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 -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③보어의 반박
EPR 논증은 매우 정교하고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불확정성 원리가 규정한 한계, 곧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혹은 두 가지 스핀 성분을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원리를 기묘한 방식으로 공격한 것입니다.
EPR 논증에 대해 보어는 『네이처』에 예비논문을 발표한 뒤 EPR 논증이 실린 물리학 논문지인 『Physical Review』의 48호에 반박논문을 실었습니다. 보어는 EPR 논증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보어는 먼저, EPR(Einstein, podolsky, Rosen)이 논증의 전제로 내세운 ‘물리적 실재(physical reality)’란 용어는 양자역학에 적용할 경우 근원적으로 모호함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물리적 실재’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이 기준에 의해 시스템의 운동량과 위치에 동시적인 실재성을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습니다.
“EPR에 의해 정식화된 ‘물리적 실재의 기준(criterion of physical reality)’은 양자현상에 적용했을 때는 본질적인 모호성을 가진다. ‘물리적 실재’와 같은 표현에 분명한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범위는 선험적인 철학적 개념으로부터 연역될 수 없으며, 실험과 측정에 대한 직접적인 호소 위에 세워져야 한다.”
EPR이 ‘물리적 실재를 기술하지 못하는 이론은 완전한 이론이 아니다.’라고 규정한 데 대해 보어는 ‘그렇다면 물리적 실재란 무엇인가.’하고 반박한 셈입니다. 그는 단일슬릿 및 이중슬릿 실험을 예로 들면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둘 모두가 아니라 어느 하나만을 측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보어는 여기서 물리량의 실재성 주장과 관련해 '실재성은 물리량에 대한 측정 과정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측정의 과정은 해당 물리량의 정의와 직결된 조건에 본질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결국 이러한 조건들은 ‘물리적 실재’라는 용어가 명백히 적용될 그 상황의 본질적 요소를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보어는 “우리는 실험을 통해 양자역학적 현상은 특정 물리량의 값을 알 수 없다는 문제를 넘어 이들 물리량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양자역학의 완전성 여부를 논하면서 개념의 적용성이 불투명한 ‘물리적 실재’를 전제로 한 EPR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보어는 또 EPR이 입자 S₁에 대한 측정이 그 쌍입자 S₂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국소성(locality)’의 공리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국소성 주장의 충분조건으로 제시된 ‘어떤 물리계를 교란시키지 않고 그 계에 속하는 특정 물리량의 값을 확정적으로 예측한다.’는 주장을 공격했습니다.
보어는 “입자 S₁에 대한 측정 행위가 S₂에 ‘역학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S₁에 대한 측정은 S₁, S₂ 두 입자로 구성된 물리계의 미래 행태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공간성의 간격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입자 사이에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인과율을 거부하는 역학적 상호작용은 없지만, 한 입자에 대한 측정 행위가 ‘다른 입자의 미래 행동에 관한 예측을 규정하는 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는 의미에서 상호교란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 결과 EPR의 전제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역공을 가한 것입니다.
보어의 이 말은 양자역학적 현상에 있어 국소성을 전제하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50년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우주는 국소적이지 않았으며, 보어의 주장대로 EPR의 국소성 가정은 잘못되었습니다.
보어의 주장을 요약하면, EPR이 주장하는 전통적 의미의 실재성 개념 자체가 양자역학 상황에서 적용될 수 없습니다. 즉 측정과 상관없이 양자계가 원천적으로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물리량의 값이란 아직 정의되어 있지 않거나 경험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며, 물리량들은 그것들이 적절한 실험장치와의 관계 속에서만 일정한 값을 갖는 것으로 정의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실재성 개념에 대한 이해 자체가 바뀌어야 함을 함축합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EPR의 양자론에 대한 불완전성 주장은 문제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기각됩니다.
이제 논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EPR의 논리를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EPR은 양자역학이 ‘물리적 실재’를 기술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이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물리적 실재의 속성을 파악하는 데 한계를 규정한 불확정성 원리가 오류이기 때문이 이를 토대로 한 양자론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EPR 주장의 핵심입니다.
EPR은 쌍입자 사고실험을 통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임의의 축에 대한 각 스핀 성분을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이들의 작업은 ‘사물의 속성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뒤집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보어는 양자론에서는 ‘물리적 실재’란 개념을 적용할 수 없으며, 국소성의 원리를 공리로 내세운 것도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며 EPR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옳을까요? 우선, EPR이 사고실험을 통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그리고 세 가지 성분의 스핀이 본래 갖고 있는 속성이라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S₁에 대한 측정이 S₂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난다면, EPR은 입자 S₂가 본래 그런 속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이는 특히 EPR이 내세운 국소성의 원리에 어긋나므로 EPR의 논증은 기반 자체가 허물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양자론에 의하면 입자의 파동함수는 전 우주에 걸쳐 존재하므로 쌍입자 S₁과 S₂의 파동함수는 서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따라서 논쟁의 진위를 가리는 핵심은 쌍입자에서 나타나는 위치와 운동량, 그리고 스핀의 각 성분이 원래부터 갖고 있는 고유 속성인지, 아니면 상대 입자에 영향을 받아 관측과 함께 나타나는 가변적인 관측 값인지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다분히 철학적인 논쟁에 머물 뻔한 EPR 논증을 확인 가능한 물리학적 방법을 제시한 물리학자가 존 벨(John Stewart Bell)이며, 벨의 방법론을 써서 실험적으로 확증한 물리학자가 알랭 아스페(Alain Aspect)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동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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