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우주관 오디세이'
다시 읽는 '우주관 오디세이'
조송현
승인
2016.11.05 00:00 | 최종 수정 2020.04.1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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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적 관점에서 우주관의 역사를 다룬 '우주관 오디세이' 표지. 2013년 8월 부산과학기술협의회 발행.
프롤로그 : 물리학이라는 배를 타고 인간의 우주관을 여행하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후 트로이로부터 고향 이타카 섬으로 귀환하는 과정을 그린 대서사시입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10년에 걸친 길고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오늘날 긴 방랑과 모험적 여행을 일컫는 단어 오디세이(odyssey)는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책 제목 '우주관 오디세이'는 우리 인간의 우주관을 살펴보는 여행이라는 의미에서 붙였습니다.
출발은 고대 그리스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수학적 기하학적 우주관입니다. 여기서부터 과학혁명을 거쳐 현대물리학의 양대 기둥인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우주관과 닐스 보어 등의 양자론적 우주관에 이릅니다. 2500여 년에 걸친 길고 힘든 여정, 오디세이인 셈입니다. '우주관'은 과학의 입장에서 본 우주에 관한 체계적인 견해를 말합니다. 사람들이 논리적인 근거를 갖고 긴 세월 동안 '우주는 무엇이다'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그 시대의 우주관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이를테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고대와 중세 이후의 대표적인 우주관입니다.
상대성이론 창안자인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보어가 1930년 솔베이 회의가 열린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산책하고 있다.
이 우주관은 세계관이라는 말과 비교됩니다. 세계관은 인간의 문제나 인간 존재에 관한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견해를 말합니다. 우주관은 우주에 관한 과학적 견해이고, 세계관은 우주 속의 인간에 관한 철학적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우주관과 세계관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과학은 우주와 인간을 인식하는 수단입니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면서 우주를 새롭게 인식했듯이 인류는 과학이라는 '망원경'으로 우주를 새롭게 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이런 관점에서 아주 강력한 성능의 새로운 망원경인 셈입니다. 상대성이론과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양자론은 미시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 '현미경'과 같은 이론적 도구로써 상대성이론과는 전혀 다른 우주관을 열어주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심오하고 어쩌면 혼란스러울 정도입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이 나옴으로써 그 전 시대에 비해 인류의 인식의 지평이 엄청나게 확대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필자는 대학시절 패기만만한 한 영문학도 친구로부터 "인간이 사라지면 우주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는 이 질문의 대답을 찾기 위한 필자의 지적 여행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여행의 종착역 쯤에서 알게 되겠지만, 양자론에서 밝혀진 공간의 새로운 특성과 관계론적인 우주의 구조에 의하면 그 질문에 대한 저의 해답은 이렇습니다.
'인간이 사라진다고 우주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우주 저편에서도 즉각 안다.'
(※ 이 연재물은 필자의 저서 '우주관 오디세이'를 읽어보지 못한 독자를 위해 내용을 쉽게 풀어서 재구성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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