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와 컨베이어벨트 사고

조송원 승인 2018.12.15 14:37 | 최종 수정 2019.02.08 11:25 의견 0
조송원 작가
조송원 작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처음으로 3만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018년에 3만2,000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도 한국은행의 데이터를 인용하며, 3만1,243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진입으로, 한국은 소위 '30-50클럽'의 7번째 국가가 되었다. 30-50클럽이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이고, 인구가 5000만이 넘는 국가를 말한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한국이 가입한 것이다.¹⁾

2006년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다. 통계상으로는 12년 만에 1만 달러 이상 더 경제가 성장한 것이다. 우리의 체감 경제도 과연 그럴까? 현재 우리의 삶의 질은 어떠한가?

청년 김용균(24) 씨가 11일 ‘홀로’ 일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그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 현장설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계약직이다. 365일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화력발전소에서 김 씨는 동료 11명과 함께 1일 4조2교대로 일했다. 주간-야간-휴무-휴무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주간일 때는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 저녁 6시30분까지 11시간, 야간일 때는 저녁 6시30분에 출근해 13시간이 지난 다음날 아침 7시30분에 퇴근한다. 근무시간에는 휴식이 없다.

동료 노동자들은 김 씨의 죽음이 한국 어느 노동현장과 마찬가지로 한국서부발전이 단가를 낮게 제시하는 하청업체에 일을 맡기면서 2인1조가 아니라 ‘홀로’ 일하게 된 게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 씨의 파트장인 한아무개(26) 씨는 “사고 기계에 비상시 기계를 멈출 수 있는 ‘풀코드’(레버를 당겨 기계를 정지시키는 장치)가 있었지만, 홀로 근무할 때는 무용지물”이라며,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사람이 스스로 풀코드를 당길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며, “풀코드를 작동시킬 한 사람만 있어도 목숨을 살렸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²⁾

노동조합은 작업의 위험성을 근거로 회사 쪽에 줄곧 ‘2인1조 근무’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한국발전기술은 ‘단순 업무’라며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설비 순회 점검 구역 출입 시 2인1조로 점검에 임한다’는 내부 지침이 있었다. 우원식 의원은 “하청업체가 작업의 위험성을 감안해 ‘안전·보건 사항’으로 2인1조를 규정해 놓고도 비용 절감을 위해 현장에서 이를 지키지 않아온 탓에 이번 사고를 막을 최소한의 기회를 놓친 것”이라며 “특히 원청회사인 한국서부발전은 이 지침을 승인까지 해놓고 ‘2인1조 지침을 몰랐다’고 하는 둥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³⁾

개인이든 국가든 부를 늘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일을 해 번 돈을 저축하거나, 아니면 과거에 축적한 부를 늘려가는 것이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2071시간이다.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길다. OECD 평균은 1692시간이다. 땀을 많이 흘리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나 되니, 우리는 경제적 삶은 여유로운가? 물론 아니다. 땀보다 피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토마 피케티가 지적했듯이, 20세기 대부분 동안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웃돌았다. 곧 개인의 부에서 물려받은 부의 비중이 더 커졌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1인당 국민총소득이 3만 달러라고 하는 것은 ‘땀만 흘리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하다. ‘평균의 함정’일 뿐이다.

2016년 말 현재 우리나라 ‘만 10살 이하의 집주인’은 8139명이다. 지난해 상속재산가액은 32조1874억 원이고, 증여재산가액은 35조7016억 원이다. 핏줄 덕으로 부모나 조부모 등의 재산을 넘겨받은 규모가 하루 1860억 원꼴이라는 얘기다. 2016년 기준으로 부동산임대소득과 이자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0.7%, 90.8%였다. 특히 배당소득(14조863억)의 94.4%는 상위 10%에 집중됐다. 상위 1%가 같은 해 벌어들인 임대소득은 1인당 평균 3억5712만 원이나 됐다.

더욱이 한국의 국내총생산(GNP) 대비 내수 비중과 가계소득 비율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이다. 이에 더하여 2018년 우리나라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폭이 OECD 비교대상 20개국 중 가장 크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이중화는 심각하다. 대기업·공기업·정규직 등의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 등의 2차 노동시장으로 고착되었다. 대기업은 소수 정규직만 고용하고 비핵심 업무는 아웃소싱한다. 이렇게 외부의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하면서, 단가 인하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을 제약해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부탄엔 네 가지가 없다고 한다. 첫째, 노숙자와 거지와 고아가 없다. 부탄 공동체가 불행해진 이웃을 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째, 정신질환자와 우울증 환자가 거의 없다. 셋째, 자살자와 범죄자가 거의 없다. 이생의 삶이 끝나면 내세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남을 해치면서까지 이익을 챙기려 들지 않는다고 한다. 넷째,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거의 없다. 그들은 인과를 믿고 공짜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⁴⁾

부탄은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3000달러에도 미치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국민 행복도 조사 결과를 보면⁵⁾, 매우 행복이 8.4%, 넓게 행복이 35.0%, 좁게 행복이 47.9% 로 행복하다는 응답이 91%가 넘고, 불행하다는 사람은 8% 남짓이다.

국민총생산(GNP)이나 국민총소득(GNI)은 우리의 웰빙(well-being)을 측정하는 도구로서는 대단히 미흡하다. ‘노동유연성’이란 이름으로 노동자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사용자의 해고 자유를 강화해도 경제지표는 향상한다. 그러나 노동자는 저임금과 일자리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 경제 활성화란 미명으로 법인세와 소득세를 감면하면, 그 그만큼 세수에 구멍이 뚫린다. 곧 기업과 억만장자들을 위해 서민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그 구멍을 메우는 꼴이 되는 것이다.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이 많단 말인가, 주 52시간 노동으로 경제를 지탱할 수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것은 무슨 도깨비의 장난인가. 언제까지 노동자의 저임금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이란 말인가?

※1)EDITORIAL, 「Not all bright」, 『The Korea Herald』, 2018년 12월 11일. 2)이지혜/최하얀, 「‘풀코드’ 당길 한 사람만 있었어도···그는 살았다」, 『한겨레신문』, 2018년 12월 13일. 3)송경화/최하얀, 「‘2인1조’ 내부지침 있었지만··· 원청·하청업체 스스로 뭉개」, 『한겨레신문』, 2018년 12월 14일. 4)현장스님(티벳박물관 관장), 「부탄에 없는 네 가지, 행복한 이유 네 가지」, 『한겨레신문』, 2018년 11월 28일. 5)<Butan's 2015 Gross National Happiness Index>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