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50대 중반의 어떤 장애인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고아로 자라 평생을 외롭게 살았는데, 유서에는 자신의 전 재산을 아프리카의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며 유니세프에 기증을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유서에 적힌 재산은 전세보증금과 은행 두 곳의 예금을 포함하여 총 6,000만 원이 넘었습니다.
유니세프 측으로부터 법률절차를 대신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유서와 재산관련 서류를 모두 입수하였습니다. 그런데 유서를 보니, 형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유언은 말로도 할 수 있고, 글로도 남길 수 있고, 공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유언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민법에서 정한 엄격한 형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유서가 법적인 효력을 가지려면, 유언의 내용과 함께 작성 연월일, 주소, 성명을 반드시 자필로 기재하고 날인을 하여야 하는데, 고인의 유서에는 이름, 날짜가 적혀 있고 날인은 되어 있었으나, 년도와 주소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년도 미기재는 양해할 수 있다고 해도 주소 미기재는 결정적인 흠결입니다. 법원도 이러한 흠결에 대해서는 대체로 엄격한 태도를 보입니다.
주소 한 줄로 인해 자칫 고인의 고귀한 뜻이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금전 지급절차에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금융기관들이 법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유서를 그대로 인정해 줄 것을 기대할 수도 없지만 소송을 한다고 하더라도 승소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습니다. 일단 법원의 유서 검인절차를 거쳐 금융기관에 예금을 청구를 하였는데, 당연히 유서의 흠결을 문제 삼았고 한 금융기관에서는 소송을 통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으나, 구청 담당자의 설득 끝에 망인이 거주했던 주택의 임대인이 보증금 900만 원을 유니세프로 보내주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고, 금융기관들도 수증인이 개인이 아닌 유니세프라는 사실을 고려하여 내부 회의 끝에 전액 지급 결정을 하였습니다. 만약 수증인이 개인이었다면 소송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고, 그 결과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생전 유언장 작성이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점점 유언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위의 사례와 같이 개인이 사회기관을 위해 유언장을 남기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사망이후 가족들의 상속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가족들을 수증인으로 하는 유언장 작성이 이루어집니다.
재산을 분배하는 유언을 반드시 유언장이라는 문서로만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 민법에서 인정하는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의 방식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5가지입니다. 유언은 재산을 남긴 분이 사망한 이후에 효력이 발생하므로 생전의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각 유언의 방식마다 엄격한 요건을 갖추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요건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언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5가지 중 어느 방식을 취하든 요건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 문제가 없으나, 그래도 법적 분쟁을 최소화하는 방식은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입니다. 다른 방식과 마찬가지로 법에 엄격히 명시된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별도의 공증비용이 들기는 하나, 유언자가 사망한 후에 별다른 추가 절차 없이 곧바로 유언 내용을 집행을 할 수 있는 문서이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유언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언장 작성이 일반적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족들 간에 상속 분쟁이 많은 편입니다. 고인의 뜻을 잘 헤아려 가족들이 원만히 합의를 하면 좋겠지만, 상속분쟁은 돈 문제를 넘어서 대개 가족관계의 단절로 까지 이어집니다. 고인이 생전에 자신의 뜻을 명확히 남긴다면, 손가락질 받는 가족 간의 극한 분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므로 다소 번거롭더라도 생전에 유언장을 작성해 두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합니다.
<법무법인 서면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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