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군주의 억압을 피해 크로톤에 정착한 피타고라스는 ‘사모스의 현인’ 밀론의 후원 아래에서 피타고라스학회를 결성하게 됩니다. 후에 피타고라스학파로 통칭되는 이 모임은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색채를 띠었다고 전해집니다.
피타고라스의 제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피타고라스 문하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말을 참을 능력’이 요구되었다지요. 강의를 통해 들은 것을 발설하지 않고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조건으로 회원이 되었는데, 피타고라스가 가장 아꼈던 제자는 다름 아닌 밀론의 딸인 아름다운 처녀 테아노(Theano)였습니다. 그들은 나이가 많이 차이 났지만 서로 사랑했고, 결국 결혼도 했답니다.
학회는 피타고라스를 포함해 600명이며, 회원은 571명의 남성과 28명의 여성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모임이었으며, 모든 재산은 공동 소유였어요. 심지어 수학적 발견과 텍스트도 공유재산으로 간주했고요. 그러나 그것들은 외부에 대해서는 철저한 비밀로 간직해야 했는데, 비밀을 누설하면 산 채로 바다에 던져지는 끔찍한 형벌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피타고라스학회의 강의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강의실은 고유한 휘장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을 이분화해 교육한 것이지요. 피타고라스가 있는 쪽은 일정 수련과정을 통과한 상급반 제자들만 참석할 수 있고, 휘장 너머에는 하급반 제자들이 피타고라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급반 제자들은 피타고라스를 직접 볼 수 없었던 것이지요. 형식적인 면뿐만 아니라 지식 전수의 내용 면에서도 철저히 구분되었다고 합니다. 일부는 귀로만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었던 반면, 수학적 증명과 텍스트를 피타고라스로부터 직접 전수받는 ‘수학자 그룹’이 있었습니다.
‘귀로만 듣는 학생’의 수업에서는 오직 말로 행해지는 가르침만 있을 뿐 글로 쓰인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타고라스가 선택한 이 같은 교육방식은 ‘수학’의 본질 그 자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스승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시각을 대신하는 청각적 관계를 형성시킵니다.
이러한 상황은 제자들로 하여금 전해지는 단어들과 소리의 음조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지요. 이렇게 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청각을 훈련시키고 정교하게 만들었으며, 조화에 더욱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준비했던 것입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일화가 유난히 음악적 조화와 관련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피타고라스학회는 엄격한 행동규범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들은 수학과 철학 연구를 도덕적 기초로 삼았다고 해요. 철학(philosophy, 지혜를 사랑함)과 수학(mathematics, 배움)이란 말을 처음 만든 것도 피타고라스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철학자는 자연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철학이란 단어는 그리스어로 ‘사랑하다’를 의미하는 philein과 지혜를 의미하는 sophia가 합쳐져 구성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철학을 ‘지혜의 사랑’이라고 번역하는데,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주장대로 ‘사랑의 지혜’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해인가 고대 올림픽을 관전하고 있을 때, 플리우스(Philus)의 왕자 레온(Leon)이 피타고라스에게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나는 철학자입니다.”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답니다. 레온 왕자가 피타고라스에게 ‘철학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설명해달라고 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레온 왕자여, 인생이란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운동경기와 비슷합니다. 이렇게 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떤 이는 재물을 탐하고, 또 어떤 이는 권력과 권세를 향한 맹목적인 정열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 중 가장 현명한 이는 삶 자체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연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완전무결한 현자란 있을 수 없겠지만, 이들이 바로 철학자입니다. 그들은 지혜를 사랑하고, 자연의 비밀을 탐구하는 열정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피타고라스는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눴음을 알게 됩니다. 최하위는 재물을 얻으려는 상인이며, 중간층은 명예를 좇는 사람, 그리고 가장 상위의 인간은 사유하는 인간, 즉 철학자입니다. 현재 이론이라는 뜻의 영어 theory의 그리스어 어원은 테오리아(theoria)인데 ‘구경꾼’이란 뜻입니다.
그리스인들은 구경(사유)과 순수수학, 그리고 자연 탐구는 영혼을 정화하는 고귀한 행위로 여겼습니다. 이 같은 사상은 플라톤에게 이어졌는데, 플라톤은 영혼에 세 가지 층계를 부여했습니다. 가장 낮은 욕망(appetite), 그 다음이 기개(spirit), 그리고 가장 높은 이성(reason)이 그것입니다.
기원전 510년 제67회 고대 올림픽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크로톤의 이웃 도시인 시바리스(Sybaris) 시 근교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폭동의 주동자 텔리스(Telys)는 정부를 제압한 뒤 정부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색출하여 무자비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텔리스의 폭정을 피해 크로톤으로 모여들었죠. 텔리스는 크로톤 시민들에게 반역자들을 시바리스로 돌려보낼 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밀론과 피타고라스가 그의 요구를 거부하자 텔리스는 30만 명의 군대를 동원해 크로톤을 공격했습니다. 밀론은 10만 명의 시민군으로 텔리스의 군대에 용감하게 맞섰습니다. 70일 간의 전투에서 탁월한 지휘를 발휘한 밀론은 결국 텔리스의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크로톤 시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도시 재건 사업에 대한 이견들이 난립하면서 도시는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고 합니다. 특히 시민들은 크로톤 시의 땅이 피타고라스학회의 소유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시민들의 이 같은 불만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팽배했다고 전해집니다. 피타고라스학회는 엄청난 돈을 쓰면서 자신들이 발견한 새로운 사실들을 전혀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독점했기 때문이죠.
이런 불만을 가진 시민 중에 실론(Cylon)이란 사람이 있었다고 해요. 그는 피타고라스학회에 가입신청을 했다가 거부당한 사람으로 학회에 증오심을 갖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이죠. 마침내 그는 시민들을 선동해 학회를 공격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실론과 시민폭도들은 밀론의 집과 학회 건물을 포위하고 불을 지릅니다. 밀론은 지옥 같은 불길을 헤치고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했으나, 불행하게도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 대부분은 불길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고대 그리스는 수학계의 위대한 영웅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의 정신은 후대에 온전하게 계승되었습니다. 그는 ‘수학이란 모든 학문 분야 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개인적 주관을 배척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수학이론의 타당성 여부는 개인적인 사견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죠. 그것은 전적으로 논리의 구성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피타고라스가 인류의 문화에 기여한 가장 값진 성과입니다. 인간의 어설픈 분별력을 초월하여 절대의 진리를 찾아내는 방법, 그것이 바로 수학이라는 사실을 피타고라스가 인류에게 가르쳐준 것입니다.
피타고라스가 죽은 뒤, 화염 속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회원들은 크로톤을 떠나 다른 도시나 해외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결해 학교를 설립해 ‘수학 복음서’를 전파하고, 논리적 증명법을 가르쳤습니다. 이때 강의된 내용은 ‘피타고라스 정리’와 ‘피타고라스의 삼각수’ 등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기원전 5세기에 학회는 과학과 종교의 두 파로 분열되었습니다. 과학 분파를 대표하는 사람은 타란토의 필로라우스(Philolaos, BC 4세기)로 그는 후기 피타고라스학파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피타고라스학파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의 대부분은 피타고라스 사후에 태어난 필로라오스의 저술 덕분입니다.
이제부터 피타고라스학파를 지칭할 때는 피타고라스 생전뿐만 아니라 사후 그의 사상을 계승한 필로라오스의 후기 피타고라스학파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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