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 아카데미아의 플라톤상. 출처: 천주교 서울대교수 선교문화봉사국 주호식 신부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 이 말은 플라톤이 구축한 철학 체계가 워낙 광범위하고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서구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경이로운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서구의 정신을 형성했습니다. 서구 문명의 정치, 도덕, 철학과 과학적 전통은 본질적으로 플라톤의 사상이 이룩한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플라톤, "어깨가 넓은 사람"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께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습니다. 플라톤의 조상은 아테네 초기 왕족이었다고 합니다. 학생시절 어깨가 넓다는 의미로 플라톤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 젊었을 때 소크라테스에게 수학하면서 철학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기원전 399년 민주주의자에 의해 소크라테스가 처형될 때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정치가 꿈을 버리고 정의를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플라톤은 아테네를 떠나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피타고라스학파를 접하고 실천적 정신과 실생활에의 흥미를 얻어 독단적 사상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387년 아테네에 돌아와 철학연구에 몰두합니다. ‘아카데미아'(혹은 아카데메이아)’란 명칭은 이 대학의 택지가 전설적인 인물인 아카데마스의 숲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한때 이상국가를 실현해 보고자 친구인 디온의 권고로 시칠리아의 참주(僭主) 디오니시우스(Dionysius) 2세의 초청에 응했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참주의 과두정치를 비난함으로써 그의 분노를 사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다.”며 유명한 철인 정치론을 주장했습니다. 80세 때 문하생의 결혼식에 참석한 뒤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플라톤 이데아...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形相)
플라톤은 이 세계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상적인 사물이 움직이는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궁리 끝에 사물의 배후에 존재하는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사유 및 이데아의 세계였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이데아(Idea)’는 플라톤 철학의 핵심개념인데 육안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形相)을 의미합니다.
그리스어 idea의 동사는 idein이며 그 어원은 via입니다. 라틴어 videre도 여기서 유래하는 것으로 ‘함께 본다’ ‘안다’는 뜻입니다. 명사 idea 또는 eidos는 ‘보여지는 것’ ‘알려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정신적 개념적임과 동시에 구상적인 것으로서 통상 물체의 형태나 사람의 모습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개념상의 기하학적 도형을 이데아라고 불렀으며, 소크라테스는 윤리적 미적 가치 자체를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이를 이어받은 플라톤은 진실재(眞實在)로서의 이데아와 현상으로서의 감성계를 구별하였으며, 특히 개념만을 의미할 때는 이데아 대신에 에이도스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러한 의미의 에이도스의 존재를 인정하였으나, 그것은 개개의 감각물에 내재하며 그것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고 합니다. 중세 들어 이데아는 신의 사유 내용으로서 창조자의 로고스(logos)와 동일시되었으며, 근세에 이르러는 인간의 의식내용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특히 철학의 중심문제로 삼았으며, 플라톤의 이데아는 정의 용감 절제 등 윤리적 행위, 동일과 유사 등의 개념과 관련하여 언급되지만 미(美)의 이데아와 특히 선(善)의 이데아를 최고의 것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선의 이데아는 모든 이데아의 상위에 있는 무가설(無假說)의 원리로서 모든 학문적 인식의 근거가 되며,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가치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플라톤은 현실 세계는 이데아를 본떠 만들어지는데, 그것은 진실한 존재가 아니라 이데아야말로 진실한 존재, 즉 실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수학은 이데아 세계를 이해하는 사유의 모형
플라톤 이데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의 지식이 요구됩니다. 왜냐하면 사유의 모형이 수학이며, 수학은 개별적인 것과 연결되지 않고도 사유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수학은 플라톤을 형이상학 영역으로 이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제기되는데, 그것은 이데아의 세계가 실재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상식과는 반대로 플라톤은 가장 실재적인 것이 바로 이데아의 세계라고 주장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은 과학적 탐구 대상인 물리적 실재와 상반된 개념인데, 플라톤이 과학적 진리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일리 있는 반문입니다. 이데아 철학은 실재를 탐구하는 오늘날의 자연과학과 원초적으로 상충됩니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가 실재이고, 현실 세계는 이데아의 모사(模寫)라고 보았지요. 이데아의 세계는 완전한 반면, 모사품으로 가득 찬 현실 세계는 불완전하다고요. ‘참된 실재’인 이데아의 세계에서만 진정하고 엄밀한 인식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현실 세계를 대상으로 영원한 진리는 찾는다는 것은 애초 무리일 것 같아 보입니다. 그의 이데아 철학은 물질세계의 보편법칙을 추구하는 과학과의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플라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연학을 ‘단순한 이야깃거리’이거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철학이 보편성을 요구하는 이상, 자신의 철학에 우주의 본질에 관한 이론을 포함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정치학적, 신학적 견해와 조화를 이루어 그것에 종속될 수 있는 자연철학으로서 우주론을 전개한 것입니다.
플루타크가 말한 바에 따르면, 플라톤은 ‘자연계의 법칙을 신성한 여러 원리의 권위에 종속’시킴으로써 천문학 연구에서 무신론의 색채를 제거했습니다. 그는 천체는 신성하고도 고귀한 존재이며 그 운동은 완전히 한결같고 원형이라고 주장한 피타고라스학파의 견해를 발전시켰습니다.
플라톤은 불완전함으로 가득 차 있는 세계의 배후에는 목적과 질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물의 배후에는 기계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우주질서의 원리와 그 목적도 틀림없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 배후는 형이상학적인 측면에서는 이데아의 세계라면, 자연학적인 측면에서는 수학 세계였습니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물질세계가 이상화된 세계를 ‘플라톤의 수학 세계’라고 합니다. 그는 추상적이고 이상화된 관념인 수학을 통해 현실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플라톤의 자연학이고 우주론입니다.
플라톤은 이 부분에서 피타고라스학파의 수학적 세계관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플라톤의 우주론은 대화편 『티마이오스』에 수록돼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주의 탄생과 천체의 구조를 설명하는 인물인 ‘티마이오스’는 피타고라스의 제자 중 한 사람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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