쟁과정에서 얼마나 입증을 철저하게 하고 주장을 조리 있게 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소비자가 보험사에 비해 약자이므로 법원도 소비자의 입장을 더 옹호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고, 그 반대로 소송 경험이 많고 정보 수집력이 좋은 보험사가 유리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법원이 어느 한쪽에 편향되어 판단을 하는 경우는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법원은 철저하게 증거와 사실관계를 가지고 판단하므로 법원이 알아서 판단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사고 초기에 경황이 없을 때 보험사가 요구하는 서류를 작성해주고 나서 나중에 사실과 다르다거나 진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소송에서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가족의 자살은 직접 겪기 전에는 그 충격을 가늠할 수 없을 겁니다. 슬픔의 감정은 시간이 가면 흐려지지만 죽음은 늘 현실적인 법률관계를 남깁니다. 상식에만 의존하여 섣불리 판단해서도 안 되고 흘러 다니는 정보에 귀 기울여서도 안 됩니다. 어디서 어떤 식으로 문제가 생길지 모르므로 반드시 처음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법무법인 서면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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