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수학적 우주관을 열다
갈릴레이는 “우주는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고, 그 철자는 삼각형, 원, 기타 기하학적 도형들이다. 그것 없이는 인간은 단 한 글자도 이해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정말 우주가 수학적 언어로 쓰여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왜 그렇게 되어 있을까요? 도대체 우주와 수학과는 무슨 관계일까요? 그러고 보면 뉴턴의 그 유명한 운동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은 수식으로 쓰여 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중력방정식으로 기술되어 있지요. 이뿐 아니라 현대 물리학은 온통 난해한 수학으로 쓰여 있더군요.
갈릴레이보다 2000년가량 앞선 시기에 살았던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72~497)가 ‘만물은 수이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은 우주의 구성 요소가 수라는 뜻인 동시에 만물의 운행 원리가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어쩌면 갈릴레이보다 훨씬 심오한 수학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합니다. 그러니 우주와 수학과의 관계를 알아보려면 피타고라스를 먼저 찾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에게 해의 소아시아 쪽(오늘날 터키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 사모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섬은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가 하늘을 너무 높이 날다가 밀랍이 녹아 추락한 곳이기도 합니다.
피타고라스는 사실 신화적 인물에 가깝습니다. 그가 수 이론의 창시자이며 고대의 ‘수학 황금기’를 구축했던 위대한 학자라는 사실입니다. 그의 천재성 덕분에 숫자는 단순한 계산도구에서 벗어나 고유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젊은 시절 수년간 최초의 철학자인 밀레토스의 탈레스 밑에서 수학했다고 합니다. 바빌로니아는 물론 이집트까지 수차례 여행했다고 전해집니다. 인도와 영국까지 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그는 역사적 기록의 보관자인 여러 사제들을 만나 수와 수학에 대해 토론하고 연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이집트에서는 나일 강의 홍수로 인해 물에 잠기는 농경지를 획정하고자 하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일찍이 수(수학)와 기하학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 수학 법칙들을 섭렵한 피타고라스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젊은이들과 함께 수학과 철학을 연구할 아카데미를 설립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고향은 예전의 자유로운 분위기의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여행하던 기간에 새로 즉위한 전제군주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그는 피타고라스에게 고위 관직을 제안하며 사모스로 돌아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는 그것이 자신의 입을 막기 위한 일종의 계략임을 간파하고, 폴리크라테스의 초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사모스 섬 변두리의 동굴에 칩거하면서 명상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이즈음에 피타고라스에게 있었던 유명한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는 소년 하나를 첫 제자로 입문시켰다고 합니다. 자신의 제자가 강좌를 한 번 들을 때마다 3오볼(6분의 1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 은화. 1드라크마는 고대 그리스 노동자의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돈.)의 돈을 주었다고 합니다. 강의를 듣기 싫어하는 학생에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재물까지 동원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제자를 시험해볼 요량으로 “이제 돈이 바닥나서 더 강의를 계속할 수 없다.”고 거짓말을 했더니 소년은 “제가 강의료를 지불할 테니 제발 계속 가르쳐주십시오.”라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학문과 교육에 대한 뜻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은 피타고라스는 어머니와 이 제자를 데리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는 당시 그리스에 속해 있던 이탈리아 남부 크로톤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운 좋게도 이상적인 후원자를 만납니다. 그가 바로 그 도시의 부유한 권력자 중 한 명인 밀론입니다. 밀론은 ‘사모스의 현인’으로 칭송받는 피타고라스보다 더욱 명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는 올림픽 경기와 아폴론의 기념 축제에서 열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탁월한 육체를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운동 못지않게 철학과 수학에도 관심을 가졌던 그는 피타고라스가 아카데미아를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지원해주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이곳에서 피타고라스학회(Pythagorean Brotherhood)를 결성해 20여 년간 수학과 철학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연구는 오늘날 관점에서도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큰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숫자는 실제 세계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오늘날 수학계는 이를 ‘수 실재론’이라고 부릅니다.
또 엄밀한 수학적 증명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는 “과거의 전통이나 가르침에 연연하지 말고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논리’에 따라 결론을 내리라.”고 가르쳤습니다. 또 그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신화나 미신이 아니라 수와 기하학.”이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증명이란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은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이지만, 이것을 응용하여 ‘언뜻 보기에 분명하지 않은’ 사실을 증명한 사람은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피타고라스학파)입니다.
또한 피타고라스는 숫자와 수학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주가 수로 구성되어 있고, 수학적 법칙에 따라 운행된다는 수학적 우주관을 정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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