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하나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29번의 작은 사고들이 발생하고, 그 이전에 300번의 사소한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법칙입니다. 미국의 보험사 직원이었던 허버트 하인리히가 1930년대 초반, 당시 급격하게 증가했던 산업재해 사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산업재해는 근로자 개인이 처한 불행으로 치부되지만, 사소한 산업재해들을 일으키는 환경이 개선되지 못할 때 크고 작은 사고가 누적되고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업재해를 방지하고, 재해자의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는 단순히 근로자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가 개입하여 관리하여야 하는 대표적인 사회 안전장치입니다.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기 전인 1963년에 처음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약칭, 산재보험법)이 제정된 후 현재까지 40여 차례 개정되었습니다. 사회를 흔드는 큰 사건이 발생하거나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점차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었고, 현재의 산업재해보상 제도는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완성된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산업재해보험도 재정적 한계가 있는 공적보험이고, 어느 분야든 그렇듯이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법적 분쟁이 비교적 많이 발생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쟁점으로 분쟁이 발생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산재보험에서 보상하는 ‘업무상 재해’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하는가 입니다,
산재보험법에는 ”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 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업무상의 사유라는 개념이 항상 문제가 됩니다. ‘업무’는 쉽게 말해 일을 하는 것이므로, 일을 하다가 다치고 병이 나거나 사망을 하면 산업재해로 인정합니다. 그러면 출퇴근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다쳤을 경우는 어떨까요?
'업무상의 사유' 범위 논란 ... 확대 추세
과거 산업재해보험에서는 회사가 제공하는 차량으로 출퇴근하는 경우 외에 개인적으로 출퇴근하다가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는 산재보험처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므로 엄밀히 말해 업무상의 재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출퇴근은 일을 하기 위한 필연적인 행위인데 보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논리로 자주 분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공무원들의 공무상 사고를 보상하는 공무원연금법에서는 출퇴근중 재해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었던 점과도 형평에 맞지 않았습니다.
오랜 논란 끝에, 2016. 9월 헌법재판소에서 출퇴근중 재해를 보상하지 않는 산재보험법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후 산재보험법의 개정이 논의되다가 2017년 말에 출퇴근중의 사고도 업무상 재해로 포함하는 산재보험법이 개정되었고 2018. 1. 1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요구와 거듭되는 법 개정으로 인해 업무상 재해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법에는 구체적인 사정을 일일이 명시할 수 없기 때문에 사안이 발생하면 항상 법의 해석과 적용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퇴근 중에 잠시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직장 상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하러 가거나, 잠시 장을 보러 가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 등 다양한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어떤 사고든 업무의 연장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대원칙은 있으나 일률적인 기준은 없으며 구체적인 사안별로 판단이 달라 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은 법리만큼이나 사실관계를 중요시 하므로, 사실 확인이 먼저고 법적 판단은 나중입니다.
산업재해보상에 대해 일반인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산업재해보상은 회사나 근로자가 어떤 잘못을 하였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회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근로자의 부주의로 산업재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회사가 업무 지시를 잘못하거나 시설 관리를 소홀히 해서 산업재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근로자가 산업재해보상을 받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고의적으로 사고를 낸 것이 아니라면, 근로자의 100% 과실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도 산업재해보상을 받을 수 있고, 근로자의 잘못에 해당하는 만큼 보상금을 깍는 일도 없습니다. 산업재해보험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근로자라면 누구나 어떤 재해든지 차별 없이 보상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고뿐 아니라 근로자의 질병도 산업재해 인정
최근에는 우연한 사고 뿐 아니라, 근로자 개인의 질병에 대해서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돌연사,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 환경질환, 우울증 등과 같이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질병들에 대해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받기 쉽지 않았으나, 법원의 판례가 장기간 쌓이면서 근로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 지면 적극적으로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젊은 근로자의 돌연사가 운수소관이 아니라 과로사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더 커진 것입니다.
산업재해가 인정되면 근로자의 모든 금전적 보상이 끝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산업재해보상과 관련해서 가장 유의해야 할 포인트입니다. 산업재해는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보험이고 재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법령에 정해진 보상만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보상기준이나 범위가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산재보험보상만으로는 근로자가 입은 손해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흉터의 수술과 같이 애초에 산재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치료도 있으며, 정신적 손해도 산재보험으로는 보상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근로자가 자신의 잘못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동료 근로자나 회사의 잘못으로 산업재해를 당하였을 때에, 재해를 당한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잘못을 야기한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손해배상에는 근로자가 재해를 당함으로써 입은 금전적 손해는 물론 정신적 손해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본인이 지불한 치료비, 일을 못하게 되거나 후유장해가 발생하였을 경우에 입게 될 수입상실 손해, 간병인이 필요한 경우 간병비 등은 금전적 손해가 되고, 본인과 가족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는 정신적 손해 (위자료)가 됩니다.
산재보상 별도로 손해배상 청구 가능
산업재해보상을 받게 된다고 해서 이와 같은 모든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산업재해보상처리가 완료된 후에도 보상받지 못한 손해에 대해서는 별도로 재해 발생의 책임이 있는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소속된 회사에 책임이 있으면 당연히 추가로 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사고 위험도가 높은 건설회사 같은 기업에서는 이러한 책임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서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상액을 초과하는 손해를 보장하는 ‘근로자재해보장책임보험’에 가입하기도 합니다.
사후 보상보다 당연히 사전 예방이 우선입니다. 큰 재해가 발생하면 늘 안전 불감증이니 인재(人災)를 운운하지만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일터 현장에는 늘 사람이 있으므로 어느 순간 피할 수 없는 재해가 발생합니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산업재해도 새로운 양상으로 변모해 갈 것입니다. 산업재해, 그 이후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근로자뿐 아니라 사업주에게도 중요합니다. 근로자는 법적 권익을 빈틈없이 찾아주는 전문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고, 사업주는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 공적제도와 보험시스템을 잘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법무법인 '서면'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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