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플라톤 이데아와 수학 세계㊤)에서 플라톤은 수학을 이데아 세계를 이해하는 사유의 모형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플라톤 이데아를 이해하는 데 수학은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플라톤은 또 수학을 단지 물질과 다른 이상적인 추상 개념이란 이유로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수학을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논리적인 사유(철학)의 방법론으로써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카데미아 정문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문구를 적어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아카데미아에서 자신이 직접 기하학과 수론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플라톤은 관념적인 수학은 천상 세계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상 세계의 천체는 고귀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수학적(기하학적)으로 완전한 모양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게 플라톤의 생각이었지요.
플라톤은 완전한 입체로 다섯 개의 다면체를 가정했습니다. 이 중 정4면체, 정6면체, 정8면체, 정20면체는 지상계의 4원소를 상징하고, 나머지 하나, 12면체는 천상계를 상징합니다. 원래 이들 입체의 발견자는 피타고라스학파이지만 플라톤의 명성이 너무나 높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플라톤의 다면체’라 불립니다.
하늘은 완전하므로 모든 천체는 투명한 천구와 함께 완전한 원운동을 한다고 여겼습니다. 완전입체 이론과 천체 운동론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천상은 고귀하고 완전한 수학의 세계
플라톤이 수학을 천체 운행과 사유의 방법론에 국한시킨 것은 아닙니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학지식을 활용한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 플라톤의 수학실력이 탁월했음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어느 해 아테네에 괴질이 유행했습니다. 시민들이 평소 섬기던 아폴로 신에게 이 병의 퇴치를 기원했습니다. “제단의 부피를 두 배로 늘리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신탁을 받았습니다. 석공을 시켜서 육면체의 각 변의 길이를 각각 두 배로 만들게 했습니다. 질병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재차 신탁을 기다리자, “왜 제단의 부피를 여덟 배로 만들었느냐.”는 호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가로, 세로, 높이를 각각 2배로 만들었으니 전체 부피가 8배(2×2×2)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신탁의 '제단의 부피 두 배'는 '가로×세로×높이=2'를 말합니다. 늘리는 제단의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같은 χ라고 한다면 χ³=2가 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세제곱을 해서 2가 되는 수를 찾아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2의 세제곱근(∛2)을 작도하는 문제로 귀결되었습니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마침내 자와 컴퍼스보다 편리한 기계를 만들어 난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수학이란 기계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사유에 의해, 즉 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해야만 의의가 있다.”고 주장하며 끝내 자신의 해결 방법에 만족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플라톤의 신념과 달리 이 문제는 이후 2000년이 지나서 자와 컴퍼스만으로는 작도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플라톤의 ‘고상한 수학관’은 당시 그리스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기계와적 기술 조작을 비롯한 육체 노동은 노예의 몫이었기 때문이죠. 철학자를 비롯한 귀족들은 속성상 사유하는 인간이라고 믿었습니다.
플라톤의 기하학적 우주관은 거의 2000년 후인 케플러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케플러의 ‘우주의 조화’와 다면체 우주 모형은 바로 플라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또 플라톤 사상은 중세 초기를 지나면서 기독교 사상에 강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우세하게 된 것은 13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명제란 실존하는 대상을 이상화했을 때 성립하는 것
플라톤은 한때 수학 진실이 과연 물리 실재를 반영하느냐는 질문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수학 명제(proposition, 사실임이 분명한 수학적 서술)’는 실제의 물리 대상(모래밭 위에 그려진 사각형, 삼각형, 원, 구, 육면체 등)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명제란 ‘실존하는 대상을 이상화시켰을 때 성립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상화된 객체는 물리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가 말한 이런 세계는 오늘날 ‘플라톤의 수학세계(Platonic world of mathematical forms)’로 불립니다. 플라톤 이데아의 수학 버전으로 '수학 이상향'인 것입니다. 정사각형, 원, 삼각형 등을 파피루스나 맨땅 위에 그려 놓았다면(또는 진흙으로 정육면체나 구를 빚었다면), 그로부터 이상화된 기하학 도형을 떠올릴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이상적인 도형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수학 객체들은 근사적인 서술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완벽한 사각형과 완벽한 원, 완벽한 삼각형 등은 이 세계에 속해 있지 않고, 이상 수학세계에 속해 있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었습니다.
플라톤의 ‘수학 이상향’은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이면서도 강력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이상 수학세계는 과연 실존하는 것일까요? 철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상상력이 낳은 허구’로 간주하고 있지만, 플라톤의 아이디어 자체는 매우 값진 유산임에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플라톤식 사고방식은 정확한 수학 객체와 일상생활 속의 ‘대략적인’ 객체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으며, 현대과학의 갈 길을 안내하는 청사진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과학자들은 우주를 서술하는 이상적인 모형을 가정한 후 관측 및 실험결과와 비교하여 수정을 가하는 식으로 연구를 진행해갈 것이 분명합니다. 만일 그들이 상정한 모형에 자체모순이 없고 실험결과를 잘 설명한다면 그 모형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플라톤의 수학 이상향은 과연 실존하는가?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형이라는 것이 수학적으로 이상화되어 있는 추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일단 검증이 가능하려면, 모형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정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형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졌을 때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존하는 임의의 대상에 대하여 하나의 모형이 상정되면, 그 대상은 플라톤의 세계에 수학 형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물론, 개개인의 마음속에 모형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학 구조에 ‘실존’이라는 관념을 불어넣으려면 무언가 중요한 요소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원래 신뢰도가 떨어지고 부정확하며, 스스로의 판단과 따로 노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이론이 갖춰야 할 정확성과 신뢰도, 그리고 타당성은 (믿을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한참 넘어선 곳에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수학논리처럼 완벽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생각대로 인간의 마음을 초월한 어딘가에 수학적으로 완벽한 객체들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수학 이상향이 존재하는가.’ 라고 물을 때, 여기서 말하는 ‘존재’란 수학적 진리의 객관성을 의미합니다. 플라톤식 존재란 개인의 의견이나 특정 문화와 전혀 무관한 객관적 존재입니다. 이러한 ‘존재’는 수학뿐만 아니라 도덕이나 미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수학 주장이 플라톤의 세계에 속하려면 객관적 사실임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수학 플라톤주의는 수학적 객관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어떤 수학 주장이 '플라톤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수학적 객관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수학 개념도 이와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숫자 7’이나 ‘정수의 곱셈법칙’, 또는 ‘무한집합’ 등은 플라톤의 세계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객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플라톤 수학세계의 수학 형태는 책상이나 의자와 같은 일상적인 물체와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으며, 특정 시간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인 수학개념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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