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8) - 막막한 삶 속에서 피어난 즐거움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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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0 20:13 | 최종 수정 2021.01.2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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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스무살인 1957년에 찍었을 이 사진을 보면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나온 ‘로마의 휴일’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아버지와 엄마가 데이트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데이트 하는 장면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속 장면보다 현실의 장면이 더 진실에 가깝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이북에서 서울로 피난오신 아버지의 청년 때 삶은 기구했다. 나한테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남매의 맏이인 아버지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막막했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그럭저럭 살 만하였으나 완전히 고아가 된 아버지에게 위로가 된 분은 오로지 엄마였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버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하도 불쌍해서 만났다고 하는데 일리 있는 말씀이다. 아버지는 배달 일을 하며 먹고 살기 위해 자전거를 한 대 샀다고 한다. 그 기념으로 엄마와 덕수궁으로 데이트를 갔다고 한다. 주로 데이트하던 장소는 청파동 바로 앞 남산이었는데 이 날은 맘먹고 덕수궁까지 가셨을 것이다. 엄마는 저 영화 장면처럼 자전거 뒤에 타고 갔을 것이다. 가지런한 하얀 치아를 드러내놓고 웃는 엄마의 늘 해맑은 웃음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예술이다.
집안이 망하다시피 했으니 대학교를 갈 수 없었던 아버지는 좋은 신랑감은 아니었을 것이다. 청파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의 언니, 나한테 큰 이모의 반대가 아주 심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고지순한 열정적 사랑의 힘은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돌파하는 힘을 내게 한다. 아버지한테 콩깍지가 낀 엄마는 궁핍과 가난을 끼고 사셨을 아버지 옆에서 활짝 웃고 계시다. 아들의 주관적 관점에서 아버지는 기자는 아니지만 그레고리 펙보다 더 멋지시고 비록 공주는 아니지만 엄마는 오드리 헵번보다 더 아름다우시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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